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분산형 임상시험(DCT) 시계 빨라지는데 '꽉' 막힌 한국 

메디데이터 이효백 대표 간담회 일본, 대만도 분산형 임상시험 제한 풀었는데 한국은 지지부진 "원격의료, 임상시험 원격동의, 임상시험 약 배송 제한 아쉬워"  

2025-05-14     최선재 기자

글로벌 선진 규제기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분산형 임상시험(Decentralized Clinical Trial·DCT)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상대상자와 연구기관의 분리를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임상실시기관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임상이 가능하도록 DCT 수행을 권장해왔다. 

국내 현실은 다르다. 정부가 DCT 시범사업과 협의체를 운용하면서 잰걸음을 하고 있지만 약사법과 의료법 등 현행법 체계에 막혀 DCT 도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는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이 전폭적으로 규제를 풀면서 임상 기간과 비용을 줄인 점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DCT의 실질적인 이점은 무엇이고, 어떤 허들이 DCT 도입을 가로막고 있을까. 전문언론 식약처 출입 기자단이 13일 서울 강남 아셈타워에서 이효백 메디데이터 코리아 솔루션 대표(아태지역 선임 솔루션 컨설턴트) 을 만나 분산형 임상시험의 이점과 국내법상의 한계 등 주요 이슈에 대해 물었다. 

이효백 대표 발표 모습. 사진=메디데이터 제공

 

환자 모집 수월...제약사 고민 해결 완료

분산형 임상시험(이하 DCT)은 전통적인 임상 시험과 달리, 대상자가 직접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임상이 가능한 제도다.

이효백 대표는 "분산형 임상시험의 확산은 코로나19 팬데믹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환자가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 '어떻게 하면 병원이 아닌 곳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DCT가 도입됐다"고 밝혔다. 

이어 "최신 기술 활용으로 환자의 임상 시험 참여에 대한 연속성을 확보하자는 논의가 오갔다"며 "결국 DCT 기술 발전으로 환자는 언제 어디서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도래했다"고 덧붙였다. 

임상시험이 의료기관 밖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모집'이 수월하다는 것은 DCT의 최대 장점이다. 

이 대표는 "국내 제약사 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도 환자 모집이 임상 시험의 화두"라며 "적절한 환자들을 기간내에 모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DCT를 도입하면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등록이 가능하다. 환자 모집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등록 이후에도 환자 중심적인 임상시험 진행이 가능하다"며 "전통적인 임상시험에서는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면 하루만에 설문지 작성, 검사 시행 등 모든 스케줄을 소화해야하지만 DCT는 환자가 편한 시간대에 맞춰 임상시험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모더나, 단 12주만에 3만명 등록....글로벌 빅파마 이용률↑

실제로 DCT 덕분에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을 단기간에 개발했다. 메디데이터 DCT 플랫폼이 당시 모더나가 단 12주 만에 3만 명의 시험대상자를 등록하고 1년 이내에 임상시험을 거쳐 코로나19 백신을 출시하는 과정을 지원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대표는 "모더나는 메디데이터의 레이브 EDC(전자임상시험데이터 수집), eCOA(임상시험 전자설문지), Detect(임상시험 리스크 관리 솔루션)을 포함해 메디데이터 DCT 기반 기술을 활용해 잠재적인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고 임상의 품질과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빅파마의 DCT 이용률도 올라간 배경이다. 메디데이터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Mid size' ' Big size' 글로벌 기업은 각각 66.7%, 64.7%의 DCT이용률을 기록중이다. 

이효백 대표 발표 모습. 사진=최선재 기자

 

원격동의·의료·의약품 배달 '필수조건'

중요한 사실은 DCT의 효율적인 구현이 가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임상시험 원격 동의', '원격 의료'. '의약품 배달'이란 점이다.  

이 대표는 "임상시험 동의서는 적으면 20장 많으면 50장을 훌쩍 넘는다"며 "정보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동의서 양식이 계속 바뀌어야 한다. 전세계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원격으로 동의를 받으면 이런 부분들이 하나의 통합 플랫폼에서 관리되기 때문에 데이터의 양은 줄고 질이 담보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임상시험용 의약품이 임상 대상자에게 배송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며 "의약품 배송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어야 집에서도 임상시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여자가 투약 중 문제가 생기면 의사가 화상 진료를 통해 증상을 기록하고 대상자를 관리해야 한다. 화상 진료가 필요하다. DCT가 구현되기 위한 필수요건들"이라고 덧붙였다. 

 

3無 '꽉' 막힌 국내 현실...일본 대만 전격 허용 

그러나 국내에서는 임상시험 원격 동의, 화상 진료, 의약품 배달은 불가능하다. 현행 약사법과 의료법 체계 때문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는 전자 동의 절차가 반드시 임상시험 실시기관(병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아이패드로 동의해도 환자가 병원에 와야 한다. 환자가 실시간으로 임상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고려되지 않아 아쉬운 대목이다"고 밝혔다.

이어 "이뿐만이 아니다. 약사법상 의약품의 조제는 병원 내에서 진행돼야 하고 환자가 집으로 의약품을 배송받고 싶어도 제한적인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며 "원격 의료도 다르지 않다. 의료법상 먼 곳에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DCT 도입을 위해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효백 대표 발표 화면. 

때문에 DCT 국내 도입은 '시계 제로' 상태다. 미국, 캐나다는 임상시험 원격 동의, 대상자 원격모니터링, 원격 의료, 임상시험용 의약품 배송 4개 영역에서 규제가 자유롭기 때문에 DCT 도입이 활발하다. 심지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4개 영역의 제한을 모두 풀었다. 

이 대표는 "임상시험용 데이터가 병원에서 수집이 되면 이 데이터가 신뢰할 만한 데이터인지 검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한다"며 "제약사나 임상시험수탁기관(CRO)가 데이터 모니터링을 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임상 데이터 병원에 쌓이면 병원 내부 자산으로 취급된다. 외부 반출에 대한 고민이 있어 원격 모니터링은 불가능한 구조다. 국내에서는 4개 영역 중 임상시험 의약품 배송의 제한적 허용 외에는 가능한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의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약처는 업계와 함께 DCT 도입을 위해 협의체를 마련하고 잰걸음을 하고 있다. 2022년부터 '포스트코로나 임상시험 환경 변화에 따른 규제 선진화' 연구라는 출연 과제를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민·관·학 협의체 '규제 선진화 전문가 협의체Advanced Regulatory Innovation for Clinical Trials Transformation (ARICTT)'를 출범시키고 분산형 임상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이 대표는 "작년 ARICTT 협의체의 일원으로 참석해서 협의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왔다"며 "그 결과 직접적인 DCT 가이드라인은 아니지만 환자 모집 등 세부 분야의 가이드라인을 발간할 수 있었다. 하나씩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노력과 함께 장기적으로 현행법상의 장벽이 허물어진다면 국내 기업들의 DCT 도입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