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언젠가는 우리도 경제성평가 뚫는 날이 오겠죠"
생각을 HIT | '연구개발-신약개발-매출상승' 선순환 구조 강화해야
얼마 전 "경평(경제성평가)를 뚫어내는 국산신약이 나오면 좋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동의를 하면서도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경평은 혁신신약의 대표적인 보험등재 관문으로 꼽힌다. 결국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는 뜻이기도 하면서 아직 갈길이 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과거 열악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제네릭을 신약개발을 위한 젖줄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제네릭을 통해 축적한 자본과 기술로 업계가 어느정도 성장하면서 제네릭을 개선한 개량신약이 신약개발을 위한 징검다리가 됐다. 개량신약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비교적 적은 연구비용·기간으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어, 당시 많은 기업이 뛰어들면서 한층 더 기술력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젖줄과 징검다리, 모두 말은 다르지만 혁신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제약업계가 연구개발 비용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의미다. 오래전 의약품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던 제약업계가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지금은 제네릭을 만들고 개량신약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제네릭과 개량신약으로 확보한 자금력을 연구개발 비용에 투자하면서 이뤄낸 성과다.
그동안 제네릭, 개량신약을 통해 어느정도 연구개발력이 축적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앞으로는 베스트인클래스 약물이 베스트인클래스 개발을 위한 징검다리로 불릴지 모른다.
혁신신약으로 불리는 퍼스트인클래스(계열 내 최초)는 아직 아무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던 치료제라는 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력이 필요한 신약이다. 개발에만 성공하면 블록버스터에 등극,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개발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높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후보물질을 발굴하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성분과 작용기전을 가지기 때문에 연구개발 과정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어렵다.
우리는 흔히 신약이라고 하면 퍼스트인클래스 약물을 연상하기 쉽지만 가장 최근에 개발된 자큐보까지 국내에서 허가된 37개 신약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베스트인클래스(계열 내 최고)에 속한다. 시장성을 확보한 국산신약이 등장한 것은 그나마도 최근의 일이다. 혁신신약은 아직까지도 이미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의 영역으로, 아직까지는 국내 제약업계의 연구개발역량이 더욱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국내 업계가 제네릭부터 베스트인클래스 신약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일정부분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면서 꾸준히 역량을 가꿔왔기 때문이다. 막대한 개발비용이 드는 신약개발을 정부가 모두 지원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퍼스트클래스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제네릭, 개량신약, 베스트인클래스 제품을 통해 이룬 매출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다시 또 다른 신약개발을 추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때문에 제약업계는 약가산정시스템상 국내에서 베스트인클래스 약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높다. 해외진출시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신약등재 방식은 동일한 기전을 가진 대체제가 있다면 각 대체제의 가중평균가를 적용하게 되면서 더 낮은 약가가 설정된다. 신약 평가과정에서 혁신성에 높은 배점이 매겨지면서 국산 베스트인클래스 약물들의 가격은 낮아지고 있다. 결국 매출-연구개발의 선순환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국산신약의 가치를 평가할 때 국내에 투자한 연구개발비용, 한국인 대상 임상시험 여부 등 사회적가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한가지는 투명한 약가제도로 인해 국내에서 설정된 낮은 약가가 공개되면서 해외약가를 설정할 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제네릭과 달리 대규모 연구개발자금이 투여된 신약들은 더욱 큰 매출을 얻기 위해 글로벌 진출은 필수적인 사안으로, 최근에 개발되는 신약들은 초기단계부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국내의 안정적인 건강보험체계, 투명한 약가공개로 인해 해외에서는 국내 약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며 반영하기 바쁘다. 해외에서 먼저 허가받는 일부 제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산신약은 해외약가산정에서도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실제가격과 표시가격을 다르게 반영하는 이중약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모두 연구개발-신약개발-매출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자는 취지다. 2020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개발중인 신약 파이프라인 중에서 퍼스트인클래스는 5%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다수의 신약후보가 베스트인클래스 제품이라는 뜻이다. 마침 정부가 현재 장고를 거듭하면서 발표가 미뤄진 혁신신약 우대방안에도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타이밍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경평을 뚫는 제품까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