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정밀과학이란 용어에 갇힌 잘못된 도그마서 벗어나야
특별기고 |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
우리나라는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 점유율이 세계 6위에서 2022년 5위로 한 단계 상승하였다. 서울은 상당기간 임상시험 순위 1위 도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98년~1999년 외자 신약임상시험허가(IND) 임상이 0건이었고 2000년이 되어서 비로소 5건의 외자 IND 임상시험이 있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우리나라 임상시험은 지난 20년간 폭풍 성장했다. 지난 23년간 CRO를 운영해온 필자도 이러한 사실이 놀랍다.
2019년 12월 시작된 코로나19는 임상시험 환경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코로나19는 임상시험의 방법과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간 학회나 연구지(硏究誌)에서만 말하던 분산형 임상시험 (DCT: Decentralized Clinical Trial)이 현실화하면서 임상시험은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진행이 가능하게 되었고, 데이터는 임상시험 담당의가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착용하고 있는 전자기기에서 수집돼 병원이 아닌 CRO에 제출된다. 임상시험 의약품은 반드시 병원에서 투여되는 것이 아닌 환자의 편의에 따라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투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는 임상시험 세계 5위국인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진정한 임상시험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임상시험 후진국 중국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국내 임상시험 역사는 20년 남짓으로 일천(日淺)하고 임상시험 관련 규제가 선진적은 아니다. 그래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유전자 치료제 등 첨단의약품 개발을 국내가 아니라 규제가 유연한 미국 등에서 수행한다. 한국이 임상시험 점유율 세계 5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언제 임상시험 선진국이 될까? 정부당국이 모든 규제를 다 완화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전자기기(Digital Device)를 활용한 분산형 임상시험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임상시험 이해관계자들이 임상시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은 신약개발을 위한 요식행위 또는 방법이라는 시각을 버리고, 임상시험은 분명한 원칙과 철학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어려울 것 같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임상시험의 원칙을 깨닫고 있다면 오늘이라도 분산형 임상시험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임상시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자 2020년 3월에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19 예방효과가 있는지를 당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동원하여 미국 식품의약국(FDA) IND 승인 하에 100% 분산형 임상시험을 시행했다. 이는 분산형 임상시험에 대한 FDA 지침서가 나오기 전이다.
LSK Global PS는 2021년 여름 방글라데시에서 대규모 중국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하이브리드 방법으로 세팅을 마치고 예행 연습(dry run)까지 마쳤다. 방법은 투박하고 원론적이었지만 성공적으로 임상시험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임상시험 원칙을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었다. 의뢰사가 예기치 못한 이유로 마지막 순간 프로젝트를 취소한 것이 유감이다.
임상시험 방법은 임상시험 원칙의 테두리 속에서 개발되고 발전한다. 대면 임상시험, 환자중심 임상시험, 분산형 임상시험 등은 모두 방법에 불과하다.
임상시험의 원칙은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 정의에서 유래한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Study)이란 임상시험용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해당 약물의 약동(藥動)·약력(藥力)·약리(藥理)·임상(臨床) 효과를 확인하고 이상반응을 조사하기 위하여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 또는 연구를 말한다."
임상시험의 키워드는 사람과 과학적 시험이며, 임상시험의 원칙은 사람에 관련된 윤리 원칙과 과학적 원칙으로 구성된다.
첫째 키워드는 사람이다. 참여자의 인권과 권리의 보호가 최우선의 원칙이 된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Do No Harm"의 원칙에 부합한다. 임상시험 관련 법과 규정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연구 윤리 원칙에 관한 헬싱키 선언을 따른다.
둘째 키워드는 '과학적' 시험이다. '과학적'이라는 의미는 시험과정이 투명하고 객관적이고 시험결과를 재현(再現)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의약품의 안전성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과 장기적 관찰에 의해 결정된다. 임상시험은 비록 비정밀 과학(inexact science)지만 의약품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임상시험이 비정밀 과학(inexact science)이라는 것은 사람들 간의 차이, 변하는 건강상태와 예후, 나이, 환경 등이 의약품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고 효과의 평가가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효과, 의약품의 효과에 대한 주관적 평가, 임상시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각종 오류가 임상시험을 비정밀 과학(inexact science)으로 만든다. 임상시험의 과학적 원칙은 다양한 원인에 의한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통계학은 확률적 이론을 이용하여 불확실성 가운데에서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 대한 추론(inference)을 하는 학문으로 임상시험의 과학적 기반이 된다.
의약품의 유효성은 항상 상대적이다. 근대 임상시험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린드(James Lind)의 1747년 괴혈병 임상시험 역시 오렌지/레몬과 여타 음식물의 효과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임상시험에서는 항상 대조군이 있다. 통계학은 대조군이 있는 불확실한 과학적 시험에 최적화되어 있는 학문이다. 따라서 임상시험의 과학적 원칙은 통계학적 원칙이다.
임상시험의 두 원칙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다면 오늘이라도 비대면 분산형 임상시험이 가능하다. 현대적 전자기술이 없이도 분산형 임상시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임상시험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임상시험의 원칙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이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정밀과학이기 때문에 사소한 오류도 용납될 수 없다'는 잘못된 도그마(dogma)가 우리 임상시험을 계속해서 지배한다면 우리는 임상시험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영작 대표이사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졸업
▪ Ohio State University 통계학 석사
▪ Ohio State University 통계학 박사
▪ University of Maryland 통계학 조교수
▪ 미국 국립암연구소 통계학 담당(항암임상연구)
▪ 미국 국립암연구소 통계학 담당(독성연구)
▪ 미국 국립신경질환 및 뇌졸중 연구소 통계학 담당
▪ 미국 국립모자건강연구소 통계학 담당 실장
▪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 한국임상CRO협회 1대, 2대 회장
▪ 서경대학교 석좌교수(現)
▪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이사(現)
▪ 마르퀴즈 후즈 후의 ‘후즈 후 인 아메리카(Who’s who in America)’ 등재, 알버트 넬슨 평생 공로상 (Albert Nelson Marquis Lifetime Achievement Award)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