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라이언스 준수여부 확인하고 사업성은 시장에 맡겨야

국내에서 NRDO 기업이 점점 늘고 있지만 이들의 기술특례상장 문턱은 높아 보인다. NRDO(No Research & Development Only)는 연구(Research)는 하지 않고, 오직 개발(Development)에만 집중하는 사업 형태다. NRDO 형태의 바이오벤처 기업은 생산기반 시설과 실험실을 갖추고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 NRDO 기업 중 처음으로 기술특례상장에 성공한 큐리언트도 사실 엄밀한 의미의 NRDO기업은 아니다. 큐리언트는 한국파스퇴로의 자회사로, 모기업인 한국파스퇴르에서 신약후보 물질을 들여오기 때문에 소규모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내 NRDO기업의 대표격 인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가 지난달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평가에서 탈락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절반 이상 NRDO 기업 모델을 채택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올해만 일동제약, 한독,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등이 NRDO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NRDO 기업은 계속해서 늘고 있는데, 아직 이 사업모델의 상장 기준은 모호하다. 히트뉴스는 현행 상장제도에서 NRDO 기업이 상장하기 위한 걸림돌과 국내보다 먼저 NRDO 모델이 생겨난 미국의 모델을 살펴보고, 향후 방향성을 모색해 봤다. 

◆NRDO 원천기술 없어…기평에서 높은 등급 받기 어려워

NRDO 기업은 앞서 설명했듯이 ‘개발’에 특화된 기업이다. 신약개발 앞 단에 해당하는 표적발굴과 약효 최적화가 끝난 시점부터 신약 개발을 담당한다. 때문에 대학이나 국책연구기관 등에서 외부 파이프라인을 사들여 오는 것이 대다수다. 다시 말해 NRDO 기업은 신약개발의 원천기술(파이프라인 등)을 도입해 개발 ‘역량’(신약의 시장성, 라이선스 아웃 등의 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펼친다. 원천기술은 없지만 신약 ‘개발’(development)’ 역량이 특화된 것.

문제는 한국거래소는 그동안 ‘개발 역량’을 평가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기술성특례상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술성평가는 제출된 보고서를 토대로 질적 평가가 이뤄진다. 주로 ▲사업성 ▲원천기술 ▲특허 ▲연구의 질 ▲임상단계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 거래소 측의 설명이다. 때문에 거래소 측에서 국내에서 새롭게 생기고 있는 NRDO 기업을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미 NRDO와 같은 기업들이 늘고 있는 환경에서 모든 기업들의 요건에 맞는 기준 항목을 신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현재의 주어진 상황과 이로 인해 매출이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기평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벤처캐피털(VC)에서도 NRDO 기업에 대한 거래소의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 VC 업계관계자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약개발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며, “기술평가 전문가위원회에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NRDO 기업을 인정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고 했다.

◆미국, NRDO 기업이 50% 이상…상장 기준은 ‘컴플라이언스’만

미국과 국내 주식 시장 상황은 다르다. 특히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미국엔 없다. 다만 국내보다 먼저 NRDO 비즈니스 모델이 생긴 미국이 제약바이오 주식시장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사실 미국은 NRDO 기업이라고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다. 바이오벤처의 절반 이상이 NRDO 기업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바이오벤처의 기술이전으로 익숙한 로이반트와 트리거테라퓨틱스 모두 NRDO 기업이며, 미국 바이오 업계 생태계는 대학에서 나온 기술을 전문가들이 개발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거래소 격인 증권위원회(SEC)는 바이오벤처 기업이 상장하는 데 어떤 요건을 볼까? 나스닥 상장 기준은 컴플라이언스 준수 여부, 주식수, 시가총액, 주관사 등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컴플라이언스 준수 여부다. 이 기준만 충족되면 나스닥 상장은 쉽게 이뤄진다. SEC는 ‘상장’에 대한 허들은 낮게 형성하되, 주식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폐지한다. 상장보다는 폐지 요건이 더 강화돼 있다.

정리해 보자면 미국의 SEC는 민간기업의 성격으로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운용된다. 주식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차없이 폐지되며, 법만 준수하면 투자자들의 선택에 맡겨진다. 반면 한국거래소는 정부가 주도하는 조직 형태로, 투자자 보호 측면이 강하다. 이는 과거 기업들이 제대로 된 기업정보 공개를 하지 않고, 대주주를 중심으로 횡령 혐의가 빈번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개인 투자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상장 기준을 보수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술평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거래소가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파이프라인 단위로 안정적인 기술력을 평가하는 것을 틀리다고 할 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내도 점차 미국 나스닥 시장과 같은 형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이오벤처 업계 관계자는 “NRDO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할 것”이라며, “이때마다 거래소가 상장 평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면 불필요한 과정들이 반복될 것이다.”고 했다. 이어 “VC와 개인 투자자들이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사업성은 판단된 것”이라며, “거래소는 기본적인 컴플라이언스 준수 정도만 보고 나머지 사업성은 주관사, 투자자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NRDO 상장 막는 명확한 기준 없어…거래소도 고심 중

앞서 설명했듯 기술성평가는 단일변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통해 질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때문에 NRDO 기업이 원천기술이 없어 기평에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사례를 통해 유추한 것인지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VC 업계관계자는 “거래소가 (기술성평가에서) 원천기술을 중요하게 보는 입장 역시 가이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기조에 기술성평가 사례 등을 통해 원천기술이 중요하다는 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 있는 것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 제약바이오 생태계에서 원천기술의 의미가 무색해진 만큼 거래소 역시 NRDO 기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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