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등재된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항혈전제 '브릴린타(티카그렐러)'는 사망률을 대폭 개선한 데이터를 근거로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여유있게 통과했다. 경제성평가 결과가 좋았던 영향이다. 그런데 약가협상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A7조정최저가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건보공단 측은 협상 제시가를 약평위 통과가격보다 훨씬 낮게 내놨다. 당연히 회사 측이 수용하기 곤란한 수준이었다. 결국 약가협상은 결렬됐고, 이 신약은 다시 약평위에 되돌려졌다.

이즈음 논쟁의 불씨가 피어 올랐다. 약가협상 과정에서 약평위가 인정한 수준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가격을 시쳇말로 '후려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란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다국적제약사들은 이런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격론 끝에 건보공단 약가협상지침에 변화가 왔다. 건보공단이 약가협상에 참고하는 가격 들 중 맨 마지막 7호에 있었던 약평위 경제성 평가금액이 1호로 올라온 것이다. 건보공단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제약 측은 약평위 통과가격이 1호가 된 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협상참고가격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브릴린타는 2차 협상에서 무난히 협상을 타결지었다.

2015년 11월 등재된 같은 회사의 갑상선수질암치료 신약 카프렐사(반데타닙)는 경제성평가 면제 특례를 적용받은 첫 사례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처음 등재절차를 밟을 때만해도 경평면제를 받는 건 녹록치 않았다. 당시 경평면제 대상이 되려면 항암제(싱글암), 단일 임상허가 약제, 3상조건 없는 2상 허가 약제, 대상환자가 소수여서 근거생산이 어려운 희귀질환치료제 등의 요건을 만족해야 했다.

카프렐사가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위험분담제 조건도 충족을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 요구도가 큰 약제였던 만큼 고민은 필요했다. 결국 경평면제 요건에 항암제(대상환자가 소수여서 근거생산이 어려운 희귀질환치료제 또는 '항암제')가 추가돼 약평위를 넘어설 수 있었다. 경평면제 1호 약제였던 만큼 이후 절차도 사실상 제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과거 약가재평가 때 사라졌던 '조정최저가' 기준은 이 때 호출돼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제약계 관계자들은 "당시 약가제도의 한계로 인해 고충을 겪었던 애잔한 스토리"라고 평가한다. 이런 행간에 숨겨진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 바로 변영식(50) 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상무다.

변 전 상무는 지난 5월, 24년간 입었던 '제약옷'을 벗고 국내 4대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광장(Lee&Ko)의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약계 출신이 로펌으로 이직한 사례는 이달용 전 중외제약 이사(LK파트너스)가 있었지만, 제약계는 변 전 상무의 자리바꿈을 첫 사례로 평가한다. 역할모델이 다르기 때문인데, 변 전 상무가 브릴린타나 카프렐사와 같은 많은 신약 등재 경험을 기반으로 제약맨들이 진출할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 수석전문위원의 이런 내공은 하루아침에 다져진 건 아니었다. 1994년 한국얀센에 입사해 2009년까지 14년간 줄곧 약가 등 대관업무를 담당하다가 2009년 한국아스트라제네카로 이직해 9년간 같은 업무를 봤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약가담당 이사와 대외협력담당 상무로 지낼 때 회사에서 도전적인 신약을 많이 출시한 게 변 수석전문위원의 역량을 담금질하는 자양분이 됐다. 이직 직전 말기 폐암치료제 타그리소정까지 하나하나 쉬운 신약이 없었다.

변 수석전문위원은 이런 경험으로 최근 2년 가까이 글로벌의약산업협회 보험/약가위원회 공동의장을 지내면서 제약계 대표선수로 약가제도 전반에 대한 정책개발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역량있는 다국적제약사 약가담당 주니어그룹의 신망도 많이 받고 있다. 한 때는 낚시 전도사였다가, 그 이후에는 다국적 제약 약가담당자들 사이에 캠핑 붐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풍류를 즐길 줄 알고, 기독교에 심취한 기독인이기도 하다. 중앙대 법대출신인데 법률전문가가 아닌 보험의약품제도 전문가로 로펌에 들어간 것도 독특하다. 물론 현안이 주어지면 자료를 시스템화해서 끈질기게 독파하는 업무스타일은 한 때 법률가를 꿈꿨던 '20대의 젊은 변 수석전문위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변 수석전문위원의 무기는 숙련화된 경험이든, 노하우든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는 '디테일'이 숨어있다. 가령 제약사 관계자들은 기자와 술자리에서 "로펌이나 외부 법률전문가에 의뢰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업체가 자료와 정보를 다 제공해줘야 한다. 법률검토나 솔루션을 제공해준다고는 하는데 사실상 반 이상의 일은 우리가 한다"는 말을 자주하곤 한다.

로펌이 변 전 상무에 주목한 건 바로 이런 불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변 수석전문위원이 잡고 있는 포인트도 바로 이 지점이다. 아직은 적당한 용어로 명명하지 않았지만 변 전 상무가 광장에서 그리고 있는 '빅픽쳐'는 토탈솔루션이다. '급여등재 신청부터 약가협상, 이후 사후관리까지',  여기다 가능하면 홍보까지 통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조직과 내외부 인적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변 수석전문위원은 "새로운 영역에 둥지를 트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약출신도 얼마든지 로펌에 진출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고민 끝에 선택할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직접 외부 법률의뢰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어떤 걸 원하는 지 니드를 잘 알고 있다. 계약 관계가 아닌 같이 호흡하고, 같이 해법을 찾는 실질적인 파트너로서 새로운 토탈솔루션 모범을 만들고 싶은 게 목표"라고 했다.

국내 굴지 대형로펌에는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 고위직 공무원과 산하기관 출신 전직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런 '거인숲'에서 24년 제약맨, 변 수석전문위원이 어떤 역사를 써나갈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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