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 교수, 불확실한 경제성평가 보완하는데도 유의미

국회, 경제성평가제도개선 정책세미나

한국약가를 참조하는 시장이 많아질 수록 다국적제약사들은 한국 내 신약 출시를 늦출 수 밖에 없다면서, 불가피하게 국내 보험약가 정책은 공식약가와 리베이트 후 실제 약가의 이중적 운영으로 신약 접근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위험분담제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보건의료분야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자료 공개 투명성 등의 중요성도 제시했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21일 오후 이명수 보건복지위원장, 국회입법조사처,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공동 주최한 '환자 접근성 향상과 제약산업 활성화를 위한 의약품 경제성평가 제도개선 정책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안 교수는 현 경제성평가제도의 이슈로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 면역항암제의 과발현(Hyperprogression) 문제, 사후평가를 통한 불확실성 대처, 경제성평가 기준의 적절성 문제, 국내약가의 해외참조 사례 증가, 경제성평가 검토문제 등 6가지를 거론했다.

불확실성과 사후평가=안 교수는 먼저 경제성평가는 태생적으로 불확실성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따라서 불확실성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고, 확률적 민감도 분석 등으로 표시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많은데, 한국은 전통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제약사 책임으로 간주해 왔다고 했다.

그는 "(이 때문에) 갈등이 유발될 수 밖에 없는데 차라리 환급할 수 있다면 위험분담제 환급이나 다른 제도를 활용해 보완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했다. 또 신약 등재 때 파악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충격은 고가 약제일수록 클 수 밖에 없다면서 (이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신약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제도들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대표적인 최근 이슈로 면역항암제의 '과발현'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아직 연구결과는 없지만 과발현 연구 결과는 면역항암제의 가치를 찾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방식으로 사후평가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신약 등재 시 제출되는 임상자료는 근거수준이 높은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 자료들이나 국내 환자들이 포함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상시험 효과와 실제 임상현장에서 효과는 다를 수 있고, 국내 환자들에게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가치 문제에서) 등재 때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고가일수록 불확실성은 중요한 문제가 되고, 국내 실제 임상현장 자료들(RWE)을 전향적으로 모아 등재 후 신약의 효과를 검증하는 건 좋은 투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고려할 점들로는 근거수준의 차이를 고려해 최대한 수집하는  환자 수를 늘리고 RCT 대비 RWE의 효과 차이가 유의하게 클 경우만 경제성평가까지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등재 때 사용했던 경제성평가 모형에 RWE 결과에서 도출된 모수값들을 대입해 경제성 결과 재계산 및 필요 시 약가조정 혹은 환급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내용들이 신약 등재 때 계약조건에 반영돼야 하고, 이런 조건들에 동의하는 제약사에 대해서는 불확실성 입증 의무를 완화시켜 신속등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GDP와 Qaly, 해외 약가참조=안 교수는 경제성평가 기준의 적절성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현재 심사평가원에서 WHO 기준이라면서 1GDP 2500만원(비항암제)과 2GDP 5천만원(항암제)을 언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WHO는 C형간염치료제 소발디나 하보니 이슈 때 급여결정에 GDP를 경제성평가 기준으로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국가별로 'Qaly'의 가치를 산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보건의료연구원 재직시절 연구한 국내 1Qaly의 가치는 2010년 연구 때는 2천만원 미만이었고, 2012년에는 3050만원이었다고 소개했다.

안 교수는 국내 약가의 해외참조 사례 증가 문제에도 주목했다.

그는 많은 나라들이 손쉬운 약가관리 방법으로 해외 약가를 참조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 때 해외약가는 낮고 투명할수록 참조하기 좋은데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선호되기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이전에는 국내 약가가 외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2014년 공식적인 사례가 처음 나오면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식약처가 30개국 해외약가 제출목록에 한국을 포함켰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한국약가 참조는 걸프지역 전체와 북아프라가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안 교수는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국내 약가를 참조한 뒤 협상에 활용하고 있고, 2018년엔 캐나다 약가제도 개선안에 한국약가 참조계획이 들어가 캐나다 제약업계가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고 했다. 캐나다에서는 현재 한국약가 참조를 시행 중이다.

안 교수는 결국 "제약사 입장에서는 한국약가를 참조하는 시장이 많아질수록 한국 내 출시를 늦출 수 밖에 없다"면서 "공식약가와 리베이트 후 실제 약가의 이중적 운영으로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위험분담제 확대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성평가 검토와 글로벌 스탠다드 'A4R'=안 교수는 경제성평가 검토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제약사가 제출한 경제성평가 자료 검토를 외부 전문가 그룹에 맡긴다면서 한국의 경우 처음 도입당시에는 관련 전문인력이 적어서 심사평가원이 검토업무를 맡았는데 앞으로는 이 부분을 개선하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심사평가원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고 힘든 업무라고도 했다.

안 교수는 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위원회는 검토보고서와 해당 약제가 갖는 여러 사회적 가치들을 함께 검토해 결정하는 데 'asessment'와 'appraisal'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 NICE는 GSK의 리렌자를 둘러싼 국가적 논쟁을 거친 뒤 절차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appraisal process'로 발전했고, 이게 'Accpuntability for Reasonableness(A4R)'을 수용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안 교수는 특히 "A4R은 보건분야 의사결정에 있어서 글로벌 스탠다드가 됐는데 한국은 아직 채택하지 않고 있다"면서, 브리티쉬 메디컬 저널의 인용해 "절차적 정당성이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동일한 C형 간염 약제 급여결정 평가결과 공개수준을 한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과 비교한 결과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약평위 평가결과를 7페이지로 짧게 공개하고 있는데 NICE는 기술평가 가이드라인 103페이지, 근거검토 그룹 리포트 112페이지를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호주나 캐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또 예비정보로 3개국은 담당자 정보,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사람들의 정보, 이해상충관계, 외부검토여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요약정보 제공여부 등을 대부분 공개하지만 한국은 없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의료기술평가를 위한 근거중심 의사결정에서 급여평가 결과 공개는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