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의 "이슈 짚어보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현재 창업 1세대와 2·3세대가 묘하게 공존하며 서구형과 한국형 기업문화 사이의 어정쩡한 과도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라는 개념만 놓고 보면 여전히 한국형에 무게의 추가 실립니다. 그만큼 강한 오너십, 다른 관점에선 소유의 경영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물론 장단이 모두 있지만 적어도 요즘 유행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관점에선 단점이 더 크게 보입니다. 기업규모를 떠나 강한 오너십은 필연적으로 협력의 길 위에 놓인 장애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매출 규모로 한국 1위인 유한양행과 2위인 GC녹십자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관점에서 손을 잡았다고 오늘(19일) 발표했습니다. 고셔병치료제라는 희귀의약품 개발을 첫 과제로 한 양해각서(MOU) 단계이지만 새로운 길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똘똘하지만 나보다 약한 상대를 고르는 통상의 관점을 벗어 던지고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보여준 과감한 협력(M&A까지 포함하는)의 서곡을 이제는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처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특히나 대마(大馬)들 간의 전폭적인 협력, 부족한 사업부문을 상호 보강하는 윈윈 짝짓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가 다 먹거나 남이 못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특유의 경영문화가 한국형 오너십이 가진 장점을 상당부분 상쇄시킵니다.

국내 기업들이 본격적인 R&D에 막 눈뜨기 시작한 2000년 중반 무렵 진행된 몇 번의 설문을 보면 가장 이상적인 기업간 협력모델로 한미약품-동아제약, 동아제약/일동제약-녹십자가 연구개발, 영업·마케팅, 제품 포트폴리오 등을 서로 주고 받으면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응답이 나왔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미약품, 동아제약, 일동제약, 녹십자는 한때 지분투자 문제로 얽히고 설키며 갈등을 겪었을 뿐, 협력의 협자라도 꺼내 대마들간의 빅딜을 성사시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습니다.

해외 영업망, 온라인 비즈니스 등 특정기업이 공들여 개척한 자산도 그 기업이 한 동네 같이 놀던 한국기업이면 손잡지 않습니다. 손에 꼽을 수준이지만 중국, 베트남 등 시장에 먼저 뛰어들어 해당 지역에 영업망을 갖춘 업체들이 한국 제약회사의 제품을 유통한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유통하면 어떠냐”는 제안은 진지한 검토단계에 상정되지도 못합니다.

대웅제약, 한미약품, 일동제약, 보령제약이 뛰어든 온라인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안 팔면 안팔았지 ○○ 좋은 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이 실제 현실입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가지긴 해야하는데, 내 플랫폼이 아니면 절대 올라타지 않으려는 심리적 거부감이 제대로 된 제휴를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각자의 플랫폼은 각자 가진 그릇의 크기 이상으로 성장하긴 어렵습니다.

R&D든, 영업·마케팅이든, 온라인 비즈니스든 제휴와 제휴를 통해 각자 가진 자산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을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해석한다면 유한양행과 GC녹십자라는 두 대마가 보여준 이번 출발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대마와 대마가 서로의 살과 뼈를 내어주며 실리를 취하는 본격적인 협력의 시대를 열 단초이기 때문입니다.

유한양행은 지난 6월 4일에도 브릿지바이오라는 중개연구 벤처기업에 자신들의 면역항암제를 내어주고 연구개발의 속도를 취하는, 우리가 보기엔 역(逆)방향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주인 없는” 유한양행이 공동주연의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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