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가기 좋아?'...릴리 육아맘·대디의 직장생활

[hit-life] 2019년 제약바이오人 = (1)아이 키우기

아침 8시. 빽빽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직장인들. 그들의 출근길 표정은 유쾌함,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큰 꿈을 품고 입사했다. 그런 열정은 어느새 오간데 없다. 회사의 부속품처럼 움직이고 있는 직장인들.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게 있긴할까. 제약사를 포함한 헬스케어기업은 매년 적어도 한 곳은 '일하기 좋은 회사'에 이름을 올린다. 임직원을 위한 복지제도도 화려하다고 한다. 가끔은 기자 일 그만두고 헬스케어 기업으로 이직을 해야 하나 싶다. 헬스케어 산업이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고도 하는데…

정말 그런지 듣고 싶었다. 헬스케어 산업 군의 일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이 기사를 통해 각 헬스케어 기업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했으면 좋겠다. 운이 좋아 헬스케어 기업 임원들에게 이 기사가 닿길 바란다. 좋은 복지제도는 널리 퍼지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훗날 헬스케어 업계 문화가 어느 분야 못지 않게 일하기 좋은 곳이라는 평판을 얻어, 여느 대기업보다 일하고 싶은 곳이 되길. 헬스케어 업계 직원 대다수는 회사 가기 좋은 날이 오길. <편집자주>

"'대디캅' 하러 가야 해서요. 미팅 날짜 좀 바꿔주세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남 직원이 회사 주요 임원들이 참석하는 중요 미팅 시간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릴리에 온지 얼마 안된 항암제사업부 마케팅팀 이윤지 과장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디캅' 중요하지.”라며. 미팅 날짜를 흔쾌히 미뤘다. '대디캅'은 '아버지+경찰'의 합성어다. 자녀들의 안전 귀가뿐만 아니라 학교 주변 방범 활동과 교통안전 지도까지 담당한다. 이런 '00대디'들은 릴리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내는 사례도 종종 있다.

글로벌 제약사는 여성 임직원 비율이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때문에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복지제도가 잘 짜여져 있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복지제도가 실제 잘 운영되고 임직원들은 만족하고 있을까?

한국릴리 본사에서 배민지 상무(윤리경영책임자, 육아휴직 6개월), 이윤지 항암제사업부 마케팅팀 과장(육아휴직 13개월), 이지희 의학정보부 과장(유아휴직 12개월)을 만나 워킹맘의 '릴리살이'에 대해 들어봤다. 

이지희 의학정보부 과장(왼쪽), 배민지 윤리경영책임자 상무, 이윤지 항아제사업부 마케팅팀 과장 

◆"선배들 보면서 주저없이 육아휴직 쓸 수 있었죠"

어느 회사든 출산•육아휴직 제도는 있다. 내용도 비슷한다. 국가가 권장하는 가이드라인이 있고, 회사는 이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회사가 이 제도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 의지에 따라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회사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릴리로 이직한 이윤지 항암제사업부 마케팅팀 과장은 1년 넘게 휴직을 쓰면서 단 한번도 경력단절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시쳇말로 '자기 책상이 빠질까봐' 만삭이 다 되도록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는 여느 직장인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 과장은 “(육아휴직 이후에 회사에 복귀해 잘 정착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봤다. 어느 회사든 제도는 갖출 수 있겠지만 사내 문화로 육아휴직을 원활하게 쓸 수 있도록 정착시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릴리에 근무한 지 10년이 된 배민지 윤리경영책임자 상무는 육아휴직 이후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한 케이스다. 배 상무 역시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이전에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선배와 동료들이 많았다. 만약 릴리에서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여성 임원이 모두 결혼도 안했다면 오히려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미 육아기를 겪고 있는 엄마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1년여의 공백에 대한 불안감이 아예 없진 않다. 이지희 의학정보부 과장은 업무에 대한 감을 잃을까 불안했다. 이 과장은 “밖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접하거나, 회사사람에게 여러 소식을 접할 때 (복귀 후 업무에 적응하지 못 할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했다.

배 상무 역시 육아휴직 후 복귀에 대해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복귀이후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 6개월 가까이 신생아와 함께 '유아어(?)'를 구사하다가 과연 성인들의 언어를 쓸 수 있을까 두려웠다고 한다. 물론 기우였지만.

그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하기로 한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긴 했다. 6개월 정도 말도 못 하는 신생아와 '유아어'를 쓰다가 성인들과 소통하는 고급 어휘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었다. 예전처럼 '전문적인 발표'를 할 수 있을지. 실제로 예전에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보면서, 이게 내가 썼던게 맞나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행히 일했던 게 몸에 배었던지 생각보다 업무에 빨리 융화됐다”고 했다.

◆회사가 어쩔 수 없는… 베이비시터 구하기

첫째 아이가 4살인 배 상무는 이제 '베이비시터 구하기'의 달인이 됐다. 믿고 맡길 사람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정된 재원으로 최적의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게 미션이다. 그는 베이비시터 면접에 무려 두 달 가량의 시간을 썼다.

그는 “월급에서 베이비시터 구하는 데 쓸 수 있는 금액은 한정돼 있다. 결국 균형점을 맞춰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첫째 아이의 시행착오를 만회하고자 둘째 아이 베이비시터를 구할 때는 면접만 두 달동안 봤다. 대면면접 20명, 전화면접은 40-50명 정도? 이제 목소리만 들어도 이 분이 어떤 분이시고, 외모도 어떨 지 그려질 정도"라고 했다.

이윤지 과장에게 7월말 어린이집 방학은 큰 고민이다. 부서 특성상 이 과장은 이 때가 가장 바뻐서 걱정은 더 커진다. 그는 “7월 마지막 주는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방학이기 때문에 임시로 시터를 구하기도 힘들다. 물론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업무에 따라 회사에 꼭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는 지방에 아이를 맡기고 재택근무를 신청해 기차로 오고 가며 업무를 봤다. 회사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이 일괄적으로 쉬는 경우 정부가 제도적 뒷받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배 상무는 7월 마지막 주를 '패밀리 위크'로 정해 아이들을 회사로 데려오는 방안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글로벌 제약사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일하기 좋은 문화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본사나 해외법인 소속 지원들과 소통해야 하는 부분은 어려움이다. 바로 ‘시차’ 때문이다. 낮과 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재택근무제가 활성화된 것도 어쩌면 이런 상황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글로벌 미팅을 하면서 아이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는 그들. 이지윤 과장은 “시차 문제로 늦은 밤 방문을 닫고 일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문을 두들기며 엄마를 애타게 찾는 울음소리가 들려서 마음이 찢어졌었다”며,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릴리라서 가능했던 것들...재택근무·전자파 앞치마

재택근무제는 배 상무에게 육아를 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 6개월 만에 육아휴직을 마쳤을 때, 아이는 지방에 계신 부모님 손에 다시 맡겨졌다. 주말마다 보는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일도 중요했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도 포기하고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조심스럽게 제안한 재택근무제가 그에게 큰 힘이 돼 줬다고 한다.

그는 “아이의 정서적 문제와 (육아에 대한) 가치 등으로 재택근무를 윗선에 제안했다. 일주일에 1-2번으로 라이브 미팅을 몰아서 하고, 3-4일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지 보고했다. 업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조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3개월 정도 재택근무와 오피스 근무를 절충해 업무를 진행했다”고 했다.

때론 큰 이벤트보다 소소하게 배려에 더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이지희 과장 역시 회사의 관심과 세심한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임산부들에게 나눠주는 전자파차단 앞치마를 받고, 임신을 진심 축하해 주는 분위기에 육아를 하면서 일을 병행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가사와 육아를 함께 든든한 동반자 남편

한 선배에게 우스갯소리로 들은 말이 있다. 결혼할 마음이 있는 남자에게 결혼 후 가사와 육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이때 “도와준다”라고 답하는 남자와는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고, “같이 하는 거지”라고 답하는 남자와는 결혼을 함께 그려봐도 좋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릴리의 직원들은 운이 좋게도 남편들이 가사와 육아의 든든한 동반자였다고 한다.

이윤지 과장은 오히려 남편이 가사나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이 과장은 “요즘은 같은 팀원과 남편의 육아 우울증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과도하게 쇼핑을 하거나 말수가 적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배민지 상무는 남편과 부모로서의 삶 못지 않게 개인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과감하게 가사는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육아와 가사를 모두 완벽히 해 나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가사는 최대한 생각하지 않되, 꼭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사회생활, 육아, 가사로 지친 몸도 달래야죠"

배 상무의 말 대로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인 그들. 사회생활, 육아, 가사로 지친 그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궁금했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윤지 과장은 한달에 한번 반차를 내고, 남편과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옆에서 듣던 직원들은 로맨틱한 남편이라며 부럽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점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줄었다. 한명이 집안일을 하면, 나머지 한명은 아이를 보면서 모두 지쳐 잠드는 일상이 반복됐다”고 했다. 이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남편이 한달에 한번이라도 반차를 내서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도 보고, 얼마 전에는 VR 카페에 가서 좀비게임을 했다”고 말했다.

이지희 과장은 일주일에 한번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함께 가는 편의점이 소소한 행복이라고 한다. 배 상무는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온전히 집중하는 필라테스에 푹 빠졌다. 그는 “다이어트 목적보다 온전히 내 몸과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재충전할 기회를 갖는다. 점심 선약이 없는 날에는 회사 근처 필라테스 학원으로 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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