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장 하마평에 다시 떠오른 '식약처의 정체성'

데스크 칼럼 | 산업 진흥-업계의 심판 사이 '균형'은 어디서 오는가

2024-06-17     이우진 기자

"뉴스 봤어요. 그거 어떻게 되는거예요? 가능성이 높은 건가요?" 최근 모 기관 관계자가 <히트뉴스>에 보도된 복지부 모 인사의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을 보고 남긴 말이다. 짐짓 아는 것을 알려준 뒤 전화를 끊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식약처장이라는 자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었다.

필자는 살가운 사람이 아니다. 뜬금 없이 자기고백 같은 말을 꺼내는 것은 취재처에서도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다. 무릇 모든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이다. 특히 이는 기자로서 조금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객관화에 도움이 되고, 기사 작성 후 괜한 청탁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한 수정 요청 등을 피하는데 보탬이 된다. 

식약처에 대한 우려는 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는 태생이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옛 이름) 소관이었다가 1996년 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거쳐 1998년에서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시작된 만큼 복지부와 식약처 관계는 완전히 이질적이지 않다. 이후 기관명도, 조직구조도 꾸준히 바꿔가며 현재 자리에 이르렀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시작된 '한국의 FDA'로 자리잡기에 아직 모자란다는 비판과 지적이 나오기도 하지만 처의 성장세는 확연하다. 업계의 일반적 평가가 그렇다.

필자의 고민은 이 역사성에서 시작한다. 수많은 정부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면서 식약처를 향한 관심은 커졌지만 과연 식약처가 얼마나 독립성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산업계의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특정 사태가 터지면 한 쪽이 힘을 받다가, 다른 범주의 사건이 터지면 반대편 계열 사람들이 다시금 부상한다. 정책 방향도 왔다갔다 하며 식품 쪽에 힘을 줬다가, 의약품 쪽으로 힘이 쏠리는 일도 적지 않다. 산업을 육성한다고 부산을 떨다가,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 발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산업을 매우 거칠게 다룬다. 

대표적인 게 특허 분야다. 한미 FTA로 인해 허가특허연계제도가 업계의 주목을 끌던 당시 업계는 식약처 내 의약품허가특허관리과의 입을 주목했었다. 특히 국내 제네릭 제품이 허가특허연계제도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고, 미국 측이 허가특허연계제도의 개편을 요구하면서 제약사들이 캐시카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발현되면서 해당 과는 기자들에게도 중요 취재 대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2020년 허가특허연계제도 등을 담당하던 해당 과가 7년만에 사라지고 4년이 지난 현재 의약품정책과로 들어와 있지만 이와 관련해 식약처에서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요 오리지널 제품의 미등재 특허 소위 그린리스트 외 특허 문제로 회사들이 내용증명이니 소송이니 하며 시끄럽고, 비록 21대 국회에서 폐기됐지만 연장 가능 특허와 기한을 제한하는 소위 '특허캡' 제도를 담은 특허법 개정, 나고야 인증서 이후 생약 제제의 특허 문제 등이 대응 필요도 높은 과제로 언급되지만 식약처는 마땅한 대응이나 소식을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혁신의료제품의 허가와 허가ㆍ약가로 이어지는 빠른 진입제도 등은 최근 몇 년간 이런저런 보도자료를 비롯해 다양한 목소리를 직간접적으로 들려준다. 오히려 식약당국이 공정한 심판보다 플레이어를 돕는 페이스메이커(마라톤에서 선수의 속도 및 상태 등을 유지시켜주는 이) 역할에만 치중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최근 2년 사이에는 이와 함께 '마약예방관리와 치료'라는 분야에서 더 힘을 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이버조사단 등을 포함해 여러 부서가 지자체 등과 함께 마약류 관련 문제를 점검하고 처방체계를 안전하게 바꾸겠다는 구호를 들고 나오지만 식약처가 가진 역할에 비해 오히려 수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다보니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는 식약처가 아닌 '마약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돈다.

식약처에 관해 이런 말을 던지듯 이야기하고, 현재 상황을 비판하며, 못난 행동이라고 폄훼할 생각은 없다. 국내 모든 직업 중 가장 '소울리스'(영혼없는)한 직업을 공무원이라 하듯이 식약처 공무원들도 내려오는 방향성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시간이 만나는 이들마다 '나때는 말이야' 식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 시책을 중시하는 인물이 식약처장이 되면 식약처는 산업 진흥과 공정한 심판이라는 균형을 잡아야 하는 위치에서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할 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여러 관계자들 사이에서 니오고 있다. 물론 복지부 출신 처장이 있었지만 식약처 특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경우 식약처 정체성 바깥으로 치우쳐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약처장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식약처 존재 이유, 즉 정체성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