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줄어든다지만… 실험동물 앞에선 과학자 고통은 누가 보듬나"
생각을 HIT | 동물실험 대체 움직임 확산…연구자 정신 건강은 여전히 빨간 불
학부 인턴으로 실험실에 들어선 이후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8년, 수많은 실험쥐를 손에 쥐고 연구했다. 실험노트에 적힌 데이터 이면에는 할딱이던 작은 숨결들이 살아 있다. 한 달 넘게 돌봐 정 들었던 작은 마우스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순간 녀석들은 먹이를 주던 손을 기억하는 것인지 내 손길을 순순히 따른다.
익숙해지지 않았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손바닥에 식은땀이 늘 맺혔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야' 다독이지만, 사그라지는 숨결을 느낄 때 죄책감은 차곡차곡 쌓였다. 내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이 수백 마리다. 히트뉴스 기자가 돼 실험실을 벗었났지만 신약 관련 보도자료를 볼 때 종종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 의무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오가노이드(장기 유사체), 인공지능(AI) 기반 독성 예측 모델 등 대체 기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나섰다. 이는 단순한 동물보호 차원을 넘어, 기술 발전과 신약개발 효율화를 목표로 한 규제 개편의 일환이다.
동물실험 의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제정된 'FDA 현대화법 2.0(Modernization Act 2.0)'에서 동물실험 의무 폐지 방안이 이미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이 그 때와 달라진 점은 AI 기술의 발전이다. AI 기반 모델은 약물 스크리닝 초기 단계에서 독성이나 약효를 가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3D 인공 장기'로 불리는 오가노이드 기술도 줄기세포로 배양된 장기 모델로 인체 장기와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재현함으로써 동물실험을 줄이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산업 현장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오가노이드 기반 플랫폼을 보유한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줄기세포 유래 3차원 오가노이드 기술을 바탕으로 재생치료제와 신약 평가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최근 '삼성 오가노이드'를 론칭하며 '암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항암 신약 후보물질 스크리닝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낮은 환자 유사성, 윤리적 문제 등 단점을 안고 있던 기존의 동물 실험을 대체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동물실험 폐지'는 단순한 윤리적 요구를 넘어, 과학적·산업적 필요에 따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동물실험 폐지 논의에서 빠지기 쉬운 목소리가 있다. 바로 실험을 직접 해온 과학자들이다. 동물 실험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진전이지만, 그 변화의 이면에 실험실 안에서 침묵을 감내해온 연구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동물 실험 뒤에 남겨진 연구자의 고통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실험동물은 한 해 평균 300만마리를 웃돈다. 특히 복잡한 전신 반응을 요구하는 심장, 신경계 질환 영역에서는 동물모델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실험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연구자들을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연구자들은 동물의 생명을 내 손으로 희생시키는 일에 깊은 죄책감과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2016년에 발간된 '동물실험 연구자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관한 예비 연구'에서 동물실험에 참여한 연구자 중 약 15%가 직접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했으며, 실제 체감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논문에서 인용된 호주의 유사 연구 사례에서도 동물실험을 실시하는 연구진 11%가 정신적 트라우마 증세를 겪었다고 보고됐다.
논문 저자인 모효정 박사는 "동물실험을 실시하는 연구자는 실험동물을 보살피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모순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에 이용되는 동물의 죽음에 대한 연구자의 슬픔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발생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동물실험이 단지 실험 수행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의 내면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동물실험의 직접 수행뿐 아니라, 동물실험에 대한 주변인들의 부정적인 인식, 생명존중이라는 도덕적 의무에 반하는 자신의 행위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 기관 내 연구자 지원 시스템 및 주변인의 이해 부족도 연구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반복될 경우, 실험실 내에서 부적응을 겪거나 결국 학업 또는 직업을 중단하고 전공이나 직종을 변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고통은 연구 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국내 생명과학 연구자 커뮤니티인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게시판에는 종종 연구자들의 고백이 올라온다. 한 대학원생은 "실험동물을 계속 돌보다 보면 애착이 생긴다. 그래서 점점 더 실험이 어려워지고 있다. 동물을 희생하고 나면 '펫로스 증후군' 같은 감정을 겪는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연구자는 "동물실험을 수행하는 연구자를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없는지, 실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실험실에서 실험동물을 직접 마주하며 감정적 갈등을 겪고 있는 연구자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조차 찾기 어렵다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연구자의 정신적 안전망 함께 고려돼야
현재 국내에는 연구자의 정신적 회복을 위한 지원 시스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치료제가 개발되기를 바라며 손에 주사기를 쥐지만, 동시에 그 손으로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사실은 과학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스러운 모순이다.
동물 실험 관련한 제도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실험동물 취급 연구실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에서 실험동물 취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교상이나 감염 등 각종 위험요소에 대한 안전관리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동물보호법과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 Institutional Animal Care and Use Committee)'에서 동물실험계획의 윤리적·과학적 타당성 심의는 물론, 실험동물의 생산·도입·관리·처리 전반에 걸친 점검과 실험시설 운용 실태 평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도는 어디까지나 실험자의 물리적 안전과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일 뿐, 연구자의 '정신적 고통'까지 다루지 않는다. 감정적 스트레스나 죄책감, 정서적 피로감은 여전히 연구자의 개인 몫으로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