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약정서와 사실증거로 판단…유통업계엔 치명상

[분석] 최근 법원 판결 들여다 보니

최근 '모 제약사 사건'에 대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1심)의 올해 1월 23일 판결 내용과 부산고등법원(2심)의 5월24일 판결문을 보면, 1.2심 공히 사건 관련 제약사(이하 'A제약사')와 도매유통사(이하 'B유통사') 간 거래를 위탁매매 성격으로 보고 있어 주목된다.

위탁매매란 중개상인(중개인)이 고객의 위탁을 받아 상품을 매매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을 말하고 이것을 업으로 자를 위탁매매인이라 부른다. 이를 의약품 시장으로 각색 해 보면, 의약품 도매유통사(중개인)가 제약사(고객)의 위탁을 받아 의약품을 대신 매매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로 변환된다. 법원은 A제약사와 B유통사 간의 거래를 이렇게 본 것이다.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6가지 이유를 들어, B유통사는 상법상의 '위탁매매인'이 아니라 자기 계산으로 매매를 하고 손익을 취하는 의약품 도매유통업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1) A제약사와 B유통사 사이에 작성된 '거래약성서'에, B유통사가 공급받은 의약품에 대해 소유권 유보조항이 있으며, 공급받은 의약품의 관리·보관·판매·유통에 있어 B유통사의 A제약사에 대한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조항이 기재돼 있다는 점.

(2) 또한 B유통사는 판매처나 판매조건 등에 대해 결정 권한이 없고, 특정 조건으로 공급받은 의약품을 다른 병원이나 도매유통사에 처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

(3) 약가인하가 발생하면 A제약사는 B유통사에게 약가차액을 보전해 주고 반품처리 하는데, 이는 곧 약가 인하에 대한 위험을 B유통사가 아닌 A제약사가 부담하는 것이므로, 이는 타인의 위험부담 계산에 의하여 매매하는 위탁매매 구조에 부합한다는 점,

(4) 금융할인 비용까지 고려해 본다면, B유통사의 A제약사에 대한 대금결제 구조는 병원 수금을 전체로 그 이후에 A제약사에 의약품 대금을 지급하는 것인데, 이 또한 위탁매매 구조에 부합한다는 점.

법원은 이러한 것들이 B유통사가 '위탁매매인'의 지위에 있다고 본 것이다.

도매유통인과 위탁매매인은 성격상 차이가 매우 크다. 도매유통인은 '자기계산'으로 매매를 하지만, 위탁매매인은 '타인계산'으로 매매를 한다. 도매유통인은 상황에 따라 가격 및 대금결제 조건 등 제반 거래 조건 등을 시장 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수립하여 집행할 수 있지만, 위탁매매인은 그러하지 못하다. 위탁자가 책정해 놓은 거래 조건 등을 그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도매유통인이 가지고 있는 상품, 매출채권 및 매매결제 대금 등은 모두 자기 소유이지만, 위탁매매인이 위탁자로부터 공급받은 상품과 그 상품에 대한 매매대금 및 매출채권 등은 위탁자의 소유다.

이를 볼 때, 의약품 도매유통인이 위탁매매인으로 변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도매유통사들은 제약사들과 거래약정서 내용을 어떻게 작성하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떠한 별별 방법으로 거래를 하든, 도매유통업(도매유통인)이라는 지위는 천부적이기 때문에 절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위탁매매인'이라는 지위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호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때문에 당해 지방법원 지원과 고등법원이 B유통사를 이 사건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위탁매매인'으로 본 것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약품도매유통업계에는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도매유통업계는 자칫 잘 못되면 도매유통인의 지위가 하루아침에 위탁매매인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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