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좀' 아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제대로 작업하고 싶다면
Helper Lab 신약개발 산업계의 친구
신약개발 생태계의 주인공은 연구개발자들이지만, 못지않게 이들을 적재적소에서 도와줄 실험실과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이라이트는 못받지만 소금과 같은 존재들을 조명해 본다.
① 분산형 임상시험(DCT) 최다경험 보유한 메디데이터
② 임상개발 내비게이터 메디라마
③ 의료제품 전주기 통합 솔루션 제공 사이넥스
④ 자문과 소송 '원스톱 서비스' 법무법인 세종 헬스케어팀
⑤ 헬스케어 특허전략 컨설팅 법무법인 디엘지
⑥ 제약바이오 특허전략 컨설팅 교연특허법률사무소
⑦ 가상 데이터룸 서비스 제공하는 인트라링크스
⑧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그룹 자이미디어
[끝까지 HIT 12호] 스티브 잡스가 '맥북 에어'를 출시했을 때 했던 프레젠테이션을 기억하는가? 그는 단상 위에 놓여있던 서류봉투를 들고 천천히 걸어나와, 무심하게 거기서 맥북 에어를 슥 꺼내들었다. 이 노트북은 두께가 몇 센티미터니, 무게는 몇 그람이니 하는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오직 시각 정보만을 활용해 '맥북 에어는 얇고 가볍다'는 인식을 청중의 머리에 때려넣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본다'는 건 이토록 강력한 설득의 수단이다. '키트루다(KEYTRUDA)' 홈페이지를 가면, 구구절절 긴 말 없이 2D 애니메이션으로 작용 기전을 설명한다. '아일리아(EYLEA)' 공식 홍보 영상에선 Y 모양 약물 분자가 노란색 VEGF 분자들을 착 잡아내는 3D 모션을 보여준다. 첨단 의약산업과 대중을 잇는 징검다리,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Medical Illustration)이 활용되는 모습이다.
연구하기 바쁜 과학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편집했을 리는 없고, 알아보니 거의 해외 전문 업체들과 진행했다 한다. 그런 동반자들이 한국에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뒤져보니 한 군데가 눈에 띈다. 한국 바이오텍과 연구진들을 위해 히트뉴스가 수소문해 찾아왔다. 논문 피규어(Figure)부터 3D 애니메이션까지. 제약바이오 IR/PR의 숨은 조력자를 자처하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그룹, 자이미디어(Zymedia)를 소개한다.
"여기 보면, 약물이 림프 안으로 쭉 타고 들어가거든요. 림프 노드(Lymph node)에서 T 세포를 만나죠. 더 확대해서 보면 이게 CD8+ T 세포거든요. 암세포에 닿아서 병변이 사멸하는 모습을 2D로 그려내고 있어요."
작업 중인 논문 그래픽을 줄였다 키웠다 하며 능숙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 실험실에 계시다 오셨냐'고 물을 뻔했다. 최지혜 일러스트레이터는 연구원 출신이 아니다. 그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학위를 따로 취득한, 말하자면 '의ㆍ과학 전문 시각 디자이너'다.
그가 타각타각 마우스를 두드리며 종양미세환경(TME)을 그리고 있는 자리 주변에는 실제 신약개발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앉아 있다. 보통 단독적으로 일하는 여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달리, 자이미디어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실시간으로 석ㆍ박사 연구원들과 소통하며 작업에 임한다.
자이미디어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일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본격적인 그래픽 작업 전, 연필로 슥슥 스케치를 한다. 잠시 고민하고는 고개를 돌려 옆 자리의 연구원에게 이것저것 질문한다. 자신이 이해한 물질 작용 기전이 이러이러한데 그게 맞는지,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해 볼 생각인데 과학적으로 오류는 없는지 점검한다. 거의 이해됐다면, 의도한 메시지를 최대한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을 구상한다.
3D 분자 모델링을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부탁하니, 그는 익숙한 듯 단백질 PDB(Protein Data Bank) 모델을 화면에 띄웠다. 디자인을 의뢰한 바이오텍에서 건네받은 PDB 파일을 기반으로, 필요한 체인(Chain)만 남기고 서피스(Surface)를 입히는 등 꽤나 테크닉을 요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얼추 만들어진 분자 3D 모델은 포토샵으로 옮겨져 다듬어지고, 논문의 피규어(Figure)로 쓰이거나 영상에 삽입된다.
특히 자이미디어가 진행 중인 작업에는 논문 피규어 디자인 건이 상당수다. 아래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주고받은 일문일답.
기자 화면에 띄워둔 건 논문 관련 가이드 같은데, 보고 계시는 이유가 있나요?
일러스트레이터 논문은 피규어를 만들고 배치할 때 공식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항상 이 가이드를 보면서 디자인 작업을 합니다.
기자 저널마다 요구하는 방식이 다 다른가요?
일러스트레이터 저널마다 다르고, 논문의 종류에 따라 달라요. 네이처(Nature), 셀(Cell), 사이언스(Science) 등 유수 저널에서 내는 가이드라인들을 보면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몇 칼럼짜리 논문인지, 일반 논문인지, 리뷰 논문인지에 따라 피규어 사이즈도 달라지고요. 디자인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거기 맞춰서 작업해야 해요.
기자 그럼 의뢰를 수주할 때, 논문을 주고 거기 있는 피규어를 다 작업해 주는 식인가요?
일러스트레이터 그렇다기보단, 논문에서 가장 돋보여야 하는 부분, 예컨대 그래피컬 앱스트랙트(Graphical Abstract) 같은 주요 이미지를 만들어요. 그래서 의뢰측 연구진과 주기적으로 소통해야 하고, 연구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죠.
이처럼 '연구의 내용을 이해한다'는 건 자이미디어 고유의 장점일 터다. 일반적인 디자이너와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을 진행하게 되면, 매우 사소한 개념부터 정의하고 알려주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체는 무엇인지, 세포막에 돋은 수용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편의 강의를 펼치고, 여러 번 수정이 들어가며 비용도 상승한다. 그래서 생물학이란 맥락을 아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대화한다는 건 작업 효율과 비용 모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자이미디어는 의뢰측의 의도에 맞춰 디자인 방향을 역제안할 수도 있는 걸까. 슬쩍 물어보니 역시나 자주 있는 일이라 한다. 일례로 특정 항암 메커니즘에 대한 2D 그래픽 요청이 있었을 때, 의뢰측이 요구한 건 암세포 위주의 그림이었다. 이 때 자이미디어는 해당 암종이 무엇인지 묻고는, 췌장암이란 답변이 돌아오자 '그렇다면 췌장 그래픽을 포함시켜 디자인해, 암종까지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자'고 제안해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를 이해한다'는 첫 번째 장점에서 파생된 '맥락을 읽는 기획력'이 반짝이는 부분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기획력은 바이오 분야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은 순수 연구로 소통하는 논문 생태계에도 필요하지만, 그 연구가 개발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에선 필수불가결하다. IR 행사, 회사 웹페이지, 학술마케팅을 통해 투자자ㆍ대중ㆍ의료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면, 시각적으로 매우 직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과학자들이 거듭 훈련하는 논리정연함은 직관의 정반대 편에 있다. 데이터가 학계의 울타리를 넘어 시장으로 갈 때, 논리정연함만을 고집하게 되면 오히려 설득력을 잃기도 한다. 소위 '교수 창업'을 한 연구인들이 IR 행사에서 투자자들의 뚱한 얼굴을 마주하며 당황하는 일들은 대부분 이런 이유로 일어난다.
직관을 훈련해온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연구진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한 장의 그림이나 몇 분의 영상을 통해 청중의 머릿속에 직배송한다. 자이미디어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책을 보는데 표현이 엉성하고 문장 구조가 이상하면 그만 읽고 싶잖아요. 글에 가독성이 있듯 그림과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잘 보이게 하는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바이오 분야에선 연구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서로가 소통하기 힘들어요. 훈련된 과학자들도 그런데, 과학자와 일반인의 소통은 오죽할까요? 그 간극을 메꾸는 힘이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이라 생각해요. 수많은 데이터로 이야기해야 하는 업계지만,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강렬한 비주얼임을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