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 미래, 판촉 기능 복원에 달려

'유통'과 '마케팅'은 본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유통과 마케팅을 같은 개념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유통을 마케팅의 한 분야인 하위 개념으로 본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해서 그럴까?

유통은 아득한 옛날 우리 선조들의 물물교환 시대에 이미 태어났지만, 마케팅은 최근 19세기 후반쯤 산업혁명의 큰 여파로 필요성에 의해 유통으로부터 자연 분신된 후, 20세기 후반부터 경영 수단의 총아(아이돌 idol)가 됐다.

이제 유통은 마케팅의 4P(Production, Price, Place, Promotion)중, 'Place' 한자리만 그저 지키고 있을 뿐이다.

왜 그리 됐을까? 유통은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켜주는 흐름(flow)이며 사회적 활동이다. 즉 상품(제품) 또는 서비스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흘러가는 사회적 경제현상인 것이다. 유통은 이러한 자신의 정체성을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함없이 고수해 오고 있지만, 마케팅은 달랐기 때문이다.

1948년과 1960년 경영학의 발상지인 미국 마케팅학회(AMA: 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가 마케팅의 정의를 내렸다.

'마케팅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 또는 사용자에게로 제품 및 서비스가 흐르도록 관리하는 제반 기업 활동의 수행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통과 마케팅은 이름만 다를 뿐, 거의 같은 개념이었다.

1985년 AMA에 의해 마케팅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내려졌다. '마케팅은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를 충족시켜 주는 교환을 창조하기 위해 아이디어, 제품, 서비스의 창안, 가격 결정, 촉진 및 유통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다.’

마케팅의 정의가 이렇게 바뀌었다는 의미는, 이 정의처럼 그동안 마케팅이 기능적으로 확대 발전됐기 때문에 그 정의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정의는 현상의 성질을 포괄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후 2004년에는 더욱 진전된 정의가 제시됐다. '마케팅은 조직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의사소통을 전달하며, 고객 관계를 관리하는 조직 기능이자 프로세스의 집합이다.'

이렇듯, 마케팅의 기능적 변신은 놀랍도록 눈부시다. 마케팅은 유통에서 출발해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주체·이념·기능 등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해석을 하면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발전적으로 변신해 온 반면, 유통은 그러지 못했다. 제자리 지키기에 급급했지만 그것마저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유통과 마케팅의 판도가 완전히 갈라진 것이다. 마케팅의 발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와 같은, 능동적인 기능변화 여부가 유통과 마케팅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관계를 통해, 우리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의 미래를 보면, 어떤 모습일까?

도매유통에는 양대 기능이 있다. 상적유통기능(상류기능)과 물적유통기능(물류기능)이 그것이다. 이들 기능 간의 우선순위는 물론 상류기능이다. 사고파는 상행위가 먼저 발생돼야 그 대상물인 상품 등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상류기능에는 판촉기능이 포함돼 있었다. 이 판촉기능은 도매유통업계에 생명줄 같은 존재다. 상류기능의 꽃인 것이다. 일본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의 유통마진율 대사건의 해결 사례를 분석해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 기능은 현 국내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에서 잊혀진지 오래된 기능이다.

유통과 마케팅의 영역 경쟁에서 마케팅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원인은 끊임없는 새로운 기능의 개발·접목이었는데, 우리 도매유통업계는 있던 판촉기능마저 퇴보시켜 버렸으니 미래에 어떻게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판촉기능의 퇴출은 곧 상류기능의 퇴보다. 상류기능의 퇴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의약품도매업이 물류기능 일변도로 변화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는 지금 뒤돌아보지도 않고 이 길로 열심히 가고 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될까? 의약품 보관 업무는 창고업이 되고 운송과 배송 업무는 운수업이 된다. 의약품 도매유통업이라는 업종은 명목상 상당기간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겠지만, 실질적인 정체성은 결국 불행하게도 의약품 운수·창고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 속도는 의약품 판촉기능 전문업종인 CSO의 정착·발전 속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매유통업계는 자신의 미래가 판촉기능 복원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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