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초대석] 구중회 LB인베스트먼트 전무

구중회 LB인베스트먼트 전무

“EBS 인강을 들으면서 세포 개념부터 다시 시작했다. 일본 만화책을 보면서, 면역학과 분자생물학의 기본 개념을 익혔다. 주요 학회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그때부터 학문의 흐름과 함께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중회 LB인베스트 전무는 제약바이오 비(非) 전공자다. 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는 고분자공학, 기술경영으로 박사를 수료했다. 화학•소재 분야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2015년에 제약•바이오 투자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제약바이오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 EBS 생명과학 인강부터 듣기 시작했다.

어쩌면 바이오를 전공하지 않은 그의 이력이 이 산업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자본이 몰리고 있는만큼 제약바이오 산업 생태계가 정말 성장하고 있는지. 최근 교수들이 기술력만 믿고 창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가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 개인 투자자들은 제약바이오 산업에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투자해야 하는지.

이런 궁금증을 품고 금요일 오후 5시 한국벤처투자로 향했다. 회의 도중에 잠깐 시간을 내준 그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상세하게 답해 줬다.

8417억원. 지난해 기준 바이오•의료 분야에 새롭게 투자된 벤처캐피털 자본이다. 벤처캐피털 자본 분야는 총 8개(ICT 제조, ICT 서비스, 전기•기계•장비, 화학•소재, 바이오•의료, 영상•공연•음반, 게임, 유통•서비스) 중 가장 많이 투자된 분야가 바이오•의료분야로 전체 24.7%를 차지한다. 자본이 이렇게 유입되는 것이 과연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 물었다. 또 일각에서 바이오 분야에 무분별하게 투자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아시아 권에서 바이오 분야가 열풍인 건 사실이다.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바이오 산업 성장속도는 가파르다. 2015년 바이오 분야에 들어올 때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이오산업이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되기 시작한 이후로 상장도 드문드문 이뤄지고, 적자를 내는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시총(시가총액)이 유지되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산업을 쭉 살펴보니 그 시총에는 산업에 대한 ‘기대치’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말한 기대치가 금융 자본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한미약품이다.

“보통 시장에서 제품이 출시가 돼야 매출 등이 잡혀 금융시장에서 평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을 하면서 (또 다른 투자모델)을 보게 됐다. 당시 일본의 다케다제약 외에 아시아 국가가 기술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기술이전 한 사례는 없었다. 이 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 학술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아직 중국은 이런 학술적 데이터에 신뢰성은 우리보다 낮게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의 생태계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비단 자본이 몰리는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력이 제약•바이오로 몰리고 있다고 했다.

“여의도 자산운용사 중 비교적 빨리 바이오 쪽에 투자하신 분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60-70년대 화공과들은 석유, 시멘트 산업을 만들었고, 80년대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반도체 산업을 이끌었다. 우리나라 90년대생들 중 실력 있는 인재는 의대, 바이오 쪽으로 갔다. 그들이 이제 쏟아져 나올 때다.”

이어 그는 어떤 산업이든 거품을 먹고 성장해 나간다며, 바이오 버블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2000년대 IT 버블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어느 산업이든 거품을 먹고 산다. 이 거품으로 인력이 유입되고, 산업의 인프라가 튼튼해 진다. 그러나 거품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거품이 사라진 뒤, 내실이 있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가 구분될 것이다.”

거품이 사라진 뒤 쭉정이와 알맹이는 구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 산업 생태계의 충분한 자정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우리나라 특정 바이오 벤처가 펀딩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산업 초기에는 자금이 몰리다 보니, 특정 분야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에서 정확한 가치를 평가 받게 되면, 점차 합리적인 기준으로 투자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보통 펀딩은 1.5-2년 단위로 이뤄진다. 다음 단계 투자를 받으려면 이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여의도 사람들이 한번은 멋모르고 돈을 넣어줄 수도 있지만, 두번의 실수는 없을 것이다.”

바이오 산업은 ‘기술’ 중심의 사업이다. 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연구자(교수)들이 자신의 기술이 대단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교수들은 훌륭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교수들의 창업을 반기면서도, 주의해야 할 점을 당부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다이아몬드라는 쥬얼리이지,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니다. 기술은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다. 이 원석은 세공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만 가지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수 출신 CEO들은 기술의 중요성만 몰두한 채 다른 과정을 보지 못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무엇보다 교수 출신 CEO는 다른 직원들은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하는 관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 출신 CEO가 많이 착각하는 것이 보통 대부분의 인력을 ‘고용(hire)’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 쪽에 일하는 인력은 CEO가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 속에서 협업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기술개발이 어려운 만큼 산업의 트렌드를 읽고 자본을 투자하는 일 역시 어려운 법이다.”

끝으로 개인투자가들이 제약바이오산업을 투자해야 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투자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가 처음 바이오•의료 섹터에 들어올 때처럼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회사와 기술이전 계약을 하는지, 어떤식의 계약관계인지, 해당 의약품의 시장분석(적응증 규모, 경쟁약물) 등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된다. 요즘은 구글링이나 전자공시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또 해외 학회도 주목해야 한다. 유한이 얀센과 맺은 기술이전 계약 역시 작년 ASCO(미국임상종양학회) 때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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