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광아카데미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거야?

토요일 모히또 한잔에 활명수 청심원 쿠바를 듣다 정지훈 음악평론가 이어 오지운·이상현 약사 강의

2022-11-30     정혜진 기자

약국에서 매일 팔리는 까스활명수 한 병, 우황청심원 한 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일과 후 즐기는 시원한 모히또 한 잔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이 이야기들은 결국 사람을 향하고 그래서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다. 약국도, 약사도 예외는 아니다. 

26일 토요일 오후 대화제약 본사에서 약사들을 위한, 약사가 이야기하는 인문학 강의가 진행됐다. 홍성광아카데미가 주최한 이날 강의에서 100명 가까운 약사들이 오지운 약사의 '메디히스토리', 이상현 약사의 쿠바 여행기를 들었다. 이상현 약사는 쿠바의 역사, 문화와 의료체계를 쿠바의 대표적인 술 모히또와 함께 제공했고, 오지운 약사의 이야기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약사가 다루는 건 약과 질병, 결국 대면하는 건 사람"

오지운 약사는 현재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 개설된 의학교육학과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에 진학한 인문학자다. 제주대 약대에서 일반의약품을 강의하고, 제주 힐링약국도 운영하는 약사이기도 하다. 오 약사가 인문학에 접어든 건 약국을 하며 약사로서 환자를 잊은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면서부터다. 

"약국을 하다보니 사람이 없어지더라고요. 사는 맛이랄까, 일상도 재미가 없고요. 그런데 이 피폐감은 자칫 중독되기 쉽습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인문학에 빠져들었어요. 책도 읽고 유료강의도 많이 찾아다녔지요."

그러면서 인문학과 약사, 의학, 약학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2019년 약사들을 대상으로 10주 '인체인문학' 강의를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수료자들에게 지금까지도 '좋은 강의'로 회자되는 걸 보며 그는 약사들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오지운 약사

"약사가 다루는 건 약인지, 질병인지 헷갈리는 때가 있습니다. 정답은 약도 질병도 아닌 사람이지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니까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환자의 값을 매기고 돈만 보게 됩니다. 환자도, 약사도 불행해지는 거죠."

각박해지는 지금 그래서 더 필요해지는 '약사인문학' 선봉에 나선 오지운 약사가 이날 강의한 건 동화약품 '까스활명수'와 광동제약 '우황청심원'이다. 제약사 내부자료를 받아 오 약사가 스터디하며 역사, 이야기로 풀어냈다. 우황에 대해 알고자 소는 물론 우제류 계통까지 가져왔다. 까스활명수가 당시 얼마나 획기적인 약이었는지 알기 위해 조선시대 농부들의 식습관도 살펴봤다. 

여담이지만 농삿일을 버티기 위해 조선의 농부들은 한 끼 평균 햇반 15개 분량의 밥을 먹었고, 그 결과 소화불량은 말라리아 다음으로 많이 앓는 질병이 됐다. 조선시대 '우황청심원'은 궁중에서 만든 것을 최고로 쳤고, 외국의 통신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이었다. 

"의사들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고 의대에 '의사인문학', '의료인문학'을 개설하고 있어요. 사람을 대하고 사람을 치료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은 기본이자 필수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약사라고 다를까요. 제주대는 올해부터 약사인문학을 개설했고 이런 움직임이 확대될 겁니다. 약사사회의 인문학 바람도 이제 시작입니다. 바쁜 약국, 지치는 일상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쉬운 하나부터 인문학을 접해보세요. 일상이 달라집니다."

 

"담뱃갑에 그려진 쿠바 지도, 쿠바를 공부하고 쿠바로 떠났다"

 

이상현 약사는 1년 중 명절 단 이틀만 문을 닫는 '363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약국을 인수하기 전 그는 서른두 살 나이에 전세계 32개국을 여행했다. 이날 소개한 쿠바 여행의 시작은 상큼한 향을 내는 담배에서 시작됐다. 담뱃갑에 그려진 쿠바 지도를 보고 그는 쿠바에 대한 책을 사고 여행 계획을 짜며 쿠바 여행에 돌입했다.

이상현 약사

"저는 여행을 갈 때 쉽게 결정하고 예약 없이 떠나는 편이에요. 그렇지 않고 부담이 되면 잘 떠나지 못하거든요. 쿠바는 여행가고자 결정하고 역사와 문화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미국 작가인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유명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헤밍웨이가 말년에 머물며 모히또를 즐겨마셨다는 걸 알고나서 헤밍웨이 책도 읽었습니다."

쿠바는 공산주의국가이며 혁명가 체 게바라로 유명한 나라다. 이 약사는 쿠바에 머무는 동안 낙천적이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 쿠바섬이 시가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이용당한 역사도 알게 됐다. 모히또는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발효한 럼주를 주재료로 하는데, 사탕수수가 넘쳐나는 쿠바에선 싸게 얼마든지 취할 수 있어 선원과 해적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아울러 공산주의 하에서 이뤄지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현실도 보았다. 의대 커트라인이 여느 자연계열 과보다 낮아 의사가 흔한 나라.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OECD 평균(3.5명)을 두 배 넘게 웃도는 8.4명인 나라. 그래서 마을 단위로 가족주치의 진료소(꼰술또리오)가 있어 마을의 모든 일이 진료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 쿠바의 모습이다. 

"쿠바는 미국 교역이 단절돼 모든 공산품이 부족한데 특히 의약품이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운동, 모기장 설치, 개인위생 등 예방의학이 발달했죠. 또 의사가 흔하고 진료소가 가까이 있으니 마을의 모든 소문이 진료소에 모입니다. 진료소는 어느집 숟가락이 몇개고, 어느집 남편이 누구와 바람났는지까지 다 알고 있어요. 옛날 우리나라 약국처럼 말이죠."

1년 간 무계획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와 "뭘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이 약사는 자신이 담뱃갑에서 쿠바라는 나라를 알게된 때부터 쿠바를 공부하고 비행기를 타고 다녀온 때는 물론, 쿠바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지금도 쿠바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다른 약사들도 지금부터 여행을 꿈꾸고 추억하며 언제든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내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강의를 기획한 홍성광 약사는 "클래식 전문가 정지훈 약사 강의를 시작으로 홍성광아카데미를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 약사들에게 필요한 인문학을 여러 색깔, 다양한 내용, 알찬 강사진으로 소개하려 한다"며 "내년부터 아카데미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