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네릭의약품 정조준 한 건보종합계획의 칼

장마를 예고하는 먹구름이 제약산업 가까이 다가와 산업 종사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산업의 곁으로 먹구름을 밀어붙이고 있는 동력은 다름아닌 정부의 건강보험종합계획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말이 대통령 공약으로 거론될 때부터, 건보종합계획의 실루엣(silhouette)이 어렴풋하게 실체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보장성을 지탱할 재원 조달 방식은 결국 조자룡 헌칼처럼 또다시 약가 인하 아니겠냐"고 산업계는 염려해 왔었다.

불길한 예감은 다 맞는다고 했던가. 정부는 지금 산업계 예상대로 움직이고 중이다. 정책을 통해 건강보험 곳간을 지키고 있는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한국보건행정학회와 한국보건사회약료경영학회에서 확고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건보정책 계획의 출발점은 한정된 재정이다. 정부가 약제비로 지출할 수 있는 비중은 25%다. 국민 1인당 약제비 지출은 영국보다 높다. 제네릭구조로 형성된 국내 환경에서 환자 입장은 배제돼 있다. 제네릭 지출구조 자체를 환자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곽 과장이 여러 단계 논리를 거쳐 추출해 낸 '환자 친화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간명하다. 제네릭 약품비를 줄여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 등 중증질환치료제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신약에 대해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현 제도로는 이 같은 신약수요를 탄력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정부 재원을 더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정언명제를 세운 그의 머릿속과 심중은, 제네릭의약품을 손 대지 않고 해법은 없다는 신념으로 꽉 채워진 듯하다.

현재로선 산업계 논리가 파고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제약업계 이야기를 정리하면, 국내 제약계는 씨드머니로써 제네릭의 중요성을 말하고, 바이오의약품에 대해서는 그 특성을 감안해 적정보상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다국적 제약사는 신약가격 수준이 낮다고 말한다. 작년 국내 약품비가 17조8000억원 규모였는데, (이 안에서) 다 충족시킬 수 있느냐,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라는 게 곽 과장의 생각이자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계속해 주장될 산업계 의견이라는 것도 '건보재정 확충 불가능'이라는 틀에서 제한적으로 청취될 개연성이 높다.

'그래도 기차는 간다'는 정치인들의 싸구려 말처럼 논의는 구체 정책으로 빠르게 옮겨갈 것이다. 리얼월드데이터(RWD) 기반의 등재약의 재평가, 해외약가를 기준삼은 가격조정, 2만개이상 의약품이 등재된 급여목록 재정비, 제네릭 최초등재 품목들에 대한 가산 축소나 폐지 등이 그것이다. 정부 주머니 속 카드가 참 많다. 그러나 '스페이드 무늬' 일색이다. 예컨대, 이 카드들은 제네릭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것뿐이며, 정작 '약품비(가격X사용량)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핵심인 사용량 통제 카드'는 빈약하다. 제네릭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2012년 약가일괄인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셈으로 '하트 무늬' 카드가 없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과 신약접근성 제고를 놓고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정부 관점에서 고민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보험과 맞물려있는 제약산업에 대한 고민역시 등가는 아니어도 비중있게 고려돼야 한다. 어느 토론 현장에서 보건경제학자의 '책상 빼 논리'처럼 건강보험에 도움을 받은 제약산업의 과거 성과가 그리 비참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2일 오송에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할 수 있었던 자신감도 국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R&D) 성과에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대통령의 혁신전략 하나가 국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역량을 떠받쳐온 제네릭의 모든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IMF 시절 직장 초년생이었는데 나라처럼 회사도 어려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경영진 가운데 한 분이 브라운 톤의 싸구려 점퍼를 구입해 나눠줬다. '매출이 줄어들어 이제부터 모든 지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하고는 온풍기를 끄라했다. 온풍기가 꺼지자 곳곳의 전등 스위치가 내려졌고, 이면지를 복사기에 넣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 비싸다는 제록스 복사기 AS 요원의 발길도 늘었다. 몸도 마음도 추웠다. 건보 지속가능성이나 신약접근성 제고의 최종 대안은 산업에 있다고 본다. 산업이 황폐해지고나면 '더 많은 리피오돌 사태'와 직면하게 될지 우리는 다같이 모른다. 마른 수건 쥐어짜더라도 산업의 미래는 그래서 고려돼야 한다. 정부 정책들은 산업계와 소통과 협의로 완성돼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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