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증이 20개 넘는 면역항암제'... 신약급여에 대처하는 자세

데스크칼럼 6개 면역항암제 급여적용은 21개요법... 키트루다만 적응증 29개 적응증별 약가산정(IBP)제도 등 능동적 검토 필요

2024-07-15     이현주 기자

최근 서동철 의약품정책연구소 소장은 글로벌제약사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적응증별 약가산정(IBP)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IBP는 특정 약물이 하나 이상의 적응증을 가질 때 각각의 적응증에 대한 가치를 고려해 서로 다른 가격을 책정하거나, 환급 시 차등 할인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을 말하는데, 의약품 가격은 생산 비용과 시장 경쟁 상황에 기반해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 약제가 제공하는 건강상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물론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개념은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가장 대표적인 약제인 면역항암제가 국내 도입된지 10년이 지나면서 적응증과 급여적용 간 간극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고, 여기에는 환자 접근성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해당 이슈는 글로벌제약사의 신약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올해 2월 면역항암제 도입 10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6개 면역항암제 21개 요법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MSD의 키트루다(성분 펨브롤리주맙)의 경우 최근 16개 암종에서 29개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성분 니볼루맙)은 10개 암종에서 약 20개 적응증을 확보했다. 티쎈트릭(성분 아테졸리주맙)은 5개 암종에서 8개 적응증을 가졌다. 3개 면역항암제의 적응증만 합쳐도 57개에 달하지만 급여혜택은 턱 없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첫 적응증 가치에 기반해 단일가격으로 의약품 상한금액을 책정하고, 새로운 적응증 추가에 따라 급여확대 시 약가를 인하하는 지금의 약가 제도로는 환자와 의료계가 요구하는 접근성 개선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에서 출시된 항암제 중 25%는 품목허가를 획득한 후 적응증을 추가했다고 한다. 멀티 인디케이션이 일반적인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서 교수에 따르면 아플리버셉트는 안과질환에 대해 '아일리아'라는 브랜드로, 종양학 적응증에 대해서는 '잘트랩'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동일한 약제지만 각각 다른 제품으로 인식돼야 성립 가능하다. 

또 다른 방법은 실제 가격을 차등해 사후정산하는 방식이다. 전체 적응증의 사용량 또는 가치를 반영해 가중평균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전체 적응증의 가중평균 단일약가)을 취하거나 사용량, 가치 또는 둘의 조합에 따라 적응증별 실제가격(net price)을 차등 적용(적응증별 환급율 차등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IBP제도가 도입된다면 최적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환자가 치료제에 접근하고, 혜택을 받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기대효과는 의료계, 산업계, 정부 모두 어느정도 인정하는 바다.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법적 또는 규제적 장애, 데이터 수집 문제 등의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적응증별 급여가 된다면 각각 다른 급여코드를 부여해야 하고, 환자 본인 부담 산정, 별도 환급방안 마련 등 건강보험 청구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이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또다른 산은 바로 사회적 합의다. 즉, 동일한 약품읠 사용하는 다른 질환자의 본인부담금 차이에 대한 형평성 문제다. 

정부의 입장 역시 시스템적인 문제, 사회적 합의 필요, 한정된 재정 등을 이유로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임상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추가되는 적응증을, 급여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혁신적인 신약의 급여 필요성, 현 약가제도의 문제점, 검토해 볼 만한 해결방안이 사실상 나와 있다. 정부는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하기 보다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제약사들도 제도와 발 맞춰 재정분담 방안을 같이 고민하고 치료 접근성 해결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