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여론에 밀린 ‘신속’의 함정을 경계해야

코오롱생명과학의 주장을 믿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1호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골관절염)의 2액 주성분이 허가사항과 달리 신장세포(293유래)로 바뀌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 코오롱측의 대응이 이미 여러 번 꼬였기 때문이다. 행정당국은 물론 업계에서 조차 인보사케이는 심증적으로는 이미 죽었다. 단정하기 조심스러워 말을 아낄 뿐이다.

연휴를 앞둔 3일 인보사의 원 개발업체인 코오롱티슈진이 반전 공시를 내보냈다. 작년 3월 코오롱생명과학측에 2액이 신장세포라는 사실을 통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코오롱 측은 상부까지 보고가 되지 않아서 몰랐다는 논조로 해명했지만 궁색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보사케이는 식약처의 조사와 결과발표 일정에 맞춰 점점 사법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식약처는 5월 14일까지 코오롱 측의 해명자료를 제출받고 20일 이후에는 미국 코오롱티슈진과 우시(세포주 제조소), 피셔(세포주은행 보관소) 등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최종 결과는 6월초 발표할 계획이다. 결론이 서지 않는다면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도 명확히 한 상태이다.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업계는 착잡하다. 2호, 3호 유전자치료제가 나온다하더라도 의료진이나 환자들의 신뢰를 장담할 수 없다. 세포·유전자치료제 분야에 대한 정부의 R&D 지원이 끊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또 미국 등 해외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 승인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내놓고 있다.

FDA가 코오롱티슈진에 보낸 공문도 같은 날 공개됐다. 핵심은 임상재개 승인까지 인보사의 임상을 중지(Clinical hold)하라는 것과 임상중지 해제를 위해서는 ▲구성성분 변화 경위 ▲향후 조치사항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2액이 신장세포였다는 점이 미국에서의 3상 임상과정에서 스크리닝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FDA의 조치는 보다 엄중하다.

인보사는 1호 유전자치료제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그 존폐를 과장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작 걱정해야 할 대상은 인보사의 터전인 유전자치료 개발업계의 현재와 미래이다. 우리 업계가 글로벌 기업과 견줘 앞서 나가거나 적어도 동일선상에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4월의 식약처. 바이오의약품안전국은 인보사 사태로 깊은 시름에 잡겨 있다.
5월의 식약처. 바이오의약품안전국은 인보사 사태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코오롱 측의 스텝이 꼬일수록 우리 식약처의 조사 태도 역시 점점 엄중해지는 듯 하다. 책임론의 일단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인보사를 식약처가 어떻게 행정조치하는지 각계가 주목하기 때문이다. 여론이 폭풍처럼 몰아치면 식약행정은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 허가취소라는 결론에 성급하게 다가서도록 여론은 부채질한다. 현재의 정황만 놓고 보면 인보사는 허가취소하는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식약처는 최종 판단에 앞서 한 번쯤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인보사를 편들기 위한 숨이 아니라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과 허가기준을 제시해온 우리 허가당국 결정의 품격을 위해서이다. FDA는 임상과정에서 문제를 걸렀는데, 식약처는 왜 못했느냐는 문제제기가 이미 있다. 물론 이 지적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FDA가 임상중단을 결정하며 코오롱 측에 임상 재개를 소명할 기회를 줬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시간과 여론에 쫓긴 우리의 결정과 비교적 느긋한 FDA의 판단이 만에하나 정반대일 경우의 수는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식약처가 FDA의 방향성을 예측해 따라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매서운 여론을 의식해 최대한 신속하게, 최대한 과단성 있게, 속시원한 결정을 내리는 일만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세포·유전자치료제 허가 결정이 시류를 따랐을 수는 있지만, 그 문제점을 되짚어야 하는 지금은 온전히 과학의 영역에서 버텨내야만 식약행정도 살고, 세포·유전자치료 산업의 미래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보사는 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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