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은 왜, 어떻게 8년간 회계에 분칠을 했나
늦었으나 CP, RM조직-ERP시스템 도입은 다행 관건은 관리자·경영진·최고경영자·감사의 진심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8일 씨젠에 대해 △과징금 △감사인 지정 3년 △담당임원 해임권고 및 직무정지 6월 △내부통제 개선 권고 △각서 제출 권고 등 4개 중징계 처분을 내리고 조치 사항을 지체 없이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2011년부터 2019년 6월까지 8년 6개월간 씨젠 회계의 조사·감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씨젠은 이에 대해 9일 금감원 DART에 '과거 관리 부분 전문 인력 및 시스템 부족으로 발생한 회계 관련 미비점을 근본적으로 보완하기 위하여 지난해부터 전문 인력 충원, 내부회계 관리제도 운영 등 관리 역량과 활동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으며, Compliance(CP, 윤리경영) 및 Risk Management(위험관리) 조직 신설, Global ERP(전사적자원관리,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System) 도입 등을 통해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시했다.
증선위의 조치 사유는 씨젠이 △매출액 과대계상 △개발비(무형자산) 과대계상 △전환사채 유동성 미분류 등과 같은 분식행위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증선위의 매출액 과대 계상 지적에 대해 씨젠이 이런저런 해명성 뒷말을 비공식적으로 내놓아 언론을 통해 떠돌고 있지만, 9일 씨젠이 공시한 제반 조치 내용을 뜯어보면 씨젠은 증선위의 지적 사항을 완전히 시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선위가 씨젠 측의 피조사자 '분식행위 확인서' 등과 같은 물증을 확보하지 않고 이같은 중징계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9년11월 14일 씨젠은 회계 분식된 사업보고서(2018.12)와 분기보고서(2019.3) 및 반기보고서(2019.6) 등의 연결재무제표를 바르게 재작성한 '기재정정 보고서'를 금감원DART에 공시했었다.
씨젠의 회계분식 중 특히 눈여겨 살펴봐야 할 점은 '매출액 과대계상과 개발비 과대계상'이다. 투자자들에게 아주 긴요한 정보인 손익상태를 장기간 양호하게 비치도록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전환사채(CB) 유동성 미분류'는 그것들 보다 작은 이슈다. 1년 이내 조기상환청구 가능 조건이 부여된 전환사채가 유동부채가 아닌 비유동(고정)부채로 분류된 것은 분명 '유동성 위험'을 감춘 분식이지만, 투자자들의 첫 번 째 관심 사항일 수익성 분칠보다 문제의 심각성에서 한발 낮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씨젠이 연도별로 매출액을 과대 계상한 금액은 아래 [표 1]과 같은데,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물론 해마다 새롭게 분식된 금액은 아니고 각 연말 시점의 것일 테지만 말이다.
증선위는 씨젠이 국내외 대리점에 대해 납품처·품목·수량 등을 지정해 판매하도록 하고 대리점의 미판매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등 제품이 최종 수요처에 판매된 경우만 수익으로 인식해야 함에도, 실제 주문량을 초과하는 과도한 물량의 제품을 대리점으로 임의 반출을 하고 이를 전부 매출로 인식함으로써 매출액 및 매출원가를 과대 계상하고 관련 자산을 과소 계상했다고 지적했다.
속칭 '밀어내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인데, 씨젠이 매출액을 과대 계상했으므로 그에 따라 당연히 매출원가도 과대 계상되고 재고자산은 감소될 수밖에 없다.
씨젠은 또, 다음 [표 2]와 같이 자산 인식요건(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한 진단시약 등의 연구개발 관련 지출 금액을 당해 연도의 경상연구개발비로 처리하지 않고,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동안 무형의 이연자산인 개발비로 과대 계상했다.
씨젠의 전환사채 유동성 미분류 현황은 다음 [표 3]과 같다. 1년 이내 상환청구가 가능한 전환사채는 유동부채로 분류돼야 하는 것은 회계 준칙이자 상식인데도, 씨젠은 비유동(고정)부채로 처리했다. 고의적으로 '유동성 위험'을 숨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사항이다.
손익계산서나 재무상태표(종전 대차대조표) 등의 수지상황이나 자산 및 부채 등이 양호하게 보이도록 분칠을 해 조작하는 것을 분식회계 또는 분식결산(window dressing settlement)이라고 한다.
분식 즉 윈도드레싱(window dressing)은 본래 '소비자들의 구매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백화점 등의 쇼윈도를 멋지게 꾸미는 일을 뜻하는 유통·마케팅 용어다.
상점 창문을 장식하고 그 안에 상품을 배치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기술(The skill of decorating shop windows and arranging goods in them so that they look attractive to people going past)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회계부문이나 증권시장 등에서 그러한 '윈도드레싱'을 분식(粉飾)으로 번역해 쓰고 있다.
그렇다면 씨젠은 왜 회계 얼굴에 분칠을 했을까. 그 이유는 씨젠의 최고경영자와 영업부문책임자 및 퇴사한 회계부문책임자(해임 권고조치 대상자) 등이 아니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외부로 진짜 속내가 알려질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통상적인 '회계분식 동기(動機)' 중에 씨젠의 회계분식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
예시는 ①경영진들의 분식회계에 대한 윤리 의식 및 범죄 의식의 결여 ②당기(當期) 경영성과 중심의 경영 관습 ③주주가치 중심적 경영마인드 결여 ④사채(社債) 등 자금 조달(금융)의 원활화 ⑤스톡옵션 등 최고경영자 및 임직원 성과보상 ⑥기업가치 제고 ⑦신용등급 제고 ⑧기업 평판 제고로 투자자 및 거래고객 유인(誘因) ⑨기업체가 일감(감사와 컨설팅 등)을 몰아 준 감사인(회계법인)에게 그 기업체의 감사를 맡길 수 있는 현 감사시스템의 허점 역이용 등이다.
씨젠이 증선위로부터 지적받은 매출액 과대계상과 개발비(무형자산) 과대계상 그리고 전환사채 유동성 미분류 사항들은 고등 지식수준이 아닌 기초적인 회계 상식만 있어도 누구나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들인데도, 그렇게 처리한 데는 어떤 목적 하에 의도적으로 한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당국은 씨젠과 같은 회계 잘 못을 방지하기위해 법령으로 기업체에게 의무적으로 감사를 두고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감독하도록 하고 있으며, 게다가 일정 규모 이상(자산규모 100억 원 이상)의 기업체들에게 외부 감사를 강제로 받도록 하고 있지만, 씨젠의 경우 장기간 내부 및 외부 감사 과정을 거치면서 금방 눈에 띄었을 회계 오류를 증선위가 조사하기 전까지 8년여 동안 방치했다. 의도성을 의심하게 하는 지점이다.
씨젠이 개선책으로 내놓은 윤리경영(CP,Compliance)과 위험관리(Risk Management) 조직 신설, 전사적자원관리(Global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 도입 등은 합당하고도 시의적절한 종합적 조치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관리자와 경영진과 최고경영자 및 감사 그리고 외부 감사인의 마음이 겉과 속이 다르면, 신설 장치들은 고의적인 회계 잘 못을 더욱 깊게 감출 수 있는 미명(美名)의 껍데기로 전락(轉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듯, 분식회계의 유혹은 불법 리베이트의 유혹 만큼이나 뿌리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약바이오업계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씨젠의 '개발비 과대계상' 건은 바이오제약업계에서 문제가 크게 불거진 지 한참 후 금융위원회가 2018년 9월 19일에서야 비로소 뒷북치며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감독지침'이 마련됨으로써, 선제적 조치가 안 돼 문제의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