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특허연계제 시행 10년, 이제는 미등재가 대세
생각을 HIT | 규칙과 반칙 사이, 어느덧 대세전략으로 자리잡아 버린 사연은
2015년부터 시행했던 허가특허연계제도가 어느덧 10년차를 맞는다. 허특제는 한미FTA 타결에 따라 국내 제약업계에도 적용해야만 했던 제도로 처음 시행을 앞두고 업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혼선을 겪으면서 많은 산통을 겪었던 정책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위한 국내 제약산업의 선진화'라는 거창한 도입취지를 그 당시 누구도 믿지 않았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어색하기만 했던 ‘의약품의 허가와 특허’의 연관성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 시행 이후 제약사가 좋은 약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특허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특허소송전이 누적되면서 업체들마다 공격과 방어를 위한 노하우가 쌓여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다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이 노하우 중 하나로 자리잡은 '미등재특허'다.
허가특허연계제는 국내에서 시판이 허가된 의약품의 특허를 식약처 특허목록에 별도로 등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만약 해당 특허와 관련있는 의약품의 품목허가가 신청되면 식약처가 특허권(오리지널)을 보유한 제약사에게 침해 가능성을 고지해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의약품이 허가될 때부터 확인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 출시될 때는 특허문제가 없는 의약품(제네릭)을 내놓겠다는 취지다. 특허권을 보유한 제약사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고, 제네릭을 출시하는 후발제약사에서는 불미스러운 특허이슈를 사전에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잘 작동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새 신약 등의 의약품 특허권을 보유한 업체들은 제네릭 개발과 출시를 늦추기 위해 미등재특허 전략을 내놓고 있다. 식약처의 특허목록에 특허를 등재하지 않으면서 연관 특허의 파악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베링거인겔하임 측에서 DPP-4억제제 기전의 당뇨병치료제 트라젠타(리나글립틴) 제네릭업체들을 대상으로 내용증명을 보내 특허침해 사실을 통보했다. 대상이 되는 특허는 식약처 특허목록에 등재되지 않아 후발제약사들이 대응하기 쉽지 않았던 미등재특허다.
제네릭들은 이미 허가는 물론 급여목록에도 오르면서 트라젠타의 약가는 30% 낮아졌다. 약가인하분 만큼의 매출감소는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결국 계산기를 두드려봐야겠지만 제네릭 업체들이 어떤 전략을 세울지는 지켜봐야할 전망이다. 해당 특허가 미등재인 탓에 허가특허연계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셈이다.
허가특허연계제도의 시행목적은 ‘의약품 개발자의 특허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후발제약사들로 하여금 신약의 안전성·유효성 자료 이용을 확대, 장려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 개발사들은 트라젠타 사례외에도 특허의 미등재 전략을 통해 자력으로 특허를 보호, 제네릭의 진입을 늦추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후발업체들도 식약처 특허목록에 등재된 특허 보다 별도로 미등재특허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특허방어 전략이 효과적으로 적용되면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식약당국이 야심차게 시행했던 제도 허특제의 의미도 퇴색해질 수밖에 없다.
장기간 이어지면 허가특허연계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약품특허목록은 이제 신약을 개발한 업체에서는 등재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고, 제네릭을 개발하고 싶은 업체들에서도 살펴 볼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정보로 전락할 수 있다.
그동안 허가특허연계제에 대한 실효성을 강화해야한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지만 미등재특허만큼 제도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문제는 없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특허를 보유한 외국계제약사는 물론 국내사에서도 미등재특허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추세다. 이제는 대세로 자리잡혀가면서 주무부처인 식약처에서도 미등재특허 문제를 간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허권을 보유한 제약사들의 선택의 문제일 뿐, 어떻게 미등재특허를 관리할 것인지는 식약당국에서도 다루기가 어려울 수 있다. 다만 문제를 단순히 제약사의 선택에 맡기고 허가특허연계제를 우회하도록 방치할 것 인지, 공론의 장으로 끌어와 개선점을 찾을 것인지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