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온실' 난방 중단 예고장과 제약산업

2000년 8월 의약분업 시행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형태의 제약회사를 차별없이 품어 햇볕과 온도와 습도를 공급해 주던 '건강보험 온실에 난방이 끊긴다'는 예고장이 정부로부터 날아왔다. 온실 관리자인 정부는 영양가 없는 화분들은 온실 바깥으로 내어 놓고, 영양가 높은 화분 중심으로 온실 경영의 내실을 기하겠다는 내용의 대대적인 정책 변화를 선언했다. 이름하여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이다. 이 정책의 초점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맞춰져 있지만, 그 여파는 제약산업에게도 직접적으로 미치게 되어있다. 종전 여러차례 모습을 드러낸 약가 인하와 차원이 다른 쓰나미급이다.

정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은 정부가 문재인케어와 연계해 향후 5년간 41조원 규모의 재정을 건드리는 개혁정책이다. 이를테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한 의료비 경감 노력 지속 ▷병원 밖 지역사회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의료제공체계 구축 ▷의료기관 기능 정립을 뒷받침하는 수가체계 운영 ▷적정수가를 위한 합리적인 방식의 보상방안 마련 ▷급속한 인구고령화에 대비한 지속가능성 확보 등이 골자다. 정부의 개혁정책이 그 아랫단에서 활동하는 제약산업에게 혁신의 압박으로 내려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가운데 한 두줄로 무심하게 언급된 ▷등재의약품에 대한 종합적인 재평가제도 ▷약제군별 해외 약가수준 비교 정기 약가재평가 ▷예측 가능한 적정 약제비 관리방안 등은 제약계의 미래 혹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들이다. 압축해 말하자면, 제약산업의 호시절은 가고, 치열한 적자생존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이야기다. 이 계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계획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나타나야 한다고 정부가 기대하는 현상은 '혁신신약 VS '외국처럼 아주 낮은 제네릭 가격' 같은 시장구도일지 모른다. 수 많은 제네릭이 나왔는데도 터줏대감처럼 들어앉아 높은 가격을 향유하는 '특허만료 오리지널의 건보식탐'은 풀어야할 오래된 숙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건보종합계획이 아니더라도 제약산업과 개별 제약회사들은 갈림길에 서있다. 신작로인줄 알고 의약분업이후 20년 앞다퉈 달려온 길이 확연히 좁아지고 있다. 정부의 反불법리베이트 정책에 대응해 CSO까지 출현시켰지만 이마저도 막다른 골목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든, 도매업소든, CSO든 누가 리베이트를 해도 제약회사가 책임지는 상황이다. 시간이 좀 주어졌다지만, 제네릭 양산의 창구였던 공동생동이 '1+3'을 거쳐 완전 폐지되는 것은 예정돼 있다. 곧 적지 않은 제약회사들은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설것이다. '이 말은 기득권이라 여겼던 두터운 옷을 벗어던지고 도전과 모험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도전과 모험은 호락하지 않다. 그렇지만 제네릭 비즈니스 외 또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더 크다. 그렇다면 연구·개발(R&D)은 외면할 수 없는 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바이오텍에게서 기술을 도입해 개발단계를 높인 후 이익을 공유하는 회사, 외국 바이오텍을 인수하는 회사들이 있다. 일찌기 수출로 활로를 모색해 온 회사, 헬스케어&뷰티 시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회사도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인공지능(AI)신약개발 지원센터를 오픈하며 R&D기반을 조성하고, CIS국가 등과 수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구 오송 첨복단지, 보건산업진흥원 모두 손잡을 수 있는 동반자들이다.

기회를 포착하려면 대주주의 인식 전환과 결단이 반드시 필요한데, 솔직히 이것이 가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시시콜콜한 의사결정까지 대주주가 하는 마당에 사업 방향 재정립 같은 문제는 '대주주의 변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제약회사 임원이 전해준 일화는 암담하기 짝이없다. "대주주이자 CEO인 대표가 추진하는 사업이 제약과 영 동떨어지고 아닌 것 같아서 재고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시끄러워. 망해도 내가 망해'라고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려오는 지시는 있어도, 올라가는 말이 없는 소통 단절 제약회사가 꽤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주주가 기회의 현장에 나타나야 하겠지만, 대주주는 책임있는 임원급 인사조차 현장에 내보내지 않는다. 이들은 바이오코리아 같은 행사에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미래와 관련한 컨퍼런스, 세미나 같은 현장에는 이것, 저것 다양하게 시도하는 회사들의 인사들이 늘 자리를 채운다. 네비게이션을 지닌 회사든, 없는 회사든, 갈림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하게 될것이다. 무방비한 어느 곳에는 절벽처럼, 착실하게 준비한 어느 곳에는 피톤치드 향 가득한 숲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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