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도입 5년차에 사망~비급여진료비까지 보상범위 완성
의사-환자도 잘 모르는 제도...보상금액 10배 기금 적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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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부터 비급여 진료비에 대해서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식약처(처장 이의경)가 관련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안예고했지만 제도 운영의 방향성은 여전히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있다.

식약처가 13일 입법예고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급여와 비급여를 포함해 건당 2000만원까지 본인부담금 기준 진료비를 보상할 수 있다. 지급심사 하한선은 30만원이 그대로 유지된다.

2014년 12월 19일 도입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는 15년 사망, 16년 장애 장례, 17년 급여 진료비에서 이번에 비급여 진료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비급여까지 피해구제 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의약품 부작용 발생에 따른 피해구제 범위는 제도시행 5년차 만에 형식적으로는 완성단계까지 도달했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는 정상적인 의약품 사용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게 사망, 장애, 질병 등 피해가 발생한 경우 환자 및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시행 40년을 넘긴 일본을 벤치마킹해 도입됐다.

피해구제 기금은 병원이나 약국에 완제의약품을 공급하는 회사를 대상으로 공급실적과 품목별 계수(예=일반약 0.1, 전문약 1.0 등), 부과요율(0.027%)를 반영해 기본 부담금을 걷고 직전년도 피해구제 급여가 지출된 의약품 보유 회사에 대해서는 피해구제급여액에 25%를 곱한 금액을 추가부담금으로 거출한다.

시행 4년간 피해구제 신청은 총 350건이며 이중 220건에 대해 약 47.4억원이 지급됐다. 유형별로는 진료비가 119건(54%), 사망일시보상금 46건(21%), 장례비 46건(21%), 장애일시보상금 9건(4%) 등이다. 피해구제 신청접수와 부작용 조사 등은 식약처 산하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담당한다.

시행 초기지만 피해구제 범위를 형식적으로는 완성시킨 “좋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피해구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온적”이라는 평가이다.

4년간 피해구제 지급대상으로 결정된 220건에 대해 47.4억이 지급됐지만 제약회사로부터 걷어들이고도 쓰지 않고 남겨둔 적립금이 2018년 말을 기준으로 146억이나 된다. 연도별 지급금액은 2015년 5.6억, 2016년 14.3억, 2017년 14.2억, 2018년 13.3억으로 매년 피해구제 범위를 확대했지만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기금 운영의 안정성을 고려해 일정수준의 적립금은 유지해야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급금액의 10배에 가까운 기금을 뚜렷한 방향성 없이 적립만 해두는 것은 기금을 내는 제약회사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기만 하는 제약회사들은 비급여까지 피해구제가 확대됐을 경우 발생하는 재정예측을 명확히 알고 싶을 수 밖에 없다. 비급여 확대에 따른 재정의 영향관계를 따지는 연구용역이 진행됐지만 식약처는 구체적인 내용을 비공개로 해 둔 상태이다. 연구용역을 맡은 성균관대학교 신주영 교수가 제약회사들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에서 재정영향이 크지 않다는 연구결과롤 설명했지만 보고서 자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주영 교수는 히트뉴스와의 통화에서 “40년 이상 제도를 운영해온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비급여 확대에 따른 재정영향을 분석했는데, 중단기적으로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구제 신청이 늘어날 경우를 가정한 장기적 예측결과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제도 운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의약품안전관리원이 피해구제 신청이 쏟아질 정도로 적극적인 교육홍보 활동을 하느냐를 우선 따져봐야 하는데 결론은 그렇지 않다. 환자들은 물론이고 진료하는 의사들조차 제도운영 자체를 잘 모른다는 점은 관련업무 담당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의사도, 환자도 아는 제도를 만들려면 적정한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의약품안전관리원의 예산은 여의치 못하다. 일본은 기금을 홍보비나 인건비에 일부 투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국내는 피해자에 대한 직접보상 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제도는 있지만 운영은 ‘스텔스(stealth)'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금을 내는 제약회사들도 불만이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가 정상적인 사용 상태에서 약이 가진 내재적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을 구제하는, 무과실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 피해구제 사례가 발생한 제약회사에 추가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을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이러다보니 기금의 명칭을 부담금이 아니라 기여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또 기금을 내는 당사자인 만큼 피해구제 심의과정에서 정보공유나 의견제출을 할 수 있는 열린 통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제약바이오협회 이은솔 변호사는 “제약사가 심의과정에 직접 참여할 필요는 없지만 피해구제 신청정보를 공유하고 발생한 부작용의 인과관계에 대해 약을 만든 회사가 의견을 낼 수 있는 통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식약처 등이 피해구제 범위를 단기간에 최대치로 확대했다면 그에 걸맞게 제도 운영도 실효성 있게 뒷받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제도”에 대한 교육홍보 활동이 그 첫 출발일텐데, 무작정 뛰어들라고 주문하기도 어렵다.

신주영 교수는 “의사나 환자들에게 제도 자체를 알리는게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은 분명한데, 피해구제 신청이 늘어났을 때 제도실무를 운영하는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이를 감당할 충분한 인력 등이 갖춰져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마디로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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