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까지 달려드는 바이오 클러스터, 그 까닭은
[BIO JAPAN 2023] 미쓰비시, 미쓰이-아스텔라스 등 홍보 총력 정부, 바이오 전폭 지원 속 '마치즈쿠리' 수익까지 챙길까
[가나가와(일본)=이우진 기자] 최근 일본 내 대기업이 연이어 신약 개발을 위한 클러스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대학 혹은 제약사와 손잡으며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한 단지를 꾸리고 있는 것인데, 이는 일본 정부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전폭적인 바이오 지원책과 그로 인한 성장 과정에서의 도시 리모델링까지 진행하는 이른바 '마치즈쿠리(도시 재정비사업)'를 노리기 위함으로도 해석된다.
11일부터 13일까지 일본 가나가와현 파시피코 요코하마 내셔널 컨벤션 홀(Pacifico Yokohama National Convention Hall)에서 열리는 '바이오 재팬 2023'에서는 이른바 제약바이오 클러스터 내 기업 유치를 위한 부스가 다수 전시됐다. 특히 이들 중 일본 3대 대기업 중 하나인 미쓰비시그룹의 부동산 관련 자회사인 미쓰비시지쇼는 자사가 참여하고 있는 'TDMU 이노베이션 파크(TIP)' 홍보 부스를 통해 참가 기업을 모집했다.
TIP은 미쓰비시지쇼가 도쿄의료치과대학(이하 도쿄치대)과 함께 지난 2021년 설립한 신약 개발 클러스터다. 도쿄 오챠노미즈 지역의 도쿄치대 부지 내 건물을 구축하고, 제약ㆍ재생의료ㆍ유전체의학ㆍ의료기기ㆍ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산학 협력을 추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도쿄 지역 내에서도 접근성이 매우 높은 지리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번 행사에서 또 다른 일본 3대 대기업 중 하나인 미쓰이그룹은 더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 중 하나가 미쓰이부동산인 만큼 라이프사이언스 이노베이션 네트워크 재팬(LINK-J)을 알렸다. 회사는 일본 아스텔라스제약, 미국 바이오랩스 글로벌과 손잡고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와 가시와노하시에 'Sakulab-Tsukuba'와 TME iLab 를 구축, 본격적인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Sakulab은 아스텔라스의 연구소 부지, TME iLab은 미쓰이부동산이 만드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다.
가시와노하와 츠쿠바의 경우 도쿄 중심지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해도 가깝게는 45분, 멀어도 1시간가량 떨어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특히 쓰쿠바시는 한국의 대전광역시처럼 과학 분야 연구 역량이 뛰어난 곳으로 꼽힌다.
미쓰이부동산은 이 중 가시와노하시에서 '미쓰이 링크랩 가시와노하1'이라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준공했고, 향후 연구동을 4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아스텔라스는 여기서 종양학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TME iLab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다. 이번에 손을 잡은 3개 기관은 향후 두 지역 내 오픈 이노베이션 단지를 알리고 이들 회사의 신약 지원 프로젝트 등을 도울 예정이다.
물론 일본 대기업들이 제약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자국 내 3대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를 각각 보면 미쓰비시는 지난 2017년 2월부터 총 100억엔 규모의 미쓰비시 UFJ 생명과학 기금을 통해 프로젝트 파이낸스 등 벤처를 지원하고 있다. 미쓰이그룹은 지난 2021년 11월 인공지능(AI) 신약 개발기업인 '제우레카(Xeureka)'를 설립했다. 스미토모는 아예 스미토모파마라는 제약회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이들 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에 초점을 두는 이유는 현재 일본 정부가 제약바이오 육성 정책에 힘을 주고 있다는 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2030년 세계 최첨단 바이오 경제사회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생산체제 강화를 위한 광범위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신약 개발 벤처 생태계 강화를 위해 바이오 벤처 등이 벤처캐피털(VC)의 출자가 이뤄질 경우 해당 금액의 최대 2배를 보조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선보였다. 기업 운영자금에 숨통이 트이는 만큼 신약 개발 역량은 물론, 부동산 회사들에는 벤처의 등장으로 인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2022년 4월 일본 내각이 발표한 이른바 '그레이터 도쿄 바이오 클러스터'는 이들 기업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는 총 8개 지역을 선정해 광역별 산업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당 지역을 살펴보면 △도쿄대학 등이 있는 혼고·오차노미즈·도쿄역 △비즈니스 등을 담당하는 업무 집결지 니혼바시 △연구 역량이 높은 쓰쿠바시 △국립암연구센터 등 종양학 관련 기관이 많은 가시와노하 △DNA 연구 역량이 높은 지바·가즈사 △산학 협동 연구 중심의 요코하마 △신산업 육성을 목표로 지정된 가와사키 △오픈 이노베이션에 특화된 쇼난 등이 GTB 선정 지역이다.
클러스터를 꾸릴 지구가 각각 지정되면서 연구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편리한 주거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사무용 건물과 의료기관, 주택 단지 등도 필요해졌고 제약바이오 분야를 키우는 동시에 부동산까지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실제 가시와노하의 경우 연구동 옆에 국립암연구센터, 도쿄대 카시와 캠퍼스, 지바대학, 국립정보화연구소, 산총련 등이 구축돼 있는 데다가 차를 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쇼핑몰인 미쓰이부동산 소속의 라라포트로 갈 수 있다. 인근 가시와캠퍼스역 인근에는 오피스빌딩까지 건립 예정이며, 자녀들을 위한 영국계 국제학교가 9월 들어선 상태다.
이미 운영 중인 쇼난 아이파크에서는 약 19.5%의 지분이 미쓰비시상사인데, 최근 몇년간 인근 지역 내 새로운 아파트 건립을 시작으로 전철역 건립 등이 계획돼 있는 상태다.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사업성은 물론, 인근 지역 개발을 통한 이른바 '마치즈쿠리(거리를 만든다는 뜻으로, 기존 도시를 리모델링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로 개발 수익을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 신약 개발 클러스터 등이 하나둘씩 들어서고는 있지만 히나의 도시를 새로 만드는 수준의 프로젝트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태다. 이같은 일본 대기업들의 도전이 향후 '부동산 부업'이 아니라 자국 제약바이오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지켜봐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