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K방역에 침 뱉는 걸로 코로나19가 물러나겠나

정부 할일 정부에게...시민은 혼밥, 집콕 먼저 

2020-12-17     조광연 기자

13일 일요일 새벽, 잠에서 깨어 세 번 놀랐다. 창문 너머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여 '와'하고 한번,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네 자릿수를 넘었다는 TV뉴스에 '앗'하고 두번 놀랐다. 눈 내린 세상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법인데 고요하고 갑갑했다. 세 번째 놀란 건 'K방역의 실패를 전제로 정부 탓으로 몰아붙이기에 기염을 토하는 언론들' 때문이었다. 눈 내린 새벽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사랑의 인사> 연주가 감미롭지 않을 수 있다니.

2020년 한해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우리들이 얼마나 멋지게, 대단하게 싸워왔는지 언론들은 망각한 것일까? 돌아보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세계 어느나라보다 먼저 개발한 진단키트를 앞세워 감염 의심자를 검진하고 격리하며 확산세를 막았다. 질병관리청을 콘트롤타워로 의사, 간호사, 약사 등 모든 의료관계자들의 헌신과 내 일로 받아들인 전국민의 열정적 참여로 감염 확산 저지선을 펼쳤다. 정부와 시민의 눈물 위에 피어난 꽃, K방역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했지만, 소상공인 도산을 막고, 나라 경제를 지탱시키는 역할을 했다. 

초딩의 마음으로 '우리들의 2020'을 보자. 비행접시를 탄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범하면 미국 중심으로 편성된 지구방위대가 물리쳐 줄 것이라는 만화같은 기대와 '서구는 넘사벽 선진 문화'라는 '우리들 마음 속 질서'는 산산조각났다. 정부 리더십과 함께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연대한 성숙한 공동체적 대응 앞에 허둥대던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위기관리 모습이 초라하지 않았던가. 2020년은 힘겨웠지만, 위대했다. 스스로 대견해 해도되고,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그런데 대다수 언론들의 생각과 평가는 다른 듯하다.       

그렇다면 언론들이 한일이 뭔가. 대다수 언론들은 공동체적 대응에 힘을 실어주거나 코로나와 방역수칙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보다 ▷중국인 입국을 봉쇄하지 않는다 ▷우리 쓸 마스크도 없는데 중국에 빼돌렸다와 같은 류의 보도에 집중했다. 최근 백신 건만 해도 그렇다. 인과관계 확인도 없이 독감백신 맞고 사망했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 접종률을 떨어뜨렸던 언론들이 이제와선 왜 코로나 백신 도입계약을 미국 영국 일본처럼 빠르게, 많은 양을 확보하지 못했냐고 아우성 친다. 개발된지 30년도 더되는 독감백신에는 그토록 과민하고, 올해 서둘러 개발된 탓에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mRNA 백신에 대해선 관대한 언론의 태도에서 과학적 사고의 흔적과 노력은 볼 수 없다.

mRNA 백신을 목 빼고 기다리는 언론들이지만 만약, 일찍 들여와 외국에서처럼 아나필락시스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그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수해야 할 어쩔 수 없는 리스크'라고 이해하며 당국의 조치를 기다려 줄까? 그럴리 없다. 헤드라인 제목이 어떨지 여러분과 내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왜 그들의 눈에는 K방역의 성공으로 저축해 둔 시간적 여유와 이를 통해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은 나라를 관찰하며 국민 안전도 확보하려 신중히 접근하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고뇌는 보이지 않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생활 공간 곳곳에서 신규 확진자가 네자릿수를 위협하자 정부가 방역 3단계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다. 매우 위중한 상황이다. 정부는 감염확산 방지, 병상 확보, 민생경제 등 다차원적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1차 방정식 사고로 묻고, 척척박사처럼 수다스러운 입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언제나 옳다고는 할 수 없으니 언론의 문제의식도 존중돼야 한다. 다만 언론의 문제제기도 공동체 안녕의 관점에서 타당해야 한다. K방역에 도취된 나머지 백신 구매경쟁에 뒤쳐졌다는 프레임은 이해할 수 없다. 참 쉬운 프레임이지만, 코로나 백신 도입을 둘러싼 내외 환경의 복잡성은 이 프레임을 뚫고 나간다.

언론은 그렇다 치자.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묘수는 없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유행어처럼 방역 초기 초긴장 상태로 너와 내가 함께 돌아가는 것뿐이다. 시간을 벌면서 백신과 치료제를 기다려야 한다. 솔직히 말해 감염확산 억제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며 우리 모두 방역 긴장감이 느슨해 진 것은 사실이다.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도 했지만, 이곳 저곳 드나들며 괜찮았던 경험이 쌓여 우리들의 루틴도 무뎌졌다. 록다운했던 유럽 국가가 여전히 코로나19에 허덕이는 것을 보면 방역 3단계 조치가 만능은 아니다. 어떤 조치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행동이다.

모임약속 취소, 집콕, 방콕이다. 2021년 어느 봄날 너와 내가 커피숍에 앉아 대화하려면 우리는 올해 크리스마스 전에, 아니 더 빨리 헤어져야만 한다. 나른하게 <사랑의 인사> 첼로 연주를 들으며 여유를 가지기 위해 각자 인사를 하기로 하자. "연말에 못 봬요. 내년 봄 다시 만나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