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 희생 볼모로 의사의 미래 말하나

데스크 칼럼 | 새내기들 '한 팔 희생' 앞세운 대안 없는 의정갈등 멈춰야

2025-03-31     허현아 기자

대한민국 의료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섰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1년 넘게 끌어온 의정 갈등에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3월 말 등록 마감 시한을 앞두고 의대생들의 복귀를 기다리는 교육 현장의 풍경은 긴박하고도 절박하다.

연세대를 시작으로 서울대, 가톨릭대, 성균관대, 울산대 등 '빅5' 주요 대학이 의대생 전원 복귀를 결정하면서 '등록거부 단일대오'가 무너졌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제적'을 감수하는 강경 기조도 일각에 남아있다. 이런 가운데 연세대에서 제적생이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료 정상화를 바라는 정치권도 의료인력 수급추계법안 신설을 여야 합의로 의결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의정갈등의 원인이 된 의료인력 수급 추계의 독립성, 전문성, 투명성을 확보하고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 명분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기성 의료계의 무책임한 태도다. 1년 넘게 지속된 갈등 속에 많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반납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쇄도하는 각계의 대화 요청을 거부하면서 대안 없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강선우 의원은 26일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신설을 위한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료계는 의료인력 추계의 과학적 근거와 민주적 절차를 담보해 달라며 표면적으로 수급 추계기구 설치를 요구해 왔고,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의료계의 수용성을 제1원칙으로 삼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협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힘썼을 뿐,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 명분을 찾기 위한 좋은 시점마다 오히려 지연 전략에 충실했다"고 비판했다. 

국회 의사일정을 되짚어보면 의료급여 수급 추계법안은 지난해 9월 여야 의원들이 처음 발의한 후 의료계 반대에 직면해 12월 법안소위 상정이 불발됐다. 올해 1월 21일 첫 법안소위가 열렸으나 "의료계 입장을 더 담아보자"는 취지로 심사가 계류됐다. 2월 14일 열린 입법 공청회는 참고인 12명 중 6명을 의료계 추천 인사로 구성했지만, 의료계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듣자는 취지에 따라 2월 19일 법안소위 심사가 또 다시 계류됐다. 뒤이어 2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여야 간사, 정부, 의협 간 비공개 간담회를 거친 2월 27일에야 여야가 합의한 최종 법안이 마련됐다.

강 의원은 이와 관련 "3월 18일 국회 보건복지워원회 전체회의에서 의료인력 수급추계법안이 겨우 통과됐지만 의협은 자신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며 공식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단일대오 유지를 위해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조금의 복귀 명분도 주지 않기 위해 법안 처리를 애써 미뤄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일갈했다.

의료인력 수급추계법안 발의에 동참한 의사 출신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은 주요 의과대학들의 등록 마감이 임박한 21일 SNS를 통해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들이 키워온 의사로서의 꿈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며 "이제는 학교로 돌아갈 여러분만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후배들의 복귀를 독려하기도 했다.

의대 총장들은 미래 세대가 '단절'될 위기 앞에서 "대학을 믿고 조속히 학교로 복귀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기를 간곡히 당부한다"며 "대한의사협회도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정부는 3월 등록 상황과 수업 정상화 여부에 따라 2026년 의대 정원 재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퇴로를 열어뒀다.  

의사협회는 그러나 의대생들의 복귀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28일까지도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체로서 학생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미온적 입장을 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도 같은 날 "한 팔을 내놓을 각오도 없이 무엇을 이루려 하냐"며 의대생과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에 불만을 표했다.  

의료계는 왜 바라던 의술을 펼쳐보기는 커녕 무엇 하나 얻지 못한 새내기와 초년생들에게 '한 팔의 희생'을 강요하나. 최근 일어난 최악의 산불로 소실된 생태계를 복구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 의료계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의료대란의 빠른 수습과 교육 정상화를 기원하며, 기성 의료계의 뼈아픈 자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