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기부하면 착한회사? 기업 본연역할 없으면..."
"자선·기부하면 착한회사? 기업 본연역할 없으면..."
  • 히트뉴스
  • 승인 2019.05.27 06: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한미약품 임종호 전무(CSR 담당)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기부, 봉사와 같은 사회적 공헌활동을 먼저 떠올린다. 사회공헌활동은 착한 기업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며 기업의 우호적인 평가를 이끄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이 있지만, 사회공헌활동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경제적, 법적, 윤리적 책임 외에도 사회의 폭넓은 요구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살아있는 유기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같이' 숨쉬고 '함께' 살아가는 인문학적 사고에서 출발한 인식의 연장선에 CSR이 있다. 사회와 공존하며 사회적 요구에 따른 책무를 다하는 사회일원으로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CSR의 본질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는 가격이 같을 경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 30대 중반의 한 가족의 가장을 상상해보자. 이 남성은 탈세, 탈루, 노동착취, 쓰레기 무단 투척 등 각종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경제활동을 영위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이 남성은 지속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할까? 봉사활동이나 기부금을 전달한다고 본인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에서 출발한 상생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도 이 프레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CSR은 1960년대 기업들이 급속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나 노동착취 등의 문제를 일으키자 ILO(국제노동기구),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대두된 개념이다. 기업은 더 이상 이익만을 쫓는 조직이 아닌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어야 한다고 인식이 변화한 것으로 기업 본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소위 착하게 경영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CSR은 미국, EU를 중심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초기 CSR은 자선적인 목적에서 봉사와 기부 등이 강조되어 왔으나 점차 기업의 단점을 가리는 용도로 변질되어 왔다. 사회적 논란거리가 많은 기업일수록 CSR에 적극적이라는 비아냥도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시대적 요구가 다양화되고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면서 CSR이 점차 기업문화로 내재화되고 있으며 정부 주도하에 경영 시스템으로 속속 도입되고 있는 중이다.

EU의 경우 90년대 초반부터 CSR 제도화를 추진하여 2017년부터는 5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비재무 정보 공시를 의무화했고 미국과 일본은 세금혜택 및 보조금 등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기업주도형 CSR 모델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ISO(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ISO26000'을 제정해 지배구조, 인권, 환경, 소비자 등 7개 핵심주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히토쓰바시대학 다니모토 간지 교수의 저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경영'에서 경제, 사회, 환경에 기여함으로써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CSR을 설명하고 있다. 그럼 우리의 CSR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CSR의 초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ESG 및 지속가능경영 관련 법제화, 정부 주도의 사회적 경제 지원 등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또한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CSR개념을 도입하여 최근에는 CSV(Creating Shared Value)까지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이 만든 가치로 소비자와 이해관계자가 행복하고 사회가 발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CSR적인 기업의 가치창조이다. 하지만 우리기업의 CSR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미 시행된 여러 제도들의 보완이 필요하고, CSR도 일부 기업의 활동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국내 상장사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비율은 약 10%대이며, 시총 순위 상위 100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약 50% 수준에 그친다. 비록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CSR을 평가하는 척도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부분이다.

국내제약산업으로 국한해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단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은 한미약품이 유일하고 매출순위 상위 10개사 중 CSR팀이나 사회공헌팀 등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곳은 한미, 동아, 유한 3곳 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홍보팀이나 인사팀 등이 사회공헌 관련 업무를 겸직하게 하고 있다. 결국 사회공헌활동과 기업 홍보에 국한하여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CSR=사회공헌활동'이라는 프레임에 묶여 있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인 ‘이익’은 ‘선’을 실천하기 위한 최소의 방법이고 타인과 경쟁하기 위한 이기심은 경제성장을 이끌며 가난과 빈곤문제를 해결하여 가난한 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준다. 제약기업으로서 혁신적으로 좋은 약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주 사업 목적 자체가 인간의 행복과 건강유지 즉, 사회적인 책임에 직결되는 것이다.

신약개발 중인 연구원. 사진=한미약품 제공.
신약개발 중인 연구원. 사진=한미약품 제공.

국내 제약기업 중 유일하게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한미약품의 사례를 참고해 보자. 한미약품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인 'CSR보고서'를 관통하는 핵심주제는 'CSR=R&D'로 귀결된다. 국경을 초월한 모든 제약기업의 제1 사명은 좋은 약을 개발하여 인류 건강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R&D투자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더불어 미래를 좌우한다. 단지 ‘이익창출’과 ‘매출증대’ 만으로 경영책임을 다 한 것이 아니고, 어쩌면 정부의 지원과 국민 건강을 중시한 제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자각을 하고 이 단계를 넘어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하는 기업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좋은 약을 개발하고, 국부창출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함은 물론 일자리 창출,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건전화 등을 통한 제약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 이것은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인 국내 제약회사에 주어진 과제이다. 한미약품 CSR보고서에서는 이 모든 과제의 핵심을 ‘R&D’로 천명하고, 제약기업의 본업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책임과 연계된 경영이 바로 사회적 가치이며 한미약품의 CSR전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기업 내에서 발생되는 오염물질 저감활동 등의 환경 건전성, 리베이트 및 부패방지를 통한 공정한 경쟁, 고용착취 및 불평등 근절의 인권경영, 투명한 지배구조와 더불어 사회공헌이 결합된 경영활동 전반을 CSR 관점에서 보고하고 있다.

봉사활동이나 기부로 개인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듯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만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자선, 기부 단체 사회적 후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 동안 리베이트 등 부적절한 욕망이 지구촌 질병을 해결하는 제약기업의 선한 이미지를 해쳤던 과거 우리 제약 기업은 원래의 착한 기업 이미지를 찾기 위해 사회적인 책임을 통한 절제와 적극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할 때이다. 결국 규모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이다. 제약 전문성을 살려 이익을 추구하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서 그 성과로 기업도 성장하는 것이 제약 기업이 가장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CSR 실천 방법이다. 제약기업 스스로가 그 사회적 책임을 인지하고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비로소 CSR이 시작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