약사들의 '건기식 판매 장터'가 된 인스타그램... 시니어 약사들 "그게 뭔 소리여?"
인스타그램에 취약한 오프라인 시니어약사들은 모르는 세상 전문성 탑재해 건기식에 활력 vs'아슬아슬' 위법성 논란 지적
[끝까지 HIT 14호]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 판매 시장 플레이어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약국을 떠나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제품을 구매한다. 제약회사들은 대형마트의 장벽을 뚫고 다이소까지 저가형 건기식을 공급하고 있다. GS25 등 접근성이 높은 편의점에서도 건기식 코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기식 시장의 지속적인 팽창 덕분에 일어난 지각변동이다.
최근 SNS에서 새로운 건기식 판매자들이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이들의 정체는 인플루언서 약사다.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활동 무대는 약국이 아닌 인스타그램이다. 수만 팔로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과감한 일상 노출을 통해 공동구매를 권한다. 심지어 이들의 콘텐츠를 관리해주는 대형 기획사도 등장했다. 이처럼 다양한 유통 채널과 새로운 판매 주체의 등장으로 건기식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규제 사각지대와 소비자 보호의 공백이라는 문제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끝까지HIT>가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건기식 공구 세계의 명과암'을 조명했다.
60~70대 약사는 모르는 '인플루언서 약사'
"인스타그램에서 건기식을 판매하는 젊은 약사들이 있다"는 취재진의 말에 서울 서초구에서 40년째 약국을 운영해온 70대 약사 A씨는 "뭔소리여, 건기식을 다이소에서 판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밝혔다. 인플루언서 약사가 제작한 영상을 보여준 순간 약사 A씨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자신을 홍보해서 건기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새롭다"며 "수십만명이 약사의 모습을 매일같이본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 약사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30년째 약국을 운영해온 또 다른 60대 약사 B씨도 "약국에서 수만원에 달하는 건기식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며 "나이가 젊다면 연예인 약사들처럼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일반의약품과 건기식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에 있는 5곳의 약국을 돌아본 결과 60대 이상 약사들은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존재를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건기식을 판매하고 최근 제약사들이 다이소에 진출했다는 소식은 접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램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서는 생소하다는 반응이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약국을 운영해온 30대 약사는 "아무리 스마트폰이 발달한 세상이지만 연배가 있는 선배 약사들은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설치해야 하는 인스타그램을 모를 수 있다.하지만 젊은 약사들 사이에서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약사들 이름을 알고 있다. 약대 졸업 후 인플루언서 약사를꿈꾸는 동기도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과감하게 또 과감하게 일상 노출, 공구 권유
C씨는 유명 인플루언서 약사다. 그는 6월 4일 '밀가루 음식을 일주일에 세 번 먹으면 몸이 힘들고 피부가 뒤집어진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는 라면과 커피가 등장하고, 약사 가운을 입은 C약사가 연기를 한다. 그는 "몸 속 염증 폭탄을 방치하면 감기. 알러지 등 가벼운 질환부터 고지혈증, 당뇨에 암까지 생긴다"며 "염증을 없애는 식습관과 영양제를 정리해서 소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C약사는 릴스 영상 게시물 하단에 '오메가3, 커큐민, 비타민C는 만성 염증 지우개 조합'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C약사의 팔로워 수는 7만명. 팔로워들은 "제품을 추천해달라"며 "세 가지 조합은 어느 때 먹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C약사는 '테라큐민 슈퍼플러스 100' 제품 공동 구매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가루 형태의 테라큐민은 색은 노랗고 예쁘다. 무맛무취로 남녀노소가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고 밝혔다. 게시물 하단에는 'C약사의 쏟아지는 이벤트, 공동구매 알림방 참여' 배너가 있다. 배너를 클릭하면 구매 링크가 연결된다. C약사가 공동구매를 진행한 수많은 제품 리스트를 찾을 수 있다.
모자 쓰고 반팔 입은 약사, 유산균 선별 전문
D약사도 인플루언서다. 그는 최근 '유산균에 정답이 없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인스타그램 하루 상담 건수만 200~300건이다. 그중에 상당히 많은 비율은 유산균 관련 상담이 차지한다"며 "상담 경험이 쌓이면서 특정 균주의 배합과 락토바실러스 비피도박테리움이 배합된 제품이 추천하기 좋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루가 지난 이후 그는 '엘레나 신제품 팝업 이벤트 오픈'이라는 제목의 공동 구매 게시글을 올렸다. D약사는 직접 제품을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엘레나는 유산균을 증식하고 유해균을 억제한다"고 부연했다. D약사의 팔로워수는 18만명에 달한다.
그는 주로 모자를 쓰고 단색 반팔을 입은 편안한 복장으로 리포좀 성분, 비타민C 등 건기식을 소개하고 공동구매를 추천한다. 한 인플루언서 약사는 "30대 초반 여성 인플루언서 약사는 콜라겐 성분 등 피부 관련 건기식에 특화됐고 40대 초반 약사는 아이 건기식을 주로 올리는 편"이라며 "각각 자신의 나이에 맞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올리는데 워낙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10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일반인이 건기식 공구를 진행해도 약사만큼 파괴력은 없다"며 "약사들이 건기식 원료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개별적으로 인스타그램 DM(메시지)를 보내 설명해주고 맞춤형 건기식까지 추천해주기 때문에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A부터 Z까지 인플루언서 약사 관리, 대형 MCN까지 등장
흥미로운 사실은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리해주는 대형 MCN(Multi Channel Network, 인플루언서 지원 기획사) 업체들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P사는 대표적인 MCN업체로, 약사들의 공동구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인력을 지속
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공동구매 MD는 공동구매 행사 기획, 일정 관리, 협력사 제품 관리부터 브랜드 마케팅까지 총괄한다. 크리에이터 매니저도 활동 중이다. 매니저는 '크리에이터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 분석과 솔루션을 도출'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며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뉴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 것이 채용 조건이다. 커머스 마케터는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공동 구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소셜 미디어 채널 운영과 관리도 맡는다. 이처럼 P사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매니저, 온라인 MD, 매니저를 통해 인플루언서약사들의 A부터 Z까지 관리한다.
또 다른 인플루언서 약사는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형 기획사는 연예인들처럼 약사들을 교육하고 브랜딩해서 시장에 소개한다"고 밝혔다. 인플루언서를 준비했던 한약사는 "대형 기획사의 주도 하에 인플루언서 약사들은 매주 모
여 이번주에 어떤 상품을 소개할지, 그 상품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논의한다"고 덧붙였다.
인스타 구매자 3040, 약사 인플루언서도 3040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발표한 '2024 소셜미디어 이용자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이용률은 카카오톡이 98.9%로 가장 높았고 2위는 유튜브로 84.9%였다. 인스타그램 38.6%, 밴드 28.6%, 네이버 블로그 21.7% 순이었다. 이중 19∼29세와 30대의 경우 인스타그램 이용률이 각각 80.9%, 70.7%였다.
40대의 인스타그램 이용률은 47.5%로 40대 후반으로 갈수록 네이버 밴드 이용률이 높았다. 소셜미디어 이용 목적 중 상품을 구입하기 위한 이용 비율은 26.1%로, 여성(28.6%)이 남성(23.6%)보다 많았다는 것이 재단의 설명이다.
약사 출신 마케팅 전문가는 "30~40대 여성은 주로 맛집, 육아, 건강정보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얻는다. 정보를 바탕으로 가족들이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거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장소를 검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플루언서 약사들도 30~40대가 많다.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과 남편과 아이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피부, 운동 등 일상적인 콘텐츠를 올려 3040 여성 팔로워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건기식 판매를 권한다"고 덧붙였다.
왜 하필 인스타그램?
그렇다면 왜 인스타그램일까. 유튜버로 활동 중인 약사는 "인스타그램 만큼 공동구매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없다"며 "유튜브나 네이버 블로그는 건기식을 소개하기에는 좋아도 공동구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한계가 크다. 인스타그램은 짧은 시간에 릴스를 올리고 팔로워들이 댓글을 달면 링크를 제공하면 된다"고 밝혔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제약사들이 인플루언서 약사를 통해 건기식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트렌드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다이소나 편의점에만 진출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하고 빠르게 대형 MCN 업체와 인플루언서 약사들과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MCN이 제약사와 접촉해 건기식 제품을 가져오면 인플루언서와 수익 배분 비율을 정하는 방식"이라고 언급했다. 또 "약사가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자사의건기식을 설명하고 판매해주기 때문에 제약사들도 인플루언서 약사가 여는 공동구매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며 "광고비도 들지 않고 MCN과 인플루언서 약사들을 대상으로 수익만 공유하면 된다"고 밝혔다.
관건은 인플루언서 약사들의 판매 조건이 '약국에 없는 건기식'이라는 점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 관계자가 인플루언서 약사를 만나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 '같은 제품이 약국에 있느냐'다. 인스타그램 약사가 약국에 있는 건기식이 아닌 특색이 있는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제약사들이 인플루언서 약사들을 대상으로 신제품을 따로 공급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인플루언서 향한 갑론을박...위법 논란도
인플루언서 약사들은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 사이에서 논쟁의 한복판에 서고 있다. 서울 중랑구 소재 약국의 약사 E씨는 "인플루언서 약사들은 선배들이 쌓아온 약국과 약사의 신뢰도를 이용해서 건기식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인플루언서 약사들은 마치 건기식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판매하면서 약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 이는 약사법 위반이명백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F 인플루언서 약사는 최근 '젊은 치매를 유발하는 행동'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TV를 보면서 핸드폰을 하면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 단기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뇌손상까지 유발한다. 커피를 하루에 6잔 이상 마시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50%를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약사는 포스파티딜세린 성분의 건기식 공동구매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포스파티딜세린은 두뇌 건강에 좋다"고 밝혔다. 마치 치매에 포스파티딜세린 성분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인플루언서 약사들은 건기식이 마치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게시물을 올리거나 관련 공동구매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식품표시광고법 8조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와 '식품 등을 의약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한다. 식품표시광고법 시행령에 따르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수의사, 약사 등이 제품의 기능성을 보증하거나, 제품을 보증 또는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표시·광고'를 금지한다.
이에 대해 약사법 소송 전문 변호사는 "광고행위가 1회적인 하나의 게시물 만이 아니라 일련의 여러 게시물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이에 법률을 적용해보면 약사 자격을 가진 이들의 행위에 대해 처벌규정 적용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입
법 목적 자체가 약사 등 보건 전문자격을 보유한 자의 발언 파급력이 의약, 건기식 관련 광고에 특히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점, 광고행위 관련 과태료 없이 형사처벌을 바로 부과토록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광고행위들
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이동근 정책 팀장도 "건기식이 마치 치료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은 위법 행위"라며 "일부 인플루언서 약사들이 약사 직역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근거 없는 사실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공포심을 불어넣고 있다. 아무리 유명한 인플루언서라도 약사라는 최소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인플루언서 약사의 등장은 건기식 시장의 확장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유통 채널로,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문성을 앞세운 무분별한 광고와 약사법 위반 논란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건기식 시장의 지각변동 속에서 제도적 가이드라인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