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 등 규탄성명...'의사특권법' 철회해야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 등이 의료인 진료거부권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의 법률안을 ‘의사특권법’이라며,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의료인의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의료인의 진료거부권으로 변질시키는 안하무인격 입법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5일 성명을 통해 이 같이 규탄했다.

이들 단체는 “이 법안은 의사에게 환자를 선택할 권리로써 전면적인 진료거부권을 인정하기 위한 단초로 보인다. 국민과 환자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요청에 응답한 김 의원에게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갑 주민을 대표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어떻게 의사특권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런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행위에 대해 면허를 소지한 의료인에게만 독점시키는 정책을 ‘의료법’이라는 입법적 합의를 통해 수용했기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료인에게 이러한 독점적 권한을 주는 대신 고도의 윤리의식도 요구하고 있다, 불법적?비윤리적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면허를 취소하거나 면허자격을 정지시키고, 정당한 사유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조문체계상으로도 의료법 제15조제1항에서는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 않고,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정한 건 입법자가 의료인에게 “법률상 권리로써 진료거부권”을 준 것이 아니라 “법률상 의무로써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부과한 것이라고 했다.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도 일률적으로 정해질 수 없고 구체적 상황 하에서 의료인의 판단이 합리적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입법자인 국회는 정당한 사유의 구체적인 유형을 법률에 직접 규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도 별도로 위임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겼다.

만일 일부 구체적인 유형만 정당한 사유로 법률이나 시행령?시행규칙에 규정하면 그 이외의 유형은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아 진료거부를 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건복지부도 유권해석을 통해 법원에서 의료인의 진료거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가능성이 큰 구체적인 유형 8가지를 예시로 소개했을 뿐이다.

이들 단체는 그런데도 김 의원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 8가지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인이 질환 등으로 진료를 할 수 없는 경우 ▲의료기관의 인력·시설·장비 등이 부족해 새로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경우 ▲예약된 진료일정으로 새로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경우 ▲난이도가 높은 진료행위에 필요한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다른 의료인이 환자에게 이미 시행한 투약·시술·수술 등의 내용을 알 수 없어 적절한 진료를 하기 어려운 경우 ▲환자가 의료인의 진료행위에 따르지 않거나 의료인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진료행위를 요구하는 경우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가 위력으로 의료인의 진료행위를 방해하는 경우 ▲의학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계속 입원치료가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돼 환자에게 가정요양 또는 요양병원·1차 의료기관·요양시설 등을 이용하도록 권유하고 퇴원을 지시하는 경우 등이다.

이에 대해 이들 단체는 “진료거부가 예외적으로 가능한 정당한 사유를 8개 유형으로 구체적으로 한정해 법률에 규정하면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규정한 의료법이 개정안과 결합돼 진료거부권을 인정해 주는 규정으로 그 법적 성격이 바뀌게 된다. 의료행위에 대한 의사 독점주의라는 특권에 더해 진료거부권이라는 권리까지 인정해 주는 것은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환자에게 가혹한 처사”라고 했다.

이어 “진료거부가 예외적으로 가능한 정당한 사유를 8개 유형으로 구체적으로 한정해 법률에 규정하면 8개 유형에 해당되지 않는 유형은 진료거부가 불가피하더라도 진료거부죄에 해당돼 오히려 형사처벌을 받는 모순이 생긴다. 이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법률에도 규정하지 않았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위임하지 않은 입법취지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또 “작년 10월 2일 오진으로 8세 어린이를 의료사고로 숨지게 한 의사 3명에게 금고형이 선고되고 법정 구속된 사건 이후 판결에 대한 집단적 항의과정에서 의협은 의사 진료거부권 도입을 주장했고, 국회에 요청해 입법 발의를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에 대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환자단체는 의사의 과실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도입과 함께 의사의 진료거부권 도입을 강도 높게 반대했고 이를 추진하는 의협에 항의하기 위해 규탄 기자회견까지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의 진료거부권 도입 관련 최근의 논쟁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진 의사 3명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금고형이 선고되고 법정 구속되자 의료계의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판결에 대한 집단적 항의과정에서 의협이 의사의 과실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도입과 함께 주장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아울러 “김 의원은 개정안의 입법 취지로 작년 말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피습에 의해 사망한 (故)임세원 교수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故)임 교수와 유족은 차별 없는 정신질환 환자의 치료를 강조했는데도 오히려 김 의원은 진료거부권 도입으로 (故)임 교수와 유족의 유지를 훼손했다.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지 정신질환 환자의 폭력 위험 때문에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환자와 의사 간 불신만 가중하고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뿐”이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국회는 의료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국민과 환자의 입장에서 진료실과 수술실 안전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환자단체는 “의료인의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의료인의 진료거부권”으로 변질시키려는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한다. 대표 발의자인 김 의원과 공동 발의자인 박덕흠, 김성원, 이명수, 홍철호, 정갑윤, 박명재, 주호영, 민경욱, 윤종필 국회의원에게 의료법 개정안의 발의를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국회에 대한 비판도 덧붙였다.

이들 단체는 “지금도 김 의원이 출퇴근하는 국회 정문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이 수술실 안전을 지키기 위해 CCTV 설치를 요구하며 76일째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이 76일간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는 동안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을 위한 수술실 CCTV 설치법이 발의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의 환자 안전과 인권을 보호해달라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에 국회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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