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FDA 승인 연기, HHS 권고 철회… 미국 규제기관 '시끌'

심사기한 3개월 연장 및 자문위 소집 임산부·아동 대상 코로나19 접종 권고 철회 검토

2025-05-17     심예슬 기자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보건복지부(HHS)가 최근 각각 치료제 승인 일정과 백신 접종 권고에 있어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의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희귀 신경질환 치료제로 개발 중인 트로릴루졸(troriluzole)의 심사 일정이 연기되고, 코로나19 백신의 일부 연령층 대상 권고가 철회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미국 내 규제 기관의 운영 기조 전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모습잉다.

바이오헤이븐(Biohaven)은 최근 FDA가 자사 약물 트로릴루졸에 대한 신약허가심사(NDA) 기한을 기존 9월에서 3개월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FDA는 심사 기간 동안 추가 제출된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회의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FDA는 이번 통보에서 새로운 우려사항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자문위 개최 일정도 확정되지 않았다.

트로릴루졸은 유전성 운동실조증인 스피노세레벨라 운동실조증(Spinocerebellar Ataxia, SCA)을 적응증으로 개발 중인 경구약이다. 이 질환은 소뇌와 뇌간의 퇴행을 일으키는 희귀 신경계 질환으로, 현재까지 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가 없다. 트로릴루졸은 글루탐산 신경전달을 조절하는 기전으로 작용하며, 바이오헤이븐은 일일 1회 복용만으로 질병 진행을 최대 70%까지 늦추고 낙상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임상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이 약물은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지정(ODD), 신속심사, 우선심사 지위를 받은 상태이며, 승인 시 해당 질환에 대해 최초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FDA가 돌연 자문위원회 개최를 예고하고 심사 일정을 연장하면서, 트로릴루졸의 승인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바이오헤이븐은 불과 며칠 전 실적 발표를 통해 FDA가 자문위를 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는 점을 언급했으나, 이후 입장이 번복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FDA가 제출된 임상 데이터에 대해 보다 신중한 평가를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RBC 캐피탈마켓은 자문위 소집은 FDA 내부에 명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며, 최근 FDA의 구조조정과 인력 부족이 일정 지연의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바이오헤이븐은 지난 3월 유럽의약품청(EMA)에 제출한 동일 약물의 판매 승인 신청도 자진 철회한 전력이 있다. EMA는 당시 이 약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예고했고, 바이오헤이븐은 특별허가지위(PRIME 등) 획득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전략적 판단에 따라 신청을 철회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철회 이력은 FDA 내부 평가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연속된 허가 지연 소식에 따라 바이오헤이븐 주가는 15일 기준 15% 가까이 급락했으며, 현재 주가는 약 16.75달러 수준이다.

한편, 보건복지부(HHS)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권고안을 전면 수정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보도를 통해 HHS가 임산부, 청소년, 어린이에 대해 더 이상 정기적인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권고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해당 방침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기존 지침과 배치되는 내용으로, 향후 이들 연령층에 대해서는 접종 여부를 환자와 의사가 개별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현재 CDC는 생후 6개월 이상 전 연령층에 대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으며, 특히 임산부는 중증 위험군으로 분류돼 적극적인 접종 대상이다.

백신 접종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CDC 통계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임산부의 백신 접종률은 14%, 어린이의 경우 13%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접종 대상 조정 논의가 이어졌으며, 현재는 정기 권고 철회 또는 접종 상담 유도를 중심으로 정책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권고 변경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장관이 주도하는 보건복지부 내부 개편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케네디 장관은 대표적인 백신 회의론자로, 최근 FDA 고위 과학자 및 심사 인력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FDA는 백신 심사 및 승인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도 예고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DA가 다음 주 새로운 백신 평가 프레임워크를 발표할 계획이며, 이는 기존의 승인지침을 대폭 수정하는 내용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승인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AI 기술을 일부 심사 단계에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FDA의 심사 일정 지연과 HHS의 정책 변경은 단일 사건에 그치지 않고, 미국 보건 당국의 전반적인 운영 방향과 평가 기준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과 상업화 전략 전반에 있어 기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규제 리스크를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각국 규제기관 간 전략적 차별화도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