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지출 방향성 '확' 바꿔야 환자도, 산업도 산다

대략 공감... 그러나 정부와 업계가 느끼는 '속도'와 '온도' 차이 분명

2024-10-15     이현주 기자

 [FOCUS] 신약 재정지출 OECD 꼴지, 이대로 괜찮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몇 위인지 관심이 많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23년 OECD 소속 35개국을 대상으로 내놓은 경제 성적에서 한국은 2위를 차지했다. 근원 물가 상승률과 인플레이션 확산 수준을 잘 억제했다는 평가에 기반한 결과이다. 경제 지표를 적절히 잘 통제하는 나라 한국, 그렇다면 보건의료 분야는 어떨까? 혁신적 약제에 대한 접근성과 약품비 지출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한국의 성적은 초라하다. 

① 약품비 지출구조 국가별 현황 분석

② 건강보험 지출 구조가 부른 문제점

[끝까지히트 11호] 최근 개발되고 있는 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의 경우 '억' 소리 나는 고가 약제들이 많다. 실제 개인 맞춤형 의약품, 원샷 치료제 등 의약품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는 초고가 약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고비용 의약품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았다. 고가의 혁신 신약은 환자의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필요하지만 건강보험 지불 가능성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두 가지 상충되는 목표를 합리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23 급여 의약품 청구 현황>에 따르면 2023년 건강보험 총 진료비 대비 약품비 비중은 23.86%를 차지했다. 전년도인 2022년 23.34% 대비 0.52%p 증가했다. 또한 2019년부터 작년까지 청구 약품비 금액은 커지고 있지만 비율로 따지면 23~24%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 약품비는 19조 3388억원(24.08%)이었고 2020년 19조9116억원(24.54%), 2021년 21조2097억원(24.06%), 2022년 22조8968억원(23.34%)으로 집계됐다. 이들 약품비 중 신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15%대다.

이 같은 약품비 지출 구조는 국내 제약산업의 개발 및 판매 환경이 여전히 제네릭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중 제네릭 비중이 높고 처방당 의약품 개수 측면에서도 해당 질환 치료에 꼭 필요한 약 이외에 통상적으로 처방되는 약제들이 많은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 신약의 약품비 지출 현황 분석 및 합리화 방안 연구'를 수행한 이종혁 중앙대 약대 교수는 "우리나라 약품비 지출 비중은 2021년 기준 전체 진료비 대비 약 23%대로 안정적인 수준에 접어들었으며 증가율도 진료비 증가율에 비해 낮아 약품비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신약 접근성 개선에서는 주요 선진국 대비 허가 및 급여율, 도입 속도 등의 지표는 좋지 않다. 특히 해외에서 허가된 품목 중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신약이 많고 급여도 되지 않아 체감 접근성은 더욱 낮다"며 "약품비가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만큼 중증질환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 방안과 약품비 이외의 다른 증가 요인으로 재정관리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약 론칭 코리아 패싱에 임상시험 참여도 밀린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신약을 가진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이 같은 약품비 지출구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 MA(Market Access) 담당 A임원은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 본사 입장에서는 국가의 경제 규모, 시장 규모 측면에서 한국의 제약 시장을 중요하다고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 건강보험 지출구조 자료가 보여주는 수치는 혁신 신약에 대한 공정한 가치 평가를 통한 도입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인식이 고착화될 경우 치료제가 없는 새로운 분야의 신약 출시 우선 순위를 평가함에 있어 한국보다 혁신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해주는 국가에 제품 출시에 필수적인 요소인 임상연구, 공급 계획 등의 우선 순위를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국내에 급여 등재 되어 있던 SGLT-2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들의 한국 철수도 같은 맥락에서 본사가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아스트라제네카가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포시가정'을 철수했고, 아스텔라스는 항당뇨병제 '슈글렛정'과 장정결제 '이리보정'의 허가를 취하했다. 여기에 비만 치료에 효과를 입증한 '마운자로', '위고비' 등이 제한된 생산물량으로 국내 도입 순서가 늦춰지고 있다.

또 다른 제약사 대관 B 담당자는 "코리아 패싱은 물론 나아가 초기 개발 단계의 신약들의 경우 국내 임상을 통해 빠른 도입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시장 출시 가능성에 부정적인 인식이 반영되면서 한국의 글로벌 임상 참여 요청이 점점 더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글로벌 제약 C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임에도 약가를 제대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 하에 해외에 발매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며 "동일한 이유로 글로벌제약사도 우리나라에서 신약을 발매하는 것을 기피하거나 출시 시기를 이전처럼 서두르지 않고 지연시키는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약의 가치는 더 확실하게 인정하고, 제네릭 관리는 엄격하게 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치료에 꼭 필요한 신약에 건강보험 재정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되는 것"이라며 "이 같은 방향의 약품비 지출 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다만, 속도 측면에서 국내 제약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ICER(Incremental Cost-EffectiveRatio, 점증적 비용-효과비) 상향 및 질환별·중증도별 탄력 적용, 경평생략 대상 확대, 환급에 기반한 이중약가제 활성화(위험분담제에서 분리), 적응증별 약가제도, 통합적 사후관리로 중복적이고 기계적인 약가 인하 지양, 약가인하 대신 환급제 적용 활성화, 성과 기반 위험분담제 확대 등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신약에 대한 가치 인정과 신약의 신속 등재를 위한 다양한 맞춤형 접근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업계가 느끼는 '속도'와 '온도' 차이는 있다

정부는 신약의 접근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최남선 부장은 지난 '건강보험약제비 지출 현황 및 합리화 방안 토론회'에서 "신약 접근성이 낮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수치를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내 허가 약제의 약 67%가 급여화 되고 있으며, OECD 평균 허가 약제와 급여 약제의 비율 70%를 계산했을 때 너무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우리나라의 허가율은 14%, 급여율 12%로 허가약제의 85%가 급여되어 OECD 평균 73%보다 높고, 항암제의 경우도 허가 약제 대비 77%가 급여돼 OECD 평균보다 높다. 국내 진입 시점 46개월 역시 세계와 비교하면 너무 늦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반으로 RSA 도입 이후 등재된 신약 성분 204개의 청구비가 약 3조1200억 원으로 나타났다. 신약 약품비 증가율은 연평균 25%로, 총 약품비의 연평균 증가율 8%의 3배 수준이고 증가액도 5000억원으로 약품비 증가분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최 부장은 전했다. 

최 부장은 "약제비 지출 관리와 접근성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약품비 관리를 위해서는 포괄적인 관리 기전도 검토해봐야 할 시점"이라며 "총액 관리 등이 신약의 접근성을 낮춘다고는 생각 안 한다. 신약이나 다른 약제들의 지출을 관리할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와 구체적 이야
기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사후관리 필요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측 관계자는 "업계가 바라는 속도와 간극은 있지만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생략제도 도입, 이 같은 제도들의 대상 확대 등 신약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혁신성을 더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개선안도 내놨다"며 "신약의 보장성을 늘려야 한다는데 
반대하지는 않지만 보장성을 무한으로 늘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업계가 사용하는 '지출 구조의 합리화' 개념의 차이가 있다"며 "업계는 신약의 보장성 강화에 가깝게 사용하지만 정부 입장은 약품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다. 효과가 의심되는 약제들과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한 약제들은 확실한 사후관리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상 현장에서는 건강보험 시스템에서 국민 정서와 국가 경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암, 희귀질환에 대한 전문가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다른 질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항암과 희귀질환은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 때문에 방어적으로 접근하는 정부 입장은 알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치료 시기를 고려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급여 여부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은 개선돼야 한
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시작해야 할 시점

결국 환자의 신약 접근성과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장기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협의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작년 4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50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85%가 경증질환보다 중증질환 중심으로 필수의료 혜택을 현재보다 확대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 응답자의 92.2%가 국민건강보험의 목적을 '고액 진료비로 과도한 가
계부담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 조사에서 최근 1년 동안 경증질환 치료 대비 중증질환 치료에 5.7배를 더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과 관계없이 중증질환에 소요하는 비용은 비슷했다. 응답자들은 건강보험 재원을 중증질환과 경증 질환에 배분할 경우 66대 34 비율을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약품비 지출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 기구가 있어야 한다"며 "다만 민간에서 위원장을 맡는 등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호주는 정부와 의약품협회가 협의를 통한 공동의 장기 건강보험 약제 계획을 발표했다"며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협회, 정부 그리고 학계가 정기적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협의체를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