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백전백승... 빅파마 상대 오픈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

생각을 HIT | 글로벌 빅파마를 상대하는 국내 바이오텍의 태도

2024-05-14     황재선 기자

최근 글로벌 제약회사 APAC(아시아-태평양) 지사의 C레벨 임원들을 취재하며 빼놓지 않는 단골 질문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당신 회사와 협업하려는 국내 바이오텍들은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가'다. 외국 기업의 거울에 국내 바이오텍을 비춰보고 싶지 않지만, 힘의 역학관계가 그러하니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질문이 더는 필요없는 시절이 어서 왔으면 한다.  

3~4년 전만해도 글로벌 빅파마들이 한국을 찾아 국내 기업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잠재적 파트너 업체들에게 스스로를 PR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와 관련해 C레벨 인사들은 한국이 선진화된 임상 환경과 의료진을 바탕으로 글로벌 임상을 주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우수 과학 기술을 보유한 개발 초기 단계(Early stage) 바이오 기업들이 많아 협업에 용이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말의 성찬일까? 여전히 글로벌 빅파마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 소식은 가뭄에 콩나듯, 간간히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상황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더 활발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기대하는 입장에서 여전히 목이 마르다.

글로벌 제약회사 별로 주력 모달리티(modality)부터 관심 적응증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들의 수요(Needs)를 동일한 기준으로 묶을 순 없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그들이 원하는 파트너사의 기준은 3가지로 공통 분모로 묶을 수 있었다. ①의학적 미충족 수요(Medical unmet needs) ②파트너 기업의 과학적 수준&혁신성 ③양사간 사업 적합도(Business fit) 등이다. 

세가지 조건을 충촉했다해도 모두 파트너로 엮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가운데 한 가지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최종 파트너로 선정되지 못한다. 

국내사 한 사업개발 부문 임원은 "신약 물질에 적용되는 과학 기술과 그 혁신성은 상당수 한국 기업들이 일정 수준이상 넘어온 것 같지만,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시키는 데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다"며 "양사가 바라보는 공통 목적이나 방향성을 가지지 못한 파트너십은 이뤄질 수 없다. 서로 어떤 부분에서 장점이 있고, 이것들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글로벌 빅파마의 한 면역항암제와 국내 바이오텍의 신약 물질간 병용요법, ADC를 구성하는 다양한 페이로드(payload) 조합, 기존 블록버스터 제품의 제형 변경 등은 모두 이들과 관련된 예로 충분하다.    

자사 기술 보호를 위한 특허 출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협업 타임을 놓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협업에 있어 파트너사의 기술이나 제품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요소는 데이터인데, 이들을 제공하는 시점이 너무 늦다는 설명이다. 

실제 4월 4일 열린 노보노디스크 파트너링 데이 심포지엄에서 토마스 랜드 사업개발부 선임과학자는 "한국 벤처들은 단순히 자사가 개발하고 있는 물질의 데이터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소개하는 단계에서도 데이터 유출을 우려한다"면서 "기밀을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물질의 과학적 내용을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이 진짜 기밀인지 알고 공유하게 된다면 더 빨리 임상 개발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자료가 임상 수준에 맞게 완벽하게 패키지를 구성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데이터까지 확보하고 있는 지 알아야, 추후 어떤 방식으로 개발 및 협업해 나갈 수 있을 지 알 수 있다"며 "오픈이노베이션을 준비하는 업체라면 어떤 시점에, 어떤 데이터를 글로벌 제약사에 제공할 수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 말이 파트너십이라고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오픈이노베이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및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 간 다양한 오픈이노베이션 미팅을 주관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신이 어떤 기업과 파트너십을 원하는 지 노골적으로 힌트를 주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파트너십을 원하는 글로벌 제약사가 있다면, 이들이 참여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행사에 참가해 허심탄회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반기 국내 제약사와 글로벌 제약사 간 협업 소식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