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준이 선택한 회사는 시장도 선택하더라를 목표로"
VC 릴레이 기획 | 안병준 메디치인베스트먼트 팀장
"시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싶어요. 결국 상장이후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바이오 전공자보다 비전공자가 더 많거든요. 일반 투자자 시각을 대변할 수 있는 시각으로 기업을 보는 바이오 심사역이 되고 싶습니다."
대학에서 화공생명공학을 전공했던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LG화학이었다. 학과에 '생명'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화학을 공부했던 그는 LG화학에서 맡은 프로젝트는 아이폰으로 유명한 애플(Apple) 배터리 프로젝트 공정을 총괄하는 업무였다. 이름하여 공정 개발 담당자 (Engineering Manager)였다.
기존 형태와 다른 배터리를 양산하는 프로젝트를 맡은 그는 애플과 LG화학 사이에서 끊임없는 문제에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어쩌면 심사역으로 투자를 받으려는 바이오벤처와 유한투자자(LP) 사이를 소통하는 역량은 LG화학에서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프링노트와 연필을 들고 기자의 사소한 질문에 그림과 도표를 그려가며 차분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심사역으로 어떤 태도로 투자에 임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10분이 지나면서 어느새 안병준 메디치인베스트먼트 팀장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게 됐고, 스마트폰에 적어 놓은 사전질의지 창을 닫았다.
#1. LG화학 배터리 공정 총괄 업무에서 배운 심사역의 길
LG화학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셨네요.
지도 교수님을 찾아뵙고 진로 고민을 털어 놨어요. 제가 취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화학을 전공하고 대부분 석유화학기업을 선호하던 시기였거든요. 배터리 분야는 찬밥 신세였죠.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고, 심지어 당시 LG 내부에서도 배터리가 주요 사업분야는 아니었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침몰하는 배에서도 네가 잘 하면 살아남을 수 있고, 불확실성이 높은 곳에는 새로운 기회가 있다. 결국 핵심은 네가 잘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LG화학에 오니 정말 기회가 열리더라고요. 인턴 기간을 포함해 6년 동안 업무를 하다보니, 2차전지 개발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이런 기회들이 쌓여 중국 주재원을 거쳐 애플에서 수주한 1조원 규모 프로젝트의 공정 개발 담당자 (Engineering Manager)가 됐어요.
애플 프로젝트, 어떤 업무를 맡으셨나요?
당시 프로젝트는 기존 사각형 형태의 배터리와 다른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저는 공정 책임자를 맡았는데요, 애플 미국 엔지니어, LG화학 엔지니어 사이에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어요.
가령 기존 1~10까지 제조공정이 있다면, 당시 맡은 프로젝트는 약 5단계 정도를 완전히 새로운 공정(process)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어요. 수주를 맡은 프로젝트 대부분이 장비투자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애플 프로젝트 만큼은 LG화학에서 장비투자까지 병행해야 했죠. 사각형 배터리 형태를 바꾸는 프로젝트 자체가 세계 최초로 이뤄지는 것이었죠.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겠어요. 애플과 LG화학 사이에서 의견 조율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미국의 토론(discussion) 문화가 활발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어요. 일간·월간·주간 단위로 미팅을 주재하며 애플 측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모두 대응해야 했어요. 사실 LG화학 내부에서도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에 중요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했어요.
LG화학에서 기술력은 물론 있었지만, 장비를 완전히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회사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어요. 점차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회사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 개시부터 스케일업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며, 당시 커뮤니케이션 창구 역할을 비롯해 공정 총 책임자 역할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상대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어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심사역으로서도 필요한 자질이잖아요. 이미 심사역 자질을 갖추고 VC 업계로 오셨네요.
기회는 늘 우연히 찾아오더라고요. 현재 메디치인베스먼트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박우일 팀장님은 재수학원 동기에요. 공통분모도 많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도 했고요. 박 팀장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배진환 대표님께서 당시 대전까지 오셔서 채용 기회를 주셨어요.
채용 이후 배 대표님께서 기회가 많은 바이오 분야 심사역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관련 전공도 하지 않았고, 업무 경험도 없어서 고사했죠. 하지만 대표님께서 제안해 주신 내용을 곰곰 생각해 보니, 제 전공분야인 2차전지 분야는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었고, 오히려 바이오 분야에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성장 가능성도 바이오가 더 높아 보였습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고 좋은 기회를 제안해 주신 배진환 대표님, VC의 길을 소개해주신 박우일 팀장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2. 비전공자 바이오 심사역으로 생존하는 법
네트워킹 기반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전공 공통 분모도 없고, 관련 기업 정보도 없어서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려움이 많았지만, 회사에서 도움을 줬어요. 우선 학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좋은 기업이 자신의 기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학회잖아요. 이와 함께 좋은 기업의 평가 방법은 무엇일지 공부하기 위해 서강대 바이오 교육과정과 한국벤처캐피탈협회 교육과정을 열심히 들으며 네트워킹 기회를 가졌어요. 바이오 창업가들이 받는 교육도 직접 받아봤고요.
심사역 업무를 보면서, 주식도 시작하셨다고요?
박셀바이오를 투자하면서 주식을 시작했어요. 박셀바이오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얻었지만, 이 회사가 상장하고 주가가 형성되는 것을 보며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많았어요. 대표님께서 매각 의사를 물어보셨는데, 논리적 대응을 못 하겠더라고요. 당시 얻은 수익률도 만족스럽긴 했는데, 투자한 회사의 상장 이후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 놓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주식 공부를 시작했어요. 기본적으로 주식 차트를 보는 법부터, 주가가 형성되는 것인지 기초 공부를 시작했어요. 주식시장은 비상장 투자와 달리 주식을 사려는 사람(buyer)과 팔고자 하는 사람(seller)이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로 보였어요.
그 안에 특정 패턴이 있고, 수요 여부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다르게 작동하는 듯 보였어요. 주식을 공부하며 제가 투자한 기업의 사후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학회에서 발굴한 기업은 넥셀이라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오래된 학회는 네트워킹이 이미 견고할 것 같아 주로 신생 학회를 찾아 다녔어요. 넥셀은 2회 오가노이드 학회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기술이 매력적이라고 느껴 무작정 조건식 연구소장님께 메일을 보냈어요. 감사하게도 한충성 대표님께서 저를 초대해 주셨고, 연이 이어져 투자까지 할 수 있게 됐어요.
VC 실무진은 임원들이 지시하는 딜(deal)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제가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임원 분들이 내려주는 딜이 많아요. 그렇다고 그 딜을 무조건 성사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만의 관점을 갖고 논리적으로 심사해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죠. 메디치 임원분들께서는 심사역의 의사결정을 100% 존중해주셨습니다.
#3. 일반인 시선 대변하는 바이오 심사역 되고 싶어
본격적으로 투자포트폴리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학회에서 발굴한 넥셀 이야기부터 들려주세요.
비임상데이터가 탄탄한 회사였어요. 약물작용기전(MOA)의 독특함도 있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각종 논문 자료도 있는 곳이었어요. 이와 함께 치료제 개발뿐만 아니라 독성 스크리닝 사업 모델이 있어 수익 창출도 가까운 시일내 기대가 되는 곳이었어요.
독성 스크리닝을 할 수 있는 'hERG assay'를 대체하려는 CiPA (Comprehensive in vitro Proarrhythmia Assay)가 흥미로웠는데요, ICH 개정 가이드라인에 사용되는 심근세포를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관련 논문을 모두 요청드렸고, 일본 후지필름은 관련 회사를 인수해서 수익을 올리고 있어요.
국내에서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 넥셀 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이를 얻기 위해 회사 측에 수많은 질문과 자료 요청을 드렸는데, 싫은 내색 없이 모두 흔쾌히 대응해 주셨어요.
저도 단순히 꼬투리를 잡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제 질문을 통해 회사가 좀더 비즈니스 내용을 보강하면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추후 상장을 위해서 저 뿐만 아니라 거래소, 일반 투자자의 수많은 질문을 대응해야 할 테니깐요.
넥셀 경영진 분이 싫은 내색 없이 자료 제출을 명확히 해 주셨다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전공자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충분히 불편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부족한 실력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으로 검증을 거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와 같은 사람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회사는 자신의 플랜에 대해서 명확히 제 3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저는 이를 단기적으로 투자심사보고서에 녹여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투자 계획을 세웁니다.
조절(regulatory) T 세포(Treg cell)로 치료제를 개발하는 테라이뮨은 시리즈 A부터 투자하셨네요.
심사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기업이에요. 이미 논문을 통해 학술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은 회사였거든요. 뿐만 아니라 미국 중소기업청(SBA)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국내 바이오벤처로는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우선 Treg cell은 배양과 분리가 어렵습니다. 이를 어떻게 스케일업 할지 등 개발 전략이 명확했습니다. 지금도 김용찬 대표님과는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넥셀, 박셀바이오, 테라이뮨까지 주로 세포치료제 회사에 투자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세포치료제는 로컬 기반으로 움직여 기술이전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떤 잠재력을 보셨나요?
이런 이유로 투자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직 외부에는 많이 말하진 않지만, CAR-T 치료제 개발 회사 '티카로스'도 투자했습니다. 사실 CAR-T 치료제의 경우 국내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카로스가 가진 종양세포-CAR-T 간 접촉면(면역시냅스) 접합능 증가 기술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T cell의 활성화를 증가시키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죠.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이런 개념의 CAR-T 치료제는 그동안 없었습니다. 티카로스는 단순 병용전략이 아닌 회사 측이 가진 기술만으로 다른 세포치료제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 투자 포인트였습니다.
업력이 길지 않음에도 에이비온, 박셀바이오 등 상장 투자포트폴리오를 갖추고 계시네요.
두 회사의 경우 임원 분들이 발굴한 딜이었습니다. pre-IPO 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한수재 부사장님, 임원국 이사님의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요, LP에서도 경험이 많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투자 심사역은 단순히 기술만 보는 것만이 아니라, 투자 관점에서 상장가능여부와 재무적 파이낸스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는 것이었죠. 또한 우연히 인연을 맺게된 현재 에이피트바이오에 계시는 윤선주 대표님께서 바이오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박셀바이오를 바라봤습니다. 시장에서 박셀바이오를 바라보는 관점, 주관사의 질문들, 주변 레퍼런스 확인 등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투자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최근 바이오 심사역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경쟁이 치열한 바이오 전문 심사역 생태계에서 어떤 차별화 포인트로 갖고 싶으세요?
사실 의사, 약사, 수의사 출신의 전문가가 많은 바이오 심사역 생태계에서 부침도 겪었고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나약하게 이 생태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분명히 저와 같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화가 생명의 다양성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투자 생태계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결국 기업은 시장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시장이 바라보는 관점을 대변하고 싶어요.
결국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비전공자가 더 많을 텐데, 그분들을 대변할 수 있는 바이오 전문 심사역이 되고 싶어요. 안병준이 선택한 회사는 시장의 선택과 어느정도 일치한다는 시선을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