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그의 말을 곧이 듣게 끔 하는 약사 친구가 한국일보에 난 칼럼 한편을 카카오톡에 링크해 보내줬다. '생각할 여지가 많다'는 주석도 곁들였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연예인에게?'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연예인들이 약효를 직접 설명하는 방송 광고 장면들의 누적이, 의약품 선택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약사 전문가의 역할을 훼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헬스케어 영역을 다루는 전문언론 입장에서 볼 때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SNS 인플루엔서라는 사람들이 건강식품 몇천 만원어치를 순식간에 팔아치우는데 비해, 약국에는 들으려 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가득찬 세상인지라 이 칼럼은 약사들 사이에 회자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유 교수는 칼럼에서 약사의 긍정적 역할을 이렇게 요약했다. "의사가 처방한 전문약품을 정확하게 조제해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도 약사의 역할이지만, 소비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다수의 일반 의약품을 축적한 지식과 노하우에 의해 우리에게 추천하는 것도 약사들의 전문분야임에 틀림없다. 연예인 모델이 전하는 정보에 무조건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의약품 가운데 과연 어떤 제품이 나의 상황과 맞는지, 혹시 우리가 미처 간과하는 사항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가르쳐줄 수 있는 전문가들에게 좀 더 의지해도 될 것 같다는 의미이다."

약사법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만약 방송광고에 연예인 대신 약사 등 전문가들이 나선다면 어떤 현상이 빚어질까? 긍정적이기만 할까? '의약품광고에 전문가 출연 금지 규정'이 왜 생길 수 밖에 없는지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최근 사례가 있다. 한 유명 약사 유튜버는 일동제약 아로나민골드를 다른 고함량 비타민제와 견줘 ▷벤포티아민이 푸르셜티아민보다 우수하다 ▷성분수가 적다 ▷하루 두알 복용이 불편하다 ▷성분함량이 낮다 ▷가격적 이점이 없다 등 5가지를 꼬집었는데, 미흡한 근거에 비해 과도하게 편파적인 주장의 연속이란 느낌을 줬다. 영상 조회수는 20만에 근접했고, 아로나민골드를 비판하는 댓글도 적잖게 달렸다. 전문가가 균형감각을 잃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준 케이스였다.     

일동제약은 약사 유튜버의 행위를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개인적 취향에 기반한 일방적 폄훼로 규정하고 약사 유튜버가  주장한 내용들을 조목조목 반박해 이 영상물을 유튜버 스스로 내리도록 했다. 일동에게나, 유튜버에게나 유쾌할 수 없었던 이벤트였겠지만, 긍정적 함의도 도출해 볼 수 있겠다. 그것은 바로, 소비자들이 의약품과 관련해 약사들이 인식하고 흔히 말하는 것과 딴판으로 '약사의 전문성'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며, 이의 활용법이다. 약사들은 이 믿음을 소비자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의약품을 복용하도록 적극 쓸 수는 없을까? 무엇이든 아는 체 하며 의약품 복용과 관련해 마음대로 선택하고, 멋대로 복용하다 말다하는 소비자들의 태도에 사명감을 갖고 이의를 제기해도 좋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 꽤 많은 '국가면허 약사들'이 블로그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의약품에 관한 전문성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려 애쓰고 있다. 의약품 판매와 조제를 넘어 '건강에 관해 약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각자 지닌 콘텐츠로 보여주고 있다. SNS란 소통의 공간에서 전문성으로 무장한 약사들의 이같은 중재 노력들은 의약품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약사들의 존재 이유 또한 명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좀더 확장해 기대하자면 유투브 등을 활용한 광고물들의 심의 요청이 늘어나는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의 고민까지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역할도 하게될지 모른다. '아로나민 약사 유튜버'가 역설적으로 보여준 메시지는 소비자들이 약사 전문가를 신뢰한다는 것이며,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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