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경구 GLP-1 전선서 후퇴…경쟁사 주가 줄줄이 급등

다누글리프론, 간 손상 사례에 개발 중단 결정…화이자, GIPR로 전환

2025-04-15     심예슬 기자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야심차게 추진해 온 경구 비만 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개발을 결국 중단했다. 1일 1회 복용 제형을 중심으로 새롭게 전환한 지 불과 수개월 만이다. 경구 GLP-1 치료제 분야가 비만 치료제 시장의 핵심 격전지로 떠오른 가운데, 화이자의 이탈은 향후 글로벌 시장의 경쟁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화이자는 14일(미국 현지시각) 보도자료를 통해 다누글리프론의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일 1회 복용 제형으로 진행된 용량 최적화 연구에서 전체적으로 간 효소 수치 상승 빈도는 동종 약물과 유사한 수준이었으나, 한 명의 피험자에게서 약물 유발 가능성이 있는 간 손상 사례가 발생했다. 해당 사례는 무증상이었으며 약물 중단 후 회복됐지만, 화이자는 지금까지 생성된 모든 임상 데이터와 최근 규제기관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다누글리프론의 임상 개발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화이자는 당초 다누글리프론을 1일 2회 복용 제형으로 개발하고 있었으나, 2023년 12월 임상 2b상 시험 도중 연구를 중단했다. 시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체중 감소 효과는 입증됐지만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 위장관계 부작용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위약군 대비 투약 중단률도 높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화이자는 해당 제형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후 복용 편의성과 내약성을 높인 1일 1회 복용 제형으로 개발 방향을 전환했다.

새롭게 전환한 1일 1회 복용 제형은 약동학(PK) 목표를 충족했고, 체내 흡수 및 반감기 측면에서도 경쟁력 있는 프로파일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화이자는 2024년 하반기부터 성인 건강인을 대상으로 용량 최적화 연구(NCT06567327, NCT06568731)를 통해 추가 데이터를 확보해 왔으며, 전체 개발 프로그램을 통틀어 누적 약 1400명의 피험자가 안전성 분석에 포함됐다.

이 가운데 한 명의 피험자에게서 약물 유발 가능성이 있는 간 손상 사례가 보고됐고, 해당 사례는 자각 증상 없이 약물 중단 후 회복됐다. 그러나 GLP-1 계열 약물에서 간 독성은 드문 부작용으로 간주되는 만큼 이례적인 사례로 해석됐고 규제기관과의 사전 협의 결과까지 반영해 화이자는 추가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이자는 앞서 2023년, 또 다른 경구용 GLP-1 후보물질인 '로티글리프론'에서도 간 효소 수치 상승 문제가 발생해 개발을 중단한 바 있어 반복된 안전성 우려가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화이자는 2025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다누글리프론의 후기 임상 진입 의사를 공식화하며, 비만 치료제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당시 앨버트 불라(Albert Bourla) 대표는 "후속 임상을 준비 중이며, 전문가 영입을 통해 수개월 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단일 품목만으로도 연간 수조 원 규모 매출이 가능한 초대형 시장으로, 특히 GLP-1 계열 약물은 심혈관 질환, 당뇨, 수면무호흡증 등 다양한 적응증 확대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주사제에서 경구제로의 전환은 환자의 복용 편의성을 높이는 중요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경구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적극 확대 중이다. 릴리는 비펩타이드 기반 저분자 GLP-1 작용제인 '오르포글리프론'을 개발 중이며, 현재 여러 적응증에 대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2상 결과에 따르면 36주 후 평균 14.7% 체중 감량 효과를 나타냈으며, 10% 이상 감량 환자 비율도 위약군 대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주요 데이터는 연내 발표될 예정이다.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오르포글리프론의 2030년 예상 매출을 118억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 역시 '세마글루타이드' 기반의 경구제인 '리베서스'를 넘어, 50mg 고용량 경구제의 상업화 여부를 재검토 중이다. 'OASIS1' 연구에서 해당 용량은 평균 15.1% 감량 효과를 보여 주사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에 근접한 효능을 입증했다. 아밀린(Amylin)과 GLP-1 이중작용제 기반의 경구제 아미크레틴도 개발 중이다.

화이자는 이번 결정 이후에도 비만 치료제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GIPR 길항제 등 새로운 기전을 바탕으로 한 초기 단계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며, 다누글리프론의 임상 데이터를 향후 학술대회나 논문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분간 경구 GLP-1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화이자가 경구 GLP-1 분야에서 경쟁을 계속하려면 기술도입이나 외부 협력 등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한편, 화이자의 개발 중단 소식이 전해진 직후,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주가는 각각 2.6%, 2.8% 상승했다. 경구 GLP-1 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킹 테라퓨틱스, 스트럭처 테라퓨틱스, 멧세라 등의 주가도 두 자릿수 급등을 기록하며, 시장 기대감을 반영했다.

주사에서 먹는 약으로, 비만 치료제 시장의 다음 경쟁 무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 경쟁에서 누가 먼저 유효성과 편의성을 모두 잡느냐가 판도를 바꿀 결정적 요인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