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유통, 정부 당국 기대기보다 판촉능력 길러야
CSO가 20~45% 받는 이유가 도매 과제의 해답

요즈음 도매유통업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누구나 ▲마진 ▲반품 ▲카드 ▲일련번호 문제를 하소연한다. 지금 도매유통업계가 풀어야할 4대 화두다.

그런데 이들 중 3개가 공교롭게도 제약업계와 직결되고, 제도에 따른 일련번호 문제도 핵심 일부(큰 포장 묶음번호 및 2D바코드와 RFID 등)가 서로 얽혀 있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도매유통업계는 제약업계를 강자(우월적 입장)인 '갑'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제약업계와 수급관계에서, 공식적으로 '우리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라는 표현을 당연한 듯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우리 의약품산업 여명기(1950~1965년) 때는 도매유통업계가 제약업계로부터 깍듯한 대우를 받았다.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그 시절, 지방의 도매유통사 사장 분들이 기차타고 서울 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제약사 사장 분들이 자전거 끌고 마중 나오곤 했다 한다. 특히 지금 5대(매출기준) 제약사의 하나인 J사의 창업주 L회장 분의 도매유통업계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고 한다. 이는, 제약업계가 도매유통업계의 '갑'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그런데 왜 지금처럼 변했을까? '갑'은 되고 싶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힘을 길러야 가능하다. 여기서 힘은 '능력'이다. 힘이 부족하면 '을'이 되는 것이 기업사회의 일상이다. 어제의 갑이 오늘 을이 되고, 오늘의 을이 내일 갑이 될 수 있다. '갑', '을' 관계의 위치는 '하기 나름'에 따라 언제든지 반대로 바뀔 수 있다. 고정된 게 아니다. 

의약품산업 초창기에 제약업계가 도매유통업계를 '갑'으로 예우한 진짜 이유는, 그 당시 제약업계가 생산한 제품의 판로(販路)는 도매유통업계를 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길 이외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때까지의 관습적인 '판로 독점성'을 통해 도매유통업계는 제약업계와의 거래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도매유통업계의 판로 독점은 1965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도매유통업계의 갑의 힘도 사라져 갔다.

그해 벽두부터 시작된 D제약사의 B드링크에 대한 약국 직거래 경로 개척 활동이 도매유통업계의 판로 독점이 무너지는 사건의 발단이 됐다. 대량 광고와 특별한 맛과 최신형 캡핑(capping)포장 차별화 전략 등으로 주문량이 폭증하기 시작한 B드링크를 도매유통업계가 열악한 물류시설 때문에 지연 배송시켜 약국의 민원이 빗발친 것이 직거래 촉진의 원인이 됐다. D사의 그 새로운 유통경로 전략이 성공을 거두자 다른 제약사들도 모두 D제약사를 뒤따라 직거래 판로 개척에 혈안이 됐다.

그 때부터 '의약품 유통일원화' 과제가 도매유통업계의 숙원사업이 됐다. 이의 해결을 위해 도매유통업계는 2010년 말 종합병원직거래 금지규정이 폐기되기 전까지 45년이라는 긴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도매유통업계는 1965년 이전에 100%였던 도매를 통한 의약품유통이, 1992년경에 무려 25%선까지 떨어지는 참담함까지 경험해야 했다. 그때 도매유통업계의 물류문제로 야기된 B드링크의 직거래 사건이 없었다면 도매유통업계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정리해 보면, 1965년 도매유통업계가 관습적인 의약품 유통경로의 독점성으로 얻은 '갑'의 위치가 'B드링크'의 직거래 통로에 의해 무너지면서 '갑'의 힘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처지가 됐다. 이 모든 게 도매유통업계의 자업자득 아닐까?

하지만, 아직 도매유통업계에 희망이 있다. CSO(판매대행조직)업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도매유통업계의 4대 과제 중 으뜸은 '마진 과제'일 것이다. 밥그릇보다 더 큰 과제는 없지 않겠는가.

어떤 외자제약사들의 어떤 제품들은 유통마진율이 터무니없는 1~3%라고 하지만, 그래도 도매유통업계 전체의 유통마진율 수준은 7.5%대로 나와 있다. 유통협회가 의약품정책연구소에 의뢰해 얻은 '필요 유통비용' 수준은 8.8%였다. 만약 제약업계가 도매유통업계에 8.8%의 유통비용을 보전해 준다면, 도매유통업계의 마진 과제는 일거에 해결된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우리도 살기 힘드니 8.8% 유통비용을 보전해 줄 수 없다. 오히려 더 내려야 한다. 이렇게 핑퐁치고 있으니 유통마진 문제가 해결되기 난해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동안 오리무중이었던 'CSO 수수료률'의 장막이 작년부터 공식적 ? 비공식적으로 걷히기 시작했다. 이제 그 수준을 통상 20%~45%대로 보는 것이 중론이 돼 가고 있다.

여기서 취할 점이 있다. 도매유통 마진율은 7.5%↔8.8%, 즉 1.3% 차이를 놓고 도매와 제약이 티격태격 큰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CSO 수수료률은 20%~45%나 된다는 점이다. 제약업계는 왜 CSO업계에 그 많은 수수료률을 기꺼이 내 놓을까? 그러면서 도매유통업계한테는 왜 쥐꼬리 같은 마진율에 그렇게도 인색한 걸까? 도매유통업계는 허심탄회하게 입장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하는 일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CSO는 판촉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다. 그 판촉능력의 가치를 제약업계는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그 대가(代價)를 20~45%나 되는 높은 수수료률로 상대가 목매달지 않아도 자진해서 보상해 준다. 도매유통도 상류기능 전문조직이고 상류기능 속에는 당연히 판촉활동이 포함된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도매유통업계의 판촉능력을 제로(0)로 본다. 그러니 그 값을 쳐주지 않는다. 판촉활동을 제외한 물류 및 기타 상류활동에 대한 가치를 제약업계는 도매유통업계에 7.5% 정도밖에 평가해 주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판촉능력의 가치에 대해 도매유통업계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첫째 고유기능인 상류기능 속에 포함된 판촉활동 능력을 육성 ? 계발(啓發)할 꿈조차 꾸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되어지는 물증이 있다. 해마다 4월초에 발표되는 150처 내외의 도매유통사들 결산서류 중 손익계산서를 보면, 판촉능력 육성을 위한 교육훈련비 지출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도매유통업계가 제약업계로부터 '약자' 위치를 벗어나는 길은 판촉활동 능력을 최소한 CSO수준 정도로 육성 ? 배양하여 실무에 적용 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깊이 유념했으면 한다. 도매유통업계가 판촉능력을 길러 실천한다면 유통마진율 1~2% 상승, 최저 유통마진율 법제화 등이 문제꺼리가 되겠는가.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