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는 끝났다"는 말까지… 美 보건부 구조조정에 산업 '패닉'
피터 막스 사임 이어 3500명 해고…"젠가처럼 무너지는 규제 시스템" 정치가 덮친 FDA, 세포·유전자치료제 산업 '불확실성의 시대' 진입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생물의약품 평가연구센터(CBER)를 이끌던 피터 막스(Peter Marks)의 전격 사임은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산업 전반에 중대한 불확실성을 던졌다. 특히 그가 주도해 온 가속 승인 체계와 과학 기반의 유연한 규제 철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막스는 백신 정책을 둘러싼 보건복지부(HHS)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와의 갈등 속에 사실상 해임 압박을 받고 물러났으며, 그가 주도해 온 가속 승인 체계와 과학 기반 규제 철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막스는 사직 서한에서 케네디 장관을 향해 "진실과 투명성이 아닌, 거짓과 허위 정보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백신 안전성 홍보를 추진하던 중 백신 음모론에 기울어 있는 현 정부로부터 거듭된 견제를 받았으며, 복수 외신은 그가 사임하지 않을 경우 해임될 수 있다는 최후통첩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막스는 2016년 CBER 국장에 임명된 이후, 세포·유전자 치료제 심사 체계를 전면 혁신했다. 노바티스(Novartis)의 '킴리아(Kymriah)', 로슈(Roche)의 '럭스터나(Luxturna)',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의 '카스게비(Casgevy)', 이오밴스 바이오테라퓨틱스(Iovance Biotherapeutics)의 '암태그비(Amtagvi)' 등 최초의 CAR-T, 유전자 편집 기반, 고형암 세포치료제를 잇달아 승인하며 산업의 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DIA 글로벌 포럼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가속 승인을 활용하려고 한다. 특히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환자가 치료를 1~2년 더 일찍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생존에 결정적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INTERACT 미팅 도입, 플랫폼 지정 개념 확립, START 프로그램을 통한 희귀질환 임상 가속화 등 유연하면서도 과학적인 규제 환경을 조성해왔다.
하지만 막스의 퇴진과 동시에 FDA는 대규모 감원에 직면했다. HHS는 총 1만 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이 중 FDA 직원 3500명이 감축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용자 수수료 협상, 정책·커뮤니케이션 부서 등 산업과 직접 소통하던 조직이 해체되며, 초기 상담과 심사 조율 기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시장 반응 또한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CRISPR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는 8% 하락했고, 빔 테라퓨틱스(Beam Therapeutics)와 버브 테라퓨틱스(Verve Therapeutics)는 각각 12% 급락했다. 얼로진 테라퓨틱스(Allogene Therapeutics)는 6% 가까이 하락했고, 모더나(Moderna), 노바백스(Novavax) 등 백신 기업들도 동반 하락세를 기록했다.
리어링크 파트너스(Leerink Partners)의 마니 포루하르(Mani Foroohar) 애널리스트는 "지금 바이오텍 기업을 시작한다면, 백신 회사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막스는 CGT 분야에서 가속화의 중심에 있었고, 그의 퇴진은 전반적인 궤도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차기 인선에 따라 산업이 과도하게 보수화되거나, 반대로 과학적 근거 없이 유연화될 위험을 모두 지적했다.
이어 그는 차기 국장 인선에 따라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과학적 전문성과 규제 경험이 부족한 정치적 인사가 임명되면, 보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심사 체계가 자리잡을 수 있다. 반면, 지나치게 유연한 인물이 들어올 경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약물들이 승인돼 보험 급여 거부 등 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FDA 국장 로버트 칼리프(Robert Califf)는 "우리가 알던 FDA는 끝났다”고 평가하며, "제품 개발과 안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지도자들이 모두 떠났다. 역사는 이 결정을 큰 실수로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틀리브(Scott Gottlieb) 전 FDA 국장 역시 "FDA는 한때 유럽보다 뒤처졌지만, 지난 25년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규제기관으로 성장했다"며, "이번 조치로 희귀질환과 미충족 수요 분야에서 다시 승인 지연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FDA는 막스의 후임으로 스콧 스틸(Scott Steele) 박사를 국장 대행에 임명했다.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22년부터 CBER 고문으로 재직해온 인물로, 일정 부분 철학적 연속성이 기대되지만, 정식 인선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계속될 전망이다.
포루하르는 피터 막스의 퇴진보다 더 심각한 위기로, FDA 내부 핵심 인력의 이탈 가능성을 지목했다. 그는 CBER 내 심사관과 품질관리(CMC) 담당자 등 실무 인력을 중심으로 자발적 사임과 감원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조직의 사명이나 행정부의 지원이 약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현장을 지탱하던 인력들이 먼저 떠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세포·유전자 치료제 임상평가를 맡았던 롤라 파쇼인-아제(Lola Fashoyin-Aje) 박사는 최근 사임했다. 그는 FDA 종양우수센터에서 임상시험의 인종 다양성을 확대하는 '프로젝트 이퀄리티(Project Equity)'를 이끌었던 인물로, 연방 정부가 관련 프로그램을 금지한 직후 자리를 떠났다.
포루하르는 "젠가(Jenga) 게임처럼, 탑 꼭대기 몇 개가 빠지는 것은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중간과 하단의 블록들이 계속 빠져나가면, 전체 시스템은 빠르게 붕괴될 수 있다"고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