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건기식 양보 못해... 약국과 대기업, 치열한 물밑 경쟁 중

시범사업에 다수 참여...수익성은 '글쎄' "국내 제품은 비싸" 국민 인식도 큰 장벽 약사회·대기업 참여 예고...시장 변동의 변수 

2022-10-24     정혜진 기자

정부의 규제 완화를 등에 업고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10여 곳의 사업체가 100개 가까운 매장이 문을 열고 소비자 개개인에 맞는 건강식품을 추천하겠다며 각기 다른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신청, 인공지능 분석, 전문가 상담, 정기 구독 배송 등 다양한 소비자 편의와 정확한 건강 진단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규제 특례 시범사업이라는 걸음마 단계라서일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도 소비자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일부 약사와 전문가들은 '맞춤형 건기식은 시기상조'라며 우려를 제기하는 상황.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출처: 맞춤형 건기식 '뉴트리미'의 온라인 판매처(네이버)

 

정부 규제완화에 너도나도 '맞춤형 건기식' 출시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5조454억원 규모. 매년 10% 정도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사업, 그 중에서도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사업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대형마트의 건기식 자유 판매와 맞춤형 건기식 판매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식약처는 법으로 금지된 건기식 소분판매 규제를 허용하기 위해 오는 2024년 6월까지 법 개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또 개인 맞춤형 건기식을 위한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추진해 여러 업체가 참여해 시범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개인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소분·포장 판매 시범사업 매장 은 86개다. 시범사업 선정 업체는 △풀무원건강생활 △아모레퍼시픽 △한국암웨이 △한국허벌라이프 △빅썸 △코스맥스엔비티 △모노랩스 △한국야쿠르트 △한풍네이처팜 △녹십자웰빙 △누리텔레콤 △다원에이치앤비 △바이오일레븐 △온누리H&C △유니바이오 △투비콘 등 12개 사업자다.

샌드박스 참여 주체인 만큼, 이들은 각기 다른 모델을 구상해 최적의 '맞춤형 건기식' 모델을 찾고 있다. 이들 중 빅썸은 참약사 프랜차이즈와 손잡고 40여 곳 약국을 통해 '핏타민' 건기식 구독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고, 모노랩스도 'IAM' 브랜드를 앞세워 약국 10여 곳과 맞춤형 건기식을 제공하고 있다. 두 브랜드로 사업에 참여한 약국은 현재 60여 곳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실질적인 수익을 내는 업체는 아직까지 없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맞춤형 건기식 구독자 중 최근들어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라고 말한다. 기존에 먹던 것보다 비싸서 장기적으로 꾸준히 섭취하긴 부담된다는 반응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건기식이 맞춤형으로 자리잡는다? 쉽지 않아요"

시범사업 단계인데다 본격적인 법 개정 이전이니 속단하긴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맞춤형 건기식이 대중화되려면 많은 제도 수정과 자구책이 필수이며, 그 과정에 '맞춤형'이 건기식이라는 시장에서 효용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이마트 성수점에 입점한 맞춤형 건기식 'IAM' 매장.

제대로 된 '맞춤형' 제품을 공급하기엔 판매현장에서 이뤄지는 검진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다.

시범사업 참여를 검토했던 한 약국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제대로 된 '맞춤형'이 되려면 문진과 검진이 상당히 고도화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약국이 이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그 수준이 되는 지 의문"이라며 "아울러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일 뿐이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한두번 구매할 지 몰라도 꾸준히 재구매가 일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곳은 결국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제대로 된 상담이 자리잡지 않은 상황에서 맞춤형 건기식은 '수박 겉핥기'에 그칠 거란 의견도 있다. 부산의 한 약사는 "시기상조다. 아직은 규제완화로 인한 부작용이 더 많을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그는 "맞춤형이란 깊이 있는 상담을 전제로 이끌어갈 제도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업체와 약국에도 건강상담이 완전히 자리잡았다 할 수 있나?"라며 "심도있는 상담을 토대로 맞춤 건기식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승산이 없다. 제품 위주의 상술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국민이 건기식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직구가 일상화되면서 '우리나라 제품은 상대적으로 비싸고 효과도 없다'는 불신이 자리잡은 것이다. 때문에 현재 건기식 수요 상당수가 대용량을 강점으로 한 해외제품으로 쏠리고 있다. 여기에 '맞춤형'이라는 타이틀은 비싸다는 선입견을 더 부채질할 수 있다. 

한 약국 관계자는 "맞춤형이 일반화되면 기업은 개별 포장비용을 줄여 공급가를 낮출 수 있어 오히려 소비자가는 저렴해질 수 있다"며 "하지만 이렇게 되면 긴 시간 상담을 토대로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는 약국이나 판매처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약사는 "올해 초만 해도 떠들썩했던 '구독 서비스'가 벌써 잠잠해지지 않았나. 맞춤형이란 매일 꾸준히 장기간 복용하는 게 관건인데, 구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맞춤형이라는 시스템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큰 변수는 '대자본 투입'과 '전국적인 약국 참여'

하지만 변수는 남아있다. 대자본의 꾸준한 유입과 약사회를 주축으로 한 약국의 전국적인 참여다. 이 두가지가 가능하다면 맞춤형이 건기식의 시장에서 한 주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코로나19로 건강이 삶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고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속속 헬스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건강 관련 IT 플랫폼과 건강식품 산업을 주요 경로로 삼고 있다. 때마침 건기식 산업은 정부가 먼저 규제를 완화해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서비스를 권장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8월 롯데칠성음료가 빅썸 주식을 인수하며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진출했다. CJ제일제당은 'CJ웰케어'를 분할해 독자적인 사업체로 키우겠다고 발표했고, 매일유업도 건강기능식품 판매 부문인 '매일헬스앤뉴트리션'을 설립했다. 이외에 다수의 기업들이 'IT기술'과 '건강'을 연결한 헬스케어 사업에 투자하거나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전국적인 약국 참여도 눈여겨볼 만 하다. 대한약사회는 최근 규제샌드박스 참여 의사를 밝히고, 약학정보원과 유명 IT기업이 참여한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소비자의 건강상태를 약사 상담 뿐만 아니라 그간의 약물 복용 이력까지 더해 체계적으로 알아보고 맞춤형 제품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필요한 데이터 처리와 알고리즘 개발은 모 IT업체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오원식 건기식위원장은 "제대로 된 맞춤형이 되려면 약사라는 전문가가 약력, 상담, 식습관, 생활습관 등을 총체적으로 판단해야 가능하다"며 "약국만이 가진 강점과 데이터를 활용해 이런 모델을 선보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몇몇 제약사에서 맞춤형 건기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약사회는 우선 모델 확립에 주력하고 있다. 제품은 인프라가 구축된 후에 마련해도 늦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건기식 업체 관계자는 "해외에선 맞춤형이 대중화됐다 하지만 그 시장은 우리나라와 건강보험 체계, 의료 서비스 접근성 등 환경이 많이 다르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건기식도 맞춤형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그 전제는 체계적인 상담, 합리적인 가격, 정확한 분석과 문진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