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정 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

"심평의학? 오랜기간 쌓인 의료계의 불신의 결과다. 양측의 '신뢰계좌'가 바닥 나 있다. 의료계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채워 나가야 한다.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보건정책분야 전문가인 허윤정(49) 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은 의료계가 갖는 심사평가원에 대한 불신의 실체를 이렇게 진단하고 해법을 내놨다.

지난달 2일 취임한 뒤,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면서 심사평가원 업무를 파악해가고 있지만, 이런 진단은 '내부자' 시선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는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 대학 등 다방면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체득한 통찰의 산물이다. 실제 그는 현 민주당의 계보 정당 정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정책과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아주대로 자리를 옮겨 관련 분야 연구에 집중하다가 현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정책설계에 참여했고, 최근까지 민주당 경기도당 대변인 역을 맡기도 했다. 지난 총선 때는 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이기도 했다. 

갑작스런 손님으로 소장실을 노크한 히트뉴스와 허 소장의 만남은 길 수 없었다. 그러나 허 소장은 15분이라는 짧은 인터뷰 중에도 기자가 듣고 싶어하는 많은 말들을 집약적으로 쏟아냈다.

허 소장은 관심있는 정책과제 중 하나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첫 손에 꼽았다.

그는 "인구절벽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여기서 세대간 갈등도 큰 문제로 표출될 수 있다"면서, 형평성 문제를 꺼냈다.

그는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분담'이나 '쉐어링' 측면에서 놓고 봐야 하는데, 세대·계층 간 형평성이 중요한 코드로 부상할 수 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이 건강보험의 모든 위기를 축약하는 핵심 워딩이다. 미래 건강보험제도에 걸림돌이 안되도록 이 두 가지 화두에 대해 시급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히트뉴스와 허 소장 간 일문일답

-연구소장에 취임한 지 어느새 50일이 다 됐다. 심사평가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파악했나

=심사평가연구소는 심사평가원의 싱크탱크이면서 동시에 사업부서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심사평가원 업무전반을 '백업'하고, 같이 '인큐베이팅'하는 역할도 한다. 짧게는 몇 주짜리 일부터 길게는 몇 년짜리 페이퍼도 생산한다. 개입하지 않는 영역이 없다고 보면 된다. 흔히 싱크탱크는 연구와 리서치가 주요한 업무로 보는데, 심사평가연구소는 현장에 기반한 연구를 한다. 역동적이다. 대학처럼 SCI 등재나 논문을 목표로 하는 그룹이 아니다. 정책이 부작용 없이 발전하도록 지원하고, 보건의료/건강보험 정책에서 현장과 소통하고 의료계를 만나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도 우리 일이다. 환자중심의 심사평가, 질 관리, 제도운영 등이 가능하도록 적용방법을 찾는 데서도 존립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조직 전체와 호흡한다.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조직은 아니다.

-건보공단과 관계설정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들었는데

=국회 등 외부에서 제기하는 우려가 건보공단과 심사평가원 간 중복연구가 적지 않아서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 배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최근 건보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만나서 양 기관이 중복연구를 하지 않도록 사전에 가르자고 제안했다. 이미 1차 실무협의를 마쳤고, 다음주 중 업무협의체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필요한 자료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양 기관이 축적한 자료들를 종횡으로 엮어서 입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공동연구도 하자고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인적교류도 필요해 보인다. 업무협의체에서 이런 것들을 논의하려고 한다. 공동세미나 주제도 논의해서 정할 계획이다. 각자의 강점을 살려서 결국 국민 눈높이에 맞는 질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1+1'은 '2'만이 아니다. '100'이 될 수도 있고 '200'이 될 수도 있다. 양 기관 간 중복이 있으면 제거하고, 각각의 전문적인 역할이 있다면 살려서 시너지를 한층 강화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자타 공인 보건정책 전문가다. 특별히 관심있는 정책 아젠다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여러가지가 있지만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본다. 인구절벽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여기서 세대간 갈등도 큰 문제로 표출될 수 있다. 바로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분담이나 쉐어링 측면에서 놓고 봐야 하는데, 세대, 계층 간 형평성이 중요한 코드로 부상할 수 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이 건강보험의 모든 위기를 축약하는 핵심 워딩이다. 여기다 외국인, 다문화가정 등의 접근성이나 제한적인 서비스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미래 건강보험제도에 걸림돌이 안되도록 이 두 가지 화두에 대해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의료계와 심사평가원 간 관계가 좋지만은 않은데

=오랜기간 쌓인 불신의 결과라고 본다. 잘 합의하면 좋겠지만 '신뢰계좌'의 잔고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좋아지길 바라는 건 난센스다. 그동안에도 심사평가원 내 의사들로 구성된 심사평가위원 인력풀을 통해 소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케어도 그렇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그렇고 큰 정책적 변화가 있을 때 의료계를 끌고가는 상대가 아니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해 무너진 '신뢰계좌'를 쌓아 나갈 필요가 있다. 이 때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도 중요하다.

의사와 환자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양자 간 소통이 없으면 제도를 어떻게 설계해도 재정누수는 생길 수 밖에 없다.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구축돼야 비용효과적인 체계도 구축 가능하다. 두 당사자 사이에 심사평가원이 접점이 될 수 있다. 의료계의 권위를 살리면서 동시에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혜안을 정책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심사평가원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이 극단화된 표현이 '심평의학'이다. 이것부터 시급히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앞서 얘기했지만 오랜 불신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심평의학' 식의 노골적인 불만표출은 심사평가원과 의료가 맞닿아 있어서 생긴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신뢰계좌'를 같이 채워나가면서 같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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