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1인치 장벽 가능성...섬세한 특허전략 필요한 이유

필자는 지난 5월 한국바이오협회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주관한 교육에서 "바이오기업의 특허전략"이라는 꽤 거창한 주제로 오프라인 강의를 진행하였다. 주된 교육 대상이 예비창업자였기 때문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내용을 전달해야 할지 정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기존에 만들어 놨던 여러 교육자료들은 그들이 당장 듣고 싶어하고 얻고자 하는 정보가 아닐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무슨 내용이 관심사일지 고심하면서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구한 끝에, 필자가 2019년 4월부터 약 2년 동안 히트뉴스에 기고하였던 24개의 칼럼 중 예비창업자가 알고 싶어할 만한 내용을 스토리로 엮어 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교육 후 한달 정도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이러한 내용은 독자들에게도 아주 조금은 유용하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부끄럽지만 용기 내어 지난달 교육의 주요 주제에 조금 살을 보태어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다.

 

도대체 왜, 특허가 중요한가

우리가 종사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제품을 출시하려면 넘어야 하는 엄청난 허들이 있다. 그렇다. 바로 규제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다른 산업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의약품 시장의 특수성이라 하겠다.

그런데, 허가를 받고 세상에 제품이 출시된 이후 경쟁자가 내 제품을 카피하지 않게 하려면 일종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그렇다. 이번엔 바로 특허다. 특허 없이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속된말로 죽쒀서 개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특허 1개의 가치가 엄청난 의약품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휴대폰 하나에 들어가는 특허가 수천개라면 의약품은 물질특허 하나만 있어도 진입을 차단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권이 만료되는 순간, 즉 특허 독점권을 잃는 순간 (LOE; Loss of Exclusivity)에도 특허의 중요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TNF-α 억제제 항체 의약품인 휴미라 (아달리무맙), 엔브렐 (에타너셉트), 레미케이드 (인플릭시맙)를 비교해 보자.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셀트리온의 램시마/인플렉트라)가 등장한 J&J의 레미케이드는 2015년 유럽 특허 만료, 2018년 미국 특허 만료로 바이오시밀러 회사들의 폭격을 맞고 있다. 2017년 6위 ($ 7.8 Billion), 2018년 12위 ($ 6.4 Billion), 2019년 15위 ($ 5.3 Billion)로 하락세를 막지 못하고, 2020년 드디어 15위 밖으로 밀려났다. 암젠의 엔브렐은 2017년 2위 ($ 8.3 Billion), 2018년 5위 ($ 7.4 Billion), 2019년 9위 ($ 7.2 Billion), 2020년 12위 ($ 6.3 Billion)로 마찬가지로 하락세이지만 하락의 경사도는 레미케이드보다 낮다. 이는 2015년 유럽 특허 만료로 매출 하락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미국 특허는 2029년 만료로 아직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대법원은 산도즈와의 소송에서 암젠의 손을 들어주면서 2029년까지 특허권을 인정하였다). 몇 년째 왕좌를 지키고 있는 애브비의 휴미라는 2018년 유럽 특허가 만료되어 2019년 매출이 꺾이면서 더이상의 상승 모멘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히트뉴스 2020년 1월 칼럼; "미국vs유럽 특허 포트폴리오 달랐던 휴미라, 결과는?". 미국 특허가 2023년에 만료되면 본격적인 매출 하락을 보일 것으로 보이며 조만간 MSD의 키트루다에게 왕좌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엔 항암 항체 의약품을 살펴보자. 리툭산 (리툭시맙), 허셉틴 (트라스투주맙), 아바스틴 (베바시주맙) 모두 미국, 유럽에서의 특허가 만료되었거나 거의 끝나감으로 인하여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2021년 5월 바이오큐브 강의자료.
2021년 5월 바이오큐브 강의자료.

위와 같이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특허 존속기간 만료로 매출이 급감하는 현상을 특허절벽 (Patent Cliff)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의약품 시장에서의 특허의 중요성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기술을 특허로 공개할 것인가, 노하우로 숨길 건인가

필자는 2020년 8월 칼럼 (항체약 시장 군림한 카빌리 처럼 특허전략 짜는 방법)에서 특허와 노하우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다시 정리해 보면, 특허는 자신의 기술을 공중에 공개하는 대가로 특허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술 내용을 경쟁사 등에게 노출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해당 기술이 없으면 기술 실시가 어려운 경우 기술유출 가능성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면 사업적으로 특허보다 노하우로 보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또는, 특허출원을 하더라도 노하우는 최대한 숨기면서 특허등록에 필요한 정도만 공개하는 수준(명세서 기재요건을 충족하는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COVID-19 백신 지재권 면제 이슈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이다. 예를 들어, 화이자나 모더나의 mRNA 백신 기술에 대한 특허를 면제하기만 하면 그 기술을 뚝딱 카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순진무구하다. 당연히 해당 특허 명세서에는 특허 제도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정보만 기재되어 있고 실제 제품 실시를 위한 일부 기술은 노하우로서 감추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이 자신의 기술을 특허로서 보호할 것인지 노하우로서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 수립이 우선되어야 하며, 기술적 진입 장벽이 있거나 특허 보호가 쉽지 않다면 노하우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특허출원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만 특허 명세서에 기재하고 노하우는 최대한 감출 수 있는 출원전략도 필요하다.

 

자사특허 보유보다 중요한 것은 타사 특허 침해하지 않는 것

필자는 2019년 8월 칼럼 (BMS-MSD 합의금 속 바이오 기초연구의 특허가치)에서 키트루다 (펩브롤리주맙)와 옵디보 (니볼루맙)의 특허 분쟁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면역관문억제제 (immune checkpoint inhibitor)에 대한 원천기술 특허는 키트루다를 보유한 MSD가 아닌 옵디보를 보유한 BMS가 보유하고 있다 (혼조 교수/오노약품 à 메다렉스 à BMS). 혼조 교수와 오노약품은 니볼루맙 개발 전 PD-1 항체에 대한 플랫폼 특허를 출원하여 등록되었는데, 이 등록 청구항은 항체의 한정 없이 아주 넓게 등록되었다. 즉, PD-1을 억제하기만 하면 항체에 상관없이 침해가능성이 있다. 후속 주자인 MSD는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아마도 등록 청구항이 과도하게 넓다고 보여 무효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BMS는 키트루다가 허가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침해소송을 제기하였다. 무효사유 등에 대한 다툼이 있었으나 결국 키트루다의 글로벌 매출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는 것으로 소송상 화해하였다 (옵디보의 성장이 지지부진하지만 BMS 입장에서 키트루다의 급성장이 아주 나쁜건 아니지 않을까?).

바이오큐브 강의자료.
바이오큐브 강의자료.

또한, BMS (주노테라퓨틱스)는 길리어드 (카이트파마)와의 CAR-T 기술 특허침해소송 1심에서 7억5천2백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위 소송 사례는 조만간 별도의 칼럼에서 자세히 다뤄보고자 계획 중이다).

위 두 사례를 보면 두려움이 느껴진다. 원천기술을 확보하면 길목에 서서 통행세를 거둘 수 있지만, 무효화 전략 등의 대책 없이 통행세를 내지 않고 겁 없이 시장에 들어갔다가 회사 문 닫을 수 있겠다 싶다. FTO (freedom-to-operate) 검토를 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라 하겠다. 그리고, Licensing–IN 하는 Licensee 입장에서는 침해 이슈가 없는지에 대한 Due Diligence를 수행하여 리스크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출원 전 공지행위는 제발 좀 하지 마시라

필자는 2020년 12월 칼럼 (입이 방정"…특허권 날리는 손쉬운 방법 '자기공지')에서 자기 공지행위는 코로나만큼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변리사 입장에서 자기공지로 인하여 문제되는 사례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논문, 초록, 포스터 발표 전에 출원을 마무리하는 것은 연구자라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를 소홀히 하여 훌륭한 발명이 등록 받을 수 없거나 등록받더라도 아주 좁은 범위로 등록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논문 발표 등의 일정이 이미 잡혀 있어서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필자가 2021년 5월 칼럼 (미국만 있던 '가출원' 한국상륙 1년, 실무 체크리스트!)에서 설명한 한국 임시출원 제도 또는 미국 가출원 제도 이용을 적극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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