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물 줄기 찾아 떠나는 코끼리의 희망

2019년 봄,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동네'에는 두 종족이 공존하고 있다. '말라가는 우물가에서 자신이 챙길 수 있는 한 제일 큰 컵을 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나 만의 달콤한 생명수를 길어 올리겠다며 괭이를 든 채 점찍어 놓은 장소에서 우물을 파'는 두 부류다. '감히 누가, 내 컵을 작은 컵으로 바꾸라고 하냐'며 핏대를 세우는 종족 한편에선 '내가 먼저 괭이질을 하겠다'며 경쟁하는 종족이 있다. 두 장면에서,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안쓰럽거나 희망적'인 서로 다른 태도를 본다.

바이오텍들은 우물 파기에 한창이다. 얼마나 더 파야 물 줄기를 잡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믿음만큼은 견고하다. 견고한 신념은 이들의 도전과 모험의 원천이다. 이들은 작업 중인 우물 곁에 텐트를 치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VC)이 챙겨준 도시락(투자금)을 식량 삼아 밤샘 작업 중이다. 다크 써클이 얼굴을 지나 배꼽까지 내려왔지만, 눈 빛은 여전히 강렬하다. 지하 생명수를 끌어올리기까지 이들은 자원을 쓸 뿐이다.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향할수록 꿈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고 믿는다.

누가, 이들에게 꿈을 보여주었나. 미국의 성공한 바이오텍들일까? 일부 맞는 말이지만, 직접적으로 꿈과 희망, 자신감을 불어넣어 행동하도록 촉진한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컵을 들고 우물을 마시던 사람들 가운데 혁신을 꿈꾸던 사람들의 도전과 성과였다. '제네릭 우물'에 기대어 살던 전통 제약사들의 릴레이 기술 수출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줬다. 이젠, 바이오텍과 전통제약사 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대한민국의 혁신신약 개발을 이끌고 있다. 생태계가 이렇게 형성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제약사에 대한 기대치도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건기가 찾아오는 게 자연의 섭리듯 우리나라 제네릭의약품 비즈니스에 건기가 찾아오는 것도 자명하다. 세렝게티에 건기가 찾아오면 하천이 마르고, 지형이 낮은 곳으로 물이 고인다. 온갖 생명들이 찾아들어 흙탕물을 만들고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이 마저 마르고 나면 '과연 이곳이 그 푸른초원이었던가'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진다. 세렝게티 생명에겐 우기 만이 희망이지만, 코끼리들 만큼은 하천 줄기 어느 곳을 파면 생명수를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이동한다. 코끼리를 따라 움직이는 현명한 생명들도 있다.    
 
전통 제약사회사들의 '우물 역할'을 하는 건강보험도 마르지 않는 샘일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약회사들에게 충분한 양의 물을 공급해 줄 수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집행을 통해 보험체계의 영속성을 확보하고, 보장성도 강화해 나가야 할텐데 주변 환경은 썩 좋지 않다. 인구 감소에 따른 보험자의 감소, 고령화 사회에 따른 만성질환의 증가 등은 현실적 위협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제네릭 의약품 가격이 현 수준으로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

왜, 낙관하기 어려운가. 정부가 제약바이오를 신성장 산업으로 지원하고, 바이오텍들이 성과를 낼 수록 '제네릭이 국내 제약사 R&D의 캐시카우'라던 논리가 약발을 잃는 측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다 심각한 이유는 우물가에서 빈 컵을 든 채 다툼을 벌이는 제네릭 비즈니스의 행태들이 불법 리베이트의 시발점이라는 메시지다. 이익 한푼 내지 못하는 바이오텍들이 혁신신약 개발에 목숨을 걸고 투쟁할 때, 만만찮은 영업이익을 시현하면서도 연구 개발은 등한 시 하는 곳에 건보재정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당장 혁신신약을 팡팡 터트리는 신약 선진국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제네릭 가격을 현격하게 낮추면 R&D하는 기업들이 위태로워 질 것이다. 태풍이 불면 큰 나무가 먼저 쓰러지듯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기업들의 타격이 더 심각한 것은 자명하다. 대단한 아이러니지만 컵 하나 밖에 들지 않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당신이 건강보험 관리자라면 누구를 위해 한정된 재정을 쓰겠는가. 골고루 나눠줄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열어줄 가능성 높은 기업에 투자할 것인지,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네릭=캐시카우'라는 논리가 약화되고 있다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도 변하고 있다. 제네릭으로 성장세를 잡은 기업들 중에는 대장장이에게 우물을 팔 괭이를 벼려달라 요청을 했거나, 이미 괭이를 부여잡고 새 우물파기에 나선 곳이 적잖다. 우물가에서 같이 컵을 들고 있었지만 다른 꿈을 꾸었던 곳들이다. 연구자들을 찾아 자금을 지원하며 신약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바이오텍이 벼려놓은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더 개발하는 곳도 있다. 사업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 기업의 영속 기반을 다지며 신약개발을 모색하는 곳이 많다. 제약바이오산업에 건기가 찾아오고 있다. 코끼리가 될 것인지, 말라가는 한 줌의 물에 운명을 의탁해 볼 것인지 선택지는 동일하게 주어졌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