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의사단체 반대...정부 "지나친 기우" 해명 안간힘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 소속 기자들과 만나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임인택(오른쪽) 보건산업정책국장과 오상윤 의료정보정책과장.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 소속 기자들과 만나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임인택(오른쪽) 보건산업정책국장과 오상윤 의료정보정책과장.

정부가 첫 ICT 규제 샌드박스 사업 중 하나로 지정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실증특례가 원격의료 신호탄 논란에 휩싸였다. 시민사회단체와 의료단체의 원격의료에 대한 반감이 강한 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히트뉴스는 각 단체의 성명서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자료,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의 기자설명회 등을 토대로 쟁점을 정리해 봤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IT 규제 샌드박스 사업은 과기정통부 신기술서비스심의위원회가 지정하는데, 실증특례 대상이 되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일정기간 실증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성격은 다르지만 실증을 통해 실효성이 있으면 사업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시범사업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논란 대상은 휴이노와 고대 안암병원이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해 심장질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에 대한 실증특례 사업이다. 이 장치는 휴이노가 2015년 개발했지만 법규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그동안 출시되지 못했다. 위원회는 의사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착용한 환자로부터 전송받은 심전도 데이터를 활용해 내원 안내하거나 1~2차 협력 의료기관으로 전원 안내하는 범위 내에서 약 2천명 이내의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실증특례 사업을 진행하도록 허용했다.

구체적으로 휴이노는 병원 외부에 설치한 장비를 통해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가 집적한 환자 정보를 매주 2~3회 가량 수집해 클라우드 서버로 보낸다. 이 때 휴이노가 임의로 관련 정보에 접근하거나 백업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안암병원 의사는 클라우드에 접속해 환자 심전도 정보 등을 보고 내원 또는 전원안내 여부를 판단한다.

이번 실증특례에 의사의 진단과 처방은 원칙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또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의료기기로 인증받은 이후에 사업을 개시하도록 조건도 붙였다. 25만원 가량 되는 의료기기 구입비용은 사업에 참여하는 환자가 자부담한다.

과기정통부는 'ICT 혁신의 실험장'이라고 이 사업을 소개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로 사업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혁신의 실험장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시각이 이렇게 정반대인 만큼 논란과 갈등은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격의료 신호탄 논란=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임인택 국장은 "이번 사업은 원격의료와 거리가 멀고 목적이 다르다. 원격의료 신호탄이라는 주장은 기우"라고 일축했다.

그는 "안암병원 의사는 클라우드에 접속해 환자 정보를 보고 내원 또는 가까운 의료기관에 전원여부만 환자에게 안내한다. 의학적 판단을 토대로 소견을 환자에게 제공하면 원격의료가 되고 위법한 게 되는데, 그러지 못하도록 했다. 웨어러블 기기로 정보만 전달하는 건 문제가 안된다는 법령해석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법령상 불명확한 부분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증해 보자는 의미다. 이를 통해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줄고 효과는 어느정도나 되는 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의사가 진료소견 제공없이 단순 안내만 하기 때문에 의료행위가 개입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사협회, 보건의료단체연합, 윤소하 의원 등은 의사가 심전도를 판독하고 내원여부 결정이나 전원을 안내하는 것 자체가 의학적 판단과 소견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면서 원격의료가 아니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따라서 이번 특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의 신호탄이거나 우회적 허용, 또는 원격진료의 변형이라고 이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원격의료 신호탄' 논란은 의사가 환자에게 내원 또는 전원을 안내하는 행위가 의료행위 범주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돈벌이' 논란=임인택 국장은 이번 사업은 대형병원에 쏠리는 환자를 지역 의료기관으로 분산시키고 첨단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심장질환자가 보다 안심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웨어러블을 통해 심전도 정보 등을 집적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한 홀터심전기를 착용했을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정확하게 환자를 진료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목적이 좋아서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들어왔을 때 적극적으로 검토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나 의료단체의 불신의 벽은 견고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환자치료보다 돈벌이에 특화된 규제특례의 시작"이라고 비판했고, 의사협회는 "국민건강을 도외시하고 의료를 민영화, 상업화를 이끌고 가기 위한 과거 정부 행태와 다르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 안전보다 민간기업 이익을 우선한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가 아직 미허가 상태여서 제기된 쟁점이다. 임인택 국장은 "식약처가 3월 중 인증할 계획이다. 인증이후 사업을 개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안된 기기를 환자에게 25만원 내외에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건 국민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고 민간기업의 이익만 우선시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윤소하 의원은 "신기술 등은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 있을 수 있고, 기기사용과 해석에 따른 과실유무 입증에 대해서도 확인이 어렵다. 신의료기술 평가도 거치지 않은 의료기술을 바로 중증심장질환자에게 사용하는 건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이익과 성장에 도움이 돼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규제완화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심의과정 의료계 배제 논란=임인택 국장은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다. 원격의료는 의료계와 협의없이는 (추진) 불가능한 일이다. 원격의료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번 특례사업은 원격의료와 무관하기 때문에 의료계와 협의가 없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심의위 구성을 보면 실질적인 논의과정에서 의료계를 배제했다. 심장질환자에 대한 의학적 판단과 서비스의 의료적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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