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피해자만 있는 소송, 실익이 있을까

발암유발 물질이 함유된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 사건의 후속조치에 건강보험공단이 들어갈 모양이다. 소비자 환불이나 고가약제로 대체된 경우 등으로 인해 추가 지출된 보험재정 만큼 관련 완제의약품을 판매한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환수소송을 진행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발사르탄 사건 당시 판매중지 처분을 받은 제약회사는 70개사 175품목에 달한다. 복지부와 보험공단이 환수대상 기준을 비교적 엄격하게 잡아 추계한 소송 금액이 50억원 정도라고 하니 소송가액이 업계에 미칠 금전적 파장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복지부 등이 하겠다는 발사르탄 환수소송이 가져다줄 비금전적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정부가 한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MA발 발사르탄 판매중단 및 회수조치로 2018년 여름, 국내에서도 동일한 사태가 벌어졌다. 식약처의 발사르탄 관련 안내문.
EMA발 발사르탄 판매중단 및 회수조치로 2018년 여름, 국내에서도 동일한 사태가 벌어졌다.

발사르탄 사건의 구조는 간단하다. 중국 화하이사가 생산한 발사르탄 원료를 수입해 제약회사들이 고혈압치료제를 생산·판매했는데, 이 원료에서 발암유발 물질인 NDMA가 검출되면서 판매중지 등 조치를 받았다. 완제약을 판매하는 제약회사 입장에서 보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허가받은 원료의약품을 사용한게 사건의 전부인데, 마치 불량 고혈압약 제조·판매를 주도한 것처럼 비춰지면서 속앓이를 했다. 관리기준에도 없는 NDMA를 그래도 자체 검사를 통해 걸러냈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약회사들을 다그친다면 도의적으로는 큰 소리를 낼 처지는 못된다. 하지만 발사르탄 사건과 관련해서는 제약회사들도 피해자의 대열에 서 있다는 점은 객관적 사실이다.

NDMA 고혈압약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조제받아간 환자들을 대상으로 환불, 재처방 등 조치를 취했는데 이 과정에서 추가로 들어간 보험재정을 바르고 발라본게 50억 정도라고 한다. 이 추가비용을 제약회사로부터 환수하겠다는 것이 복지부 등의 생각이다. “최종 결재단계”만 남겨뒀다는 환수소송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이번 만큼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최종 판단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고 싶다.

복지부 등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발사르탄에서부터 최근 인보사케이까지 일련의 사고들을 접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안전성 이슈에 얼마나 민감해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본 공무원들 입장에선 “단호한 조치”를 벗어나는 추가적 고려사항에 눈을 돌리기 어렵다. NDMA 고혈압약은 안전성 이슈에 해당하고 이 약으로 인해 보험재정에 손실이 났으므로 보전을 위한 행정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다. 선의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나 관리기준 미비 등을 고려할 여지가 그들에겐 없다. 사정은 좀 다를 수 있지만, 2년전 인보사케이를 허가해준 식약처를 향한 최근의 공방은 왜 공무원들이 경직될 수 밖에 없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원칙대로”만 하면 나중의 낭패에서 비켜설 수 있는데, 굳이 이런저런 정책적 유도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복지부 등이 발사르탄 환수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발사르탄 사건에선 완제품을 판매한 제약회사나 원료수입업체의 과실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또 문제의 원료를 생산한 화하이사의 경우에도 공정상 NDMA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했느냐 여부까지 따져봐야 정확한 승소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소송결정을 눈앞에 둔 것은 “미래의 문제제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공무원들의 심리가 반영됐다는 비판이 우선 나온다.

복지부 등 정부의 편을 좀 더 들어본다면 선례가 없는 행정사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확립한다는 측면에서 승패를 떠나 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관리기준에 없는 유해물질 함유로 재정에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게 맞는지 법원의 판단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취지 정도로 말이다.

소송을 당하는 쪽도 하는 쪽도 마뜩지 않은 상황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해당 제약회사들은 “정말 한다더냐”는 반응을 보인다. “설마”의 느낌이 크다. 그만큼 피해자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소송의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만약 제약회사들이 진다면 제약회사가 원료수입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릴레이 소송이 전개될 수 밖에 없다. 가해자는 빠진채 진행되는 피해자들끼리 손배를 우리는 보게된다.

복지부 등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선에서, 한번 더 고민할 것을 그래서 권고한다. 원칙도 좋고, 행정잣대를 남기는 것도 좋지만, 자신들의 몫이 아닌 과실에 대해 책임질 것을 압박당한다면 행정의 신뢰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50억을 환수하기 위한 손배소송에 할 일 했다는 후련함을 잠깐 느낄지 모르지만, 그로인해 발생하는 신뢰의 구멍은 좀처럼 메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굳이 해야한다면, 해당 기업들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먼저 선행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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