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수박 속 핥기 | 구조적 불신 넘어 상생협력 모색하자

미스터리이자 아이러니. 마트와 약국을 대하는 소비자 심리는 다분히 이중적인 것같다. 잘 알고 있는 상품의 가격이 오른 것을 마트에서 확인할 때 '분노의 화살'은 캐시어를 넘어 기업을 향한다. 한데, 약국에서 알게 될때 그 화살은 약사에게 꽂힌다. "왜 이렇게 비싸?"하는 의구심으로 소비자는 돌아선다.

일반의약품 가격 문제로 약업계가 시끄럽다. 제약회사들이 작년 말부터 몇몇 일반약의 약국 공급가격(제약회사 입장에선 출하 가격)을 야금야금 올리자 약사들이 "인상하는 곳이 많고, 과도한 인상률로 소비자와 갈등이 생겨 지친다, 더는 못참겠다"며 집단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다. 약사들의 불만은 지역약사회로 모여 성명서로 분출됐고, 다시 대한약사회로 올라갔다.

약사회는 제약회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업무 협조를 요청했고, 제약협회는 회원사들에게 이를 공지하며, 상생의 협력을 당부했다.

약사회 업무 협조 요청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가격 인상 품목의 리뉴얼이다. 그래야 약국이 소비자들에게 가격 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들은 "공급 가격이 오르면 판매가에 반영해야하는데 그러고나면 소비자들은 약사에게 따지고, 원망하며, 의심한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심지어 단골 고객조차 고개를 돌리고 발길을 끊는다고 하소연한다.

다른 하나는, 제약회사들이 인상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인상 내용에 대해 약국에게 알려주고, 소비자들에게 홍보해 달라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합리적 인상률을 유지해 달라는 내용이다. 약사들은 "원료비, 인건비 등 제조원가 인상 요인을 감안해도 이해 불가한 인상률도 있다"고 꼬집었다.

▶제약회사, 약사 역할과 고충인지 감수성 부족 제약회사들은 수시로 상생의 파트너라고 약국을 치켜 세우지만, 파트너의 고충에 대한 감수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특허만료 이후 쏟아져나오는 제네릭 전문의약품을 기준 가격대로 구매하고, 복약상담 등으로 이 의약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데, 상대적으로 반품 같은 구조적이고 고질 문제에 대해 그리 협조적이지 않다. 반품 발생을 줄이는데, 소포장 생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약국이 주장하지만 제약회사들은 외면하는 현실이다.

제약사의 맹렬한 영업활동의 결과로 약국은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전문약을 구입하지만, 처방이 끊기면 곧 바로 재고가 되는 데 이를 재고파악을 게을리한 약국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재고 전문약은 약사가 먹어 치울수도, 내다 버릴수도 없는 '공공재'인데 그야말로 설겆이는 약국 몫이 된다. 전문약 가격이 내려 차액보상을 받을 때도 애걸복걸해야 하는 게 약국이다.

일반의약품 가격인상 논란은 이 같은 맥락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대중 광고를 통해 소비자 매출 욕구를 한껏 올려 소비자가 약국을 방문하도록 했으니 소비자가 찾으면 그대로 건네 주기만하면 된다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오랜동안 약국과 소비자간 갈등 요인이었던 가격 인상 문제도 쉽게 생각하고 처리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일반의약품 활성화라는 용어는 그래서 허허롭다. 

▶약국가에 내재된 오래된 관념은 옳은가 서울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H 약사는 "대중광고를 하는 일반약이 싫다"고 말한다. 이 약사 말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약국가는 광고 품목에 대해 "안 팔면 그만"이라는 냉소를 보내고는 한다.

광고품목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대략 2가지다. 첫째는 광고가 약사들의 코칭 역할을 앗아간다는 논리다. 대중 광고가 잠재 고객을 약국으로 유도하는 효과, 이로 인해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가치는 인정하지만 'ㅇㅇㅇ주세요'라는 지명구매가 '약사 역할을 빼앗는다''고 보는 시각이다.

둘째는 광고 품목의 경우 대개 마진이 박하다는데 있다. 박한 마진 현상은 약사들의 인식에 근접하지만, 자율판매가 제도 아래서 마진 결정권은 약사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꼭 진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약국이 광고 품목에서 적정 마진을 확보할 수 없는 데는 자율판매가 제도의 본질을 정부가 외면한 채 전국 단위 최고가와 최저가 조사를 실시해 공개함으로써 부당한 마진을 취하는 약국이 있는 것처럼 착시를 만드는 외부 요인도 있다. 하지만 이 보다 고객유치를 위해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약국간 내부 저가 경쟁이 마진 감소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제약회사가 약국공급가를 인상하는 게 약국에게 달가울리 없다. 약국들이 이웃약국의 가격에 민감하다보니 공급가 인상을 판매가에 적용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왜 올랐냐"고 따지는 소비자가 부담스럽고, 이웃약국의 판매가격 책정이 궁금하니 결국 자신들의 마진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격인상 부담을 해소하는 메카니즘은 약국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현행 자율판매가 제도에서 적정 마진을 취하려면 '약사 집단지성의 각성'이 필요하지만, 이는 표준소매가격 제도 아래서도 풀지 못했던 문제였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광고품목을 찾는데도, 약사들이 주도적으로 권할 수 있는 '태반제제 같은 비광고 품목'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하지만, 소비자가 찾는 품목을 구비하지 않고 약국을 경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일 수 없다. 

▶공급가 인상이 보여주는 메시지 일반약 활성화가 가져다 주는 과실은 약국이나, 제약회사 모두 원한다. 하지만 공급가 인상을 둘러싼 갈등과 불신의 토양에선 열매가 맺히기 어렵다.

일반약 약국공급가 인상이 갈등 양상으로 번진 근본 원인은 소통의 부재다. 제약회사들은 편의점 본사가 편의점에 새 정책을 일방 통보하듯 가격인상문제를 다루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약국은 편의점과 다르다. 이 사실을 이해할 때 약사의 역할이 궁극적으로 제약회사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될 수 있다. 약국이 건강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할 주체가 제약회사다.

그렇다고 한다면 대중 광고에서도 품목의 효과 강조와 함께 약사의 역할을 담아내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상생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매출 좀더 올리겠다고 약국에서 인큐베이팅해 홈쇼핑으로, 대형마트로 데리고 나가는 얌체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면 약국은 어떻게 호응해야 하나. '내가 물건을 팔아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넘어 제약회사와 동반자라는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소비자들이 일반의약품 선택에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설사 광고 품목을 지명하는 소비자라고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정보 제공에 용감해야 한다. 광고품목에도 좀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드링크 한병에 포함된 작은 마진에도 자신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높은 가치로 여겨야 한다. 저가경쟁을 지양하도록 하는 힘이 여기에 있다. 저가 경쟁은 마케팅 툴이 아니라, 전문인의 자긍심을 파는 행위일 뿐이다. 빵집에서 커피를 팔고, 커피숍에서 빵과 쿠키를 파는 세상 융합의 환경에서 의약품으로 소통하는 '약국과 제약회사'는 단짝일 수 밖에 없다. 약국이 제약회사를 외면하고, 제약회사가 일반유통에 관심을 돌리면 서로에게 마이너스 아닌가.  

일반약은 약사들의 정성과 보살핌으로 꽃 피고, 약국은 제약회사들의 이해와 지지속에서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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