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정치경제학, 공공성 vs 시장성 균형 찾아야

데스크 칼럼 | 과잉진료 ·오남용 우려 속 비만 예방·관리 법제화 논의 재시동

2025-01-09     허현아 기자

올해도 '비만'이 핫하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을 필두로 한 비만치료제 열풍이 글로벌 제약 시장의 최대 테마로 떠올랐고, 국내 시장도 비만약 신드롬에 합류하는 분위기다.

체중 감량에 주효한 것으로 알려진 비만 신약의 작용 기전은 일시에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본격적인 시장 진입에 앞서 과잉 진료나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비만관리 법제화 논의가 재개돼 관심을 모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주영 의원은 9일 '비만법 제정 및 비만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연다. 국내에서 비만 관련 법제화가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5년 사이 비만학회, 당뇨병연합 등이 법제화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고,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 박희승 의원이 '비만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비만기본법)을 대표발의하며 정부 주도 비만 관리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는 다부처가 협력한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2018~2022)을 통해 비만 해결 공동 노력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비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엇갈려 법제화 논의도 장기간 표류했다. WHO는 지난 1997년부터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해 정책 개입 필요성을  환기했다. 이런 관점은 '비만'이 당뇨, 심혈관질환 등 심각한 만성질환으로 가는 '관문'인 만큼 조기 발견과 치료를 통해 질병으로 인한 사망과 사회적 손실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비만'이 국가 주도 영역으로 편입될 경우, 의료시스템에 과도한 부담과 재정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미용과 성형 등을 목적으로 한 비만치료제 오남용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돼 정부가 부작용 위험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대란에 따른 진료공백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전면 허용한 비대면 진료 동향에서도 비만약 오남용 징후가 나타나, 비대면 진료에서 비만치료제 처방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같은 부작용 때문에 비급여 영역에 놓인 비만 치료를 제도권으로 끌어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법제화 논의가 의료수가나 약가 논쟁과 같은 시장 논리에 편향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개별 질환을 표방한 법명의 적절성 또는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지난해 발의된 비만기본법은 비만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 비만 예방 및 관리에 필요한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여 국민 건강 수준을 제고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계와 정부가 함께 국민이 비만을 단순한 외모나 건강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문제로 바라볼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치료제 개발과 치료 환경 개선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새롭게 시작된 법제화 논의 과정에서 비만 문제가 지닌 공공성과 시장성, 개인의 책임과 국가 적 지원 사이의 균형을 찾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