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준비한 미쓰비시다나베 한국법인도 난감

일본계 제약사인 미쓰비시다나베의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일명 루게릭병) 치료제 '라디컷주(에다라본)' 약가협상 철회는 각국이 다른 나라 약가를 참조하는 이른바 '글로벌 약가참조'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라디컷주'는 일본과 미국에 등재돼 있고, 스위스와 캐나다에서 시판허가를 받아 그동안 보험등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 중 한국약가를 참조하는 캐나다 정책이 미쓰비시다나베 본사의 '변심'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10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미쓰비씨다나베 한국법인과 건강보험공단은 지난달까지 2차례 RSA 환급형을 토대로 한 약가협상을 진행했다. 양 측은 이 기간동안 상대방의 의중과 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달 초 3차 협상에서는 협상타결을 위한 상당한 진전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사 측은 협상시한(6월10일)을 사흘 앞둔 지난 7일 돌연 보도자료를 통해 협상철회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이와 관련 한국법인 측 관계자는 "치료옵션으로 라디컷주를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지난 4년여 시간동안 공을 들여왔다. 심사평가원과 건보공단도 급여를 통해 환자치료에 도움을 주기위해 함께 노력했다. 정부와 심사평가원, 건보공단에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라디컷주를 기다려온 환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각국의 글로벌 약가참조가 철회이유가 됐다는 것 외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 한국법인도 난감하고 이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는 또 "보도자료를 낸 건 협상을 철회했어도 국내 의약품 공급을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특히 환자부담을 조금이라고 완화하기 위해 공급가격 조정을 검토하겠다는 회사 측의 의지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결국 미쓰비시다나베 측의 이번 등재절차 자진 중단으로 라디컷주를 기다려온 환자들은 높은 비급여 가격을 부담하거나 돈이 없으면 쓸 수 없게 됐다. 대체약물은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경구제인 리루텍정(리루졸). 이 치료제 대상환자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중 절반 가량은 투여조건에 맞지 않아 리루텍정을 투약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디컷은 적어도 이런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옵션이 될 수 있었지만 급여권에서 접근은 이렇게 요원해졌다.

한편 라디컷 사례는 환자들의 절망 뿐 아니라 국내 약가제도에도 적지 않은 충격파가 될 전망이다.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들은 그동안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글로벌 약가참조 그물망으로 인해 신약 '한국패싱'이나 '등재지연'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경고 메시지를 정부 측에 전달해 왔었다.

지난해 12월에도 장기 미등재 신약의 대명사였던 한국노바티스의 중증 알레르기성 천식치료제 졸레어주사(오말리주맙)가 약가협상 중 등재절차를 돌연 중단했던 적이 있었다. 졸레어주사의 경우 해외에서도 등재된 국가가 많아서 한국법인인 약가참조 이슈를 어느정도 빗겨갈 수 있다고 보고 본사를 적극 설득했고, 심사평가원 단계까지 무난히 넘어섰다.

하지만 건보공단 협상 단계에서 중국의 한국약가 참조 이슈가 갑자기 불거져 나왔다. 시장이 훤씬 더 큰 중국이 더 싸게 약가를 책정하기 위해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나서자 노바티스 본사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이다.

졸레어주사는 이렇게 중국발 '한국패싱' 이슈의 첫 사례가 됐다. 하지만 라디컷주는 상황이 달랐다. 환급형 RSA로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 처럼 환급형은 표시가격은 높게 설정해 놓고 환급을 통해 실제가격을 달리 정하는 방식인데, 글로벌 약가참조 방어수단으로 그동안 유용하게 활용돼 왔다.

또 다국적제약사나 정부 측은 약가의 불확실성이 강화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글로벌 약가참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환급형 RSA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조심스럽게 해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라디컷주는 환급형의 이런 유용성조차 무의미하게 만든 사례여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정부 측도 난망할 것으로 보인다. 라디컷을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봐야할 지, 아니면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또 나올 수 있을 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다국적사 한 관계자는 "라디컷주는 졸레어주와 비교하면 아주 예외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환급형 RSA는 앞으로도 유효하고 그런 점에서 대상질환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이어 "환급형 RSA를 적용했다면 졸레어주의 '한국패싱'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라디컷주보다는 졸레어주 사례를 더 관심있게 봐야 한다. 현 시점에서 오히려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건 협상철회나 중도포기가 아니라 '중국이슈' 등으로 인해 아예 등재 시도조차도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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