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라는 이유로'... 그날, 그들은 먹고 마시며 대화에 빠져들었다
산타 모자에 루돌프 머리띠… 글로벌 BD 한데 모여 '직연' 맺어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지명컨설팅 주최로 GBD Night 열려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강력한 관계의 동기다. 비슷한 동네에서 자랐다 하면 괜히 반갑고,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타국에서 동향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눈물까지 찔끔 보이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 1분이라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잘해주게 된다. 학연(學緣), 지연(地緣)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이 점점 먹히지 않는, 먹히지 않아야 한다고 간주되는 시대가 왔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손 내밀다가는 뚱한 얼굴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연(緣), 혹은 네트워크의 의미가 퇴색됐냐'고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강화됐을 뿐이다. 이제는 말하자면 '직연(職緣)의 시대'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같은 업무,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동질감은 또 다른 구심점이 돼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 맺는 인연으로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넘치는 경험을 나눈다.
그런 활동에 누구보다도 진심이어야만 하는 직군을 고르라면 역시 '사업개발(BD)팀'을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처음 만든 신약, 처음 들여온 제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처음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을 개척하는 입장이다 보니, 옆에서 같이 길을 닦는 사람에 기웃대며 뭐라도 하나 배워가려 드는 것이 이들의 천성이다.
문제는 이들이 좀처럼 모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눈송이도 먼지 한 톨 같은 핵이 있어야 생기듯, 누군가는 빌미를 만들고 판을 깔아줘야 한다. 그래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회장 노연홍)와 지명컨설팅(대표 권진숙)이 나섰다. '글로벌 사업개발(Global Business DevelopmentㆍGBD)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고 내놓은 바로 그곳이다. 교육만으로 모자랐는지, BD들에게 '연'을 만들어주겠다며 산타 모자에 루돌프 머리띠를 씌우고 밥까지 먹여 보냈다 한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히트뉴스>도 현장에 잠입(?)해 취재했다. 30여명이 함께한 '글로벌 비디 나잇(GBD Night)' 현장을 소개한다.
GBD Night 행사는 'GBD 전문 교육 프로그램 2기' 수업이 끝난 지난 6일 저녁에 이어서 진행됐다. 1ㆍ2기 수강생이라는 동질감으로 반쯤 친해져 있던 각 제약바이오 기업의 BD들은 식당 입구에 놓인 산타 모자와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나선 완전히 친해져 노닥이기 시작했다.
말은 행사라지만 식순은 없었다. 그저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이 거의 전부였다는 게 특이한 부분이다. 도중에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한 퀴즈 시간이 잠깐 진행됐지만, 그 외 시간은 BD들 간의 자유로운 대화를 위해 할애됐다. 곳곳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명함을 건네고, 연말 휴가 계획이나 가족 이야기 등 가벼운 잡담이 오갔다.
하나 강조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음식이 맛있었다는 것이다. 구태여 이런 시시콜콜한 점을 짚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시가 비워지는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BD들은 온갖 주제의 대화에 열중해 있었다. 가벼운 잡담으로 시작했던 대화는 이내 업계 최신 동향과 주요 라이선싱 딜에 대한 토론으로 바뀌어갔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올해 4분기 '핫이슈'였던 종근당의 'CKD-510(개발코드명)' 라이선스 아웃(L/O) 소식과 오름테라퓨틱의 'ORM-6151' 물질 양도계약 이야기도 드문드문 들려왔다.
업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음은 물론이다. 직군마다 특유의 고됨이 있기 마련이다. 이 자리에 모인 BD들은 무엇이 힘들다고 느껴왔을까. 그리고 그 해답을 여기서 찾았을지도 궁금해진다. 근처에 있는 인원 몇 명을 슬쩍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봤다.
박 기자 BD 업무를 하다 보면 각자가 겪는 어려움이 다르다고 들었어요.
차봉근 세닉스바이오테크 이사 우선 주위에 BD 업무에 대해 물어볼 분이 많지 않고, 있다 한들 개인적으로 배움을 청하기에는 아는 분은 아닌, 그런 상황이 많은 것 같아요. 서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배준구 일리미스테라퓨틱스 수석 실제 딜 케이스(Deal case)를 많이 경험하기 어렵다는 게 아쉽죠. 과거 이뮨온시아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감사하게도 라이선스 아웃 업무를 진행해 본 적이 있지만, 이 한 건이 아직은 경험의 전부거든요. 바이오텍에서 일하는 입장으로서 많은 수의 딜을 겪어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박 기자 차 이사님의 경우는 네트워킹이, 배 수석님은 딜 경험이 아쉬웠다는 거네요. 한국 BD 업계의 수많은 어려움 중 하나죠. 오늘 이 자리에서 얻어가는 부분이 있나요?
차 이사 BD 업무가 업무이다 보니,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알아두고 대화하려고 계속 노력해오고 있어요. 이번 GBD 2기 교육을 받으면서 맺은 인연들이 있고, 또 오늘 이 자리에서 알게 된 분들이 있습니다. 당장 2기 교육 강사이신 조원희 디라이트 변호사님만 해도, 저희가 실제로 딜을 진행할 때 도움을 여쭐 수 있는 분이죠. 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외적인 부분에서도 수확이 있어요.
배 수석 우선은 오늘 이 자리에 앞서 진행된 교육에서 원했던 것들을 많이 얻어왔어요.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BD 전문가들이 여러 각도에서 강의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각 강사마다 경험한 조직이 다르고, 경험한 딜이 다르고, 그 딜의 약물 개발단계가 다르잖아요. 간접적인 경험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 기자 오늘 행사에서 듣다 보니, 그런 어려움과 별개로 'BD가 안 뽑힌다', 'BD 양성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오가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시죠? 이상적인 BD란 무엇일까요?
차 이사 우리 회사가 겪었던 히스토리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개인적인 답이 나오기는 합니다. 영어 능력이 출중한 BD를 뽑으면 기술에 대한 이해가 아쉽고, 기술에 대한 이해가 출중한 BD를 뽑으면 영어나 다른 면모가 아쉬운 경우가 자주 벌어졌어요. 그리고 이번에 교육을 들으며 생각해 보니, BD는 굉장히 다양한 능력을 모두 요구하는 직종인 거죠. 그 모든 능력을 갖추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박 기자 그 다른 방법은 무엇일지요?
차 이사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을 하나씩 모아다 BD팀을 꾸리는 겁니다. 다 잘하는 BD 한 사람이 아니라, 딱 한두 개만 잘하는 여러 인원을 모셔서 완성형 BD팀을 구성하는 거죠. 예를 들어 박사급 인력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인원, 재무적인 지식이 뛰어난 인원, 법무적인 지식이 뛰어난 인원 등을 한 팀에 꾸려서 적절한 상황에 각자가 나서게 하는 거에요.
배 수석 저는 연구개발(R&D) 조직에 오래 몸담은 경험 때문인지, R&D 전략에 적절한 인풋(input)을 넣어줄 수 있는 BD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신약 개발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어쩌면 연구 단계에서부터 개입할 수 있는 BD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죠. 바깥에서 물어 온 정보를 회사 내부의 유의미한 데이터로 만들고, 그것을 R&D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져야 합니다.
박 기자 그럼 앞으로 BD 업무를 함에 있어서 더 배우고 싶은 부분, 강화돼야 하는 능력이 있다면요? 혹은 기대되는 BD 업계의 발전이 있나요?
차 이사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현재 트렌드에 해당하는 기술에 대한 분석이나 시장 예측에 관련된 부분을 더 알아두고 싶어요. 어떤 기술인지 다른 BD들과 함께 스터디한다던지, 빅파마의 니즈는 무엇인지 디테일하게 파악하는 시간이 있으면 합니다.
배 수석 커리어 전환이 자유롭게 일어나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BD 업계의 전체적인 발전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꼭 BD로 커리어를 시작할 필요 없이, 개발ㆍ연구ㆍ마케팅ㆍ재무 등 여러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인재들이 나중에 BD 쪽으로 전향하면 큰 시너지가 나거든요. 또 덧붙이자면, 아직 우리나라에는 성숙한 단계의 딜 케이스가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딜 케이스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을 경험한 인력들이 늘어나고, 점점 그 노하우가 업계에 퍼지겠죠. 지금 BD들의 고민은 어느 정도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