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국회, 시민단체 할 것없이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를 대하고 다루는 우리들의 태도는 늘 현상 중심이며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요란을 떨다가 거품처럼 소멸된다. 팩트와 리얼타임으로 직관적 원인 분석들이 혼재돼 온 나라를 뒤 흔들다 잊혀지고, 반복된다.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은 조현병을, 유전자 세포치료제 인보사 문제는 '안일한 식약처 태도'를 희생양 삼고나면 끝이다. 팩트와 분석간 간극이 크다보니 본질에 다가서기는커녕 엉뚱한 결론이 도출되기도 한다. 인보사 문제가 대한민국 제약바이오계 발전의 밑거름이 되면 좋으련만 첨단바이오법의 뒷 덜미를 낚아채는 갈고리가 될뿐이다. 삼단 논법에도 이르지 못한 자극(S)과 반응(R)의 사회다.

인보사 문제와 관련해 식약처의 안일함을 지적하려면 그에 앞서 짚어볼 점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1) 인보사 허가 당시 규정에 적합했는지 2) 규정 미비나 개선할 점은 없는지 3) 부족한 식약처 자원의 문제라면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4) 무지로 인한 오해의 불식차원에서 인보사 같은 허가신청이 들어오면 식약처의 심의 절차와 역할은 무엇인지 와 같은 '담담한 제도적 접근'은 필수적이다. 망원경처럼 멀리보고 현미경처럼 식약처 행정의 구석구석을 들여다 봐야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칠' 수 있다. '식약처는 대체 뭐 했어?라고 질책하면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답변하는 오래되고 낡은 문제 해결 방식에서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다.    

서비스가 불만인 고객이 다짜고짜 '책임자 나와'라고 외치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어떻게해야 할까. 작금의 인보사 문제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식약처 허가 심사인력을 현실화하자는 이야기들이 제약바이오 산업계 현장에서 부쩍 고개를 들고 있다. 식약처의 고충을 이해하는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급증하는 진단과 치료제의 안전하고 빠른 개발을 위해 충분한 심의 평가인력 풀이 절실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치료제들이 겨냥하는 시장이 내수를 넘어 글로벌을 지향하는 시점이라서 신기술을 들여다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심사 평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 졌다. 따라서 제약바이오 관계자들은 수익자 부담의 유저피(User Fee)를 올려도 좋다는 목소리마저 내고 있다.

얼마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서경원 의약품심사부장은 전문언론들과 인터뷰를 통해 식약처의 심사인력에 대한 현실과 대책을 이야기 했는데 짠한 이야기들 뿐이다. 서 부장은 "의약품 심사인력이 절대 부족한게 맞습니다. 업무가 턱밑까지 찼어요. 선택과 집중으로 문제를 풀 생각입니다. 국내에서 최초 개발된 제품을 제대로 심사해서 옥동자로 만드는 일에 인력을 우선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부장에 따르면 대략 심사관 20명이 1년에 임상계획서 1400건을 처리한다는 것인데, 거칠게 보아 1주일에 1건 이상 처리해야 가능한 물량인 셈이다. 빠듯한 살림을 사는 주부의 고군분투처럼 선택과 집중을 서 부장이 강조했지만, 과연 이렇게 해서 될일인가.

제약바이오 산업계의 이야기처럼 심사료 인상을 통한 심사인력의 현실화는 제약바이오산업이 미래성장산업인 나라에서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가 됐다. 훌륭한 심판이 훌륭한 경기를 이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훌륭한 심판을 고용할 수 있는 자원은 매우 빈약하다. 우리나라 신약 심사료는 600여만원으로 2억5000만원의 일본이나 25억원의 미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일본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고 연간 신약허가 건수를 50건으로 계상하면, 심사료는 125억원에 이르고 심사 인력을 50명 이상 늘릴 수 있게 된다. 심사료 인상은 개별 업체의 형편에 따라 부담이 될 수 도 있다. 그렇지만 '심리적 안전'에 관해 FDA 수준의 기대치를 갖고 있는 사회라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혁신신약을 시도하는 사회라면, 식약처의 심사인력 현실화는 더는 외면못할 과제로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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