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도 갸우뚱하는 '크리스비타 급여 기준'
데스크 칼럼 | 100명 소아XLH 절반도 커버 못하는 신속등재 1호
한국쿄와기린의 저인산혈증성(XLH, X-linked Hypophosphatemia) 구루병 치료제 '크리스비타주(성분명 부로스맙 Burosumab)'가 이달 1일자로 보험급여 적용을 받게 됐다. 제도 개선 관점에서 볼 때 크리스비타주는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도입한 신속등재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30일 만에 협상을 완료한 1호 약제라는 의미가 있다. 저인산혈증 구루병은 다리가 심하게 휘는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데 성장이 지속되는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가 핵심 치료시기이지만 근원적 치료방법이 없어 성장지연, 치아이상, 하지골변형, 두개골 조기융합 및 골내 압력상승, 골절위험, 신장 석회화 등 부작용을 겪게 된다. 그 동안 저인산혈증 구루병 치료는 활성형 비타민D 제제와 경구 인산염(phosphorus)을 함께 투약하는 방식을 주로 채택했는데 최선의 치료에도 25~40%가 증상 조절에 실패했다. 크리스비타주의 보험급여 적용은 저인산혈증성 구루병 치료에 또 다른 진보적 옵션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다.
크리스비타주는 FGF23(섬유아세포 성장인자)의 과다 분비를 억제해 체내 인산염의 항상성을 회복시킴으로써 XLH를 치료한다. 1~12세 소아환자 61명을 대상으로 64주간 RGI-C 스코어(Radiographic Global Impression of Change scale score)의 변화를 측정한 허가용 3상 임상 결과 기존 요법(비타민D+인산염) 대비 △혈청 인산염 수치 △신장 인산염 재흡수 △하지기형 등을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RGI-C 스코어(2점 이상)를 통해 평가한 구루병 개선 비율은 크리스비타주가 87%로 19%에 그친 기존 요법을 압도했다. X염색체 우성이 불러온 유전질환인 XLH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되며 환자와 환자 가족 모두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측면에서 크리스비타주의 급여 적용은 희소식이다. 2018년 4월 미국 FDA 승인 이후 꼭 5년만에 크리스비타주가, 그것도 급여제도 개선의 첫 사례로 국내 출시됐다는 점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소아환자 100명 남짓한 희귀질환임에도 40% 정도만 보험급여 혜택을 받는 것으로 설계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급여 세부인정 기준을 보면 크리스비타주는 기존 치료제를 6개월 이상 투여한 환자 중 방사선학적 검사(RSS 2점 이상), 생화학적 검사, 유전자 검사 등 만족 조건들을 통과해야 투여를 시작할 수 있는데다 다양한 제외 기준으로 허들을 치고 있다. △Tanner stage(성성숙도) △신장(Height) △성장호르몬 치료 △부갑상선호르몬 △저칼슘혈증, 고칼슘혈증 △신석회증 등 깨알 같은 제외기준들이 진보적 치료옵션으로의 접근을 막는다. 9일 열린 크리스비타주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임상시험 설계 기준을 그대로 급여 기준으로 옮겨 놓았다. 임상의 입장에서 이건 아닌데 싶다"고 말했다.
비용이 연간 1~2억원에 달할 만큼 크리스비타주가 고가 약제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까다로운 급여 기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급여 대상을 18세 미만으로 제한했다는 점은 소아 XLH 환자들에게 치료 접근성의 기회를 집중적으로 열어줄 임상적 필요성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상에 가까운 신체 성장의 가능성을 미래 세대에게 선물하는 사회적 순기능도 간과할 수는 없다. 신속 등재의 취지를 훼손하면서 까지 물컵의 절반을 비워 둬서야 되겠는가. 보험정책은 큰 틀에서 숲을 봐야 하는 일이지만, 때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희귀질환, 소아XLH가 바로 그 나무 한 그루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