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원조 김완주 "라이센스 아웃 단계 넘어가자"
신약개발 원조 김완주 "라이센스 아웃 단계 넘어가자"
  • 조광연
  • 승인 2019.01.1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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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초대석] 국내 신약기술 수출 1호 주인공
"연구결과 상품화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목표 높여야 "
7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씨트리를 방문했을 때 김완주 회장은 점차 빈도가 높아지는 신약개발 기술 수출 현상은 아주 반갑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야 말겠다는 목표의 상향 조정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7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씨트리를 방문했을 때 김완주 회장은 점차 빈도가 높아지는 신약개발 기술 수출 현상은 아주 반갑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야 말겠다는 목표의 상향 조정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박찬하]
7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씨트리를 방문했을 때 김완주 회장은 점차 빈도가 높아지는 신약개발 기술 수출 현상은 아주 반갑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야 말겠다는 목표의 상향 조정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7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씨트리를 방문했을 때 김완주 회장은 점차 빈도가 높아지는 신약개발 기술 수출 현상은 아주 반갑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야 말겠다는 목표의 상향 조정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박찬하]

"라이센스 아웃(신약개발 후보물질 기술 수출)이 국내 제약기업들이 신약 개발을 하는 최종 목표일 수 없어요. 이제 용기를 더 내 신약의 상품화까지 가야할 때가 됐습니다. 신약의 상품화를 목표로 할 만큼 국내 제약기업들의 역량도 충분히 높아져 있으니까요."

7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씨트리를 방문했을 때 김완주 회장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신약개발 기술 수출 현상은 아주 반갑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야 말겠다는 목표의 상향 조정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로 약학자이자,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김 회장이 이 같은 화두를 던지는 것은 국내 기업들이 신약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생 신약개발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 회장은 "다케다, 아스텔라스 등 굴지의 일본 제약기업도 그렇게 글로벌시장을 겨냥해 신약개발의 상품화를 목표로 끊임없는 도전을 한 끝에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며 "우리 제약기업들 역시 굳센 믿음과 용기를 갖고 노바티스 같은 세계적 기업에 대한 당찬 꿈으로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국내 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김 회장은 "신약의 상품화를 위해 엄청난 자본투자가 필요하고, 글로벌 영업력이 갖춰지지 않은 우리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안고 있는 허들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아무도 상상 하지 못했던 셀트리온의 과감한 글로벌 도전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기업들의 한 단계 높은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설득력이나 무게감이 다르다'고 한다면, 김 회장의 발언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특히 2001년 발간한 '생명과학과 벤처비즈니스(미래 M&B)'에서 국내 제약산업의 스마트한 신약개발 전략으로 중간 단계의 기술수출이 유용하다고 봤던 이의 역주문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김완주 회장은 말할 자격이 있을까? 1989년 스위스 로슈에 600만 달러를 받고 판 국내 제약산업 1호 기술 수출(한미약품 세프트리악손)과 1993년 스미스클라인비참에 2100만달러를 받고 넘긴 국내 신약 1호 기술 수출(2세대 퀴놀론계 항생제)에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인물이 바로 김 회장이다.

1980년대 들어 완제의약품 수입 자유화와 1987년 물질특허제도 도입으로 국내 제약산업계가 무한 경쟁의 파고에 휩싸여 위기를 맞았을 때 정부 차원의 신약개발 지원에 관한 로드맵을 작성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인물도 김 회장이었다.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제약회사 대표, 대학교수 등 가는 곳마다 족적을 남겨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 회장은 1998년 57세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벤처기업 씨트리를 창업했다. '약학자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함부르크대학 은사 크로이츠캄프 교수와 노구에도 실험실을 지켰던 폴 얀센 박사(글로벌 기업 얀센의 창업자)를 흠모하며 신약개발에 몰두한 김 회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회장님은 우리나라 신약 개발의 시발점이 물질특허제도 도입으로 보십니다.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국내 연구가 신약보다 기존 약물의 프로세스 개선에 집중돼 온 결과였겠죠. 1983년 무렵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하라는 선진국들의 압력이 밀물처럼 몰려왔어요. KIST에 있을 때(1977~1985)인데 경제기획원 안에 민관합동으로 물질특허 대책위원회를 만드는 등 모두 분주하게 대책 마련에 나섰었죠. 당시 연구비는 과학기술부가 전부 갖고 있었고 정부출연 연구소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는 신물질 연구가 제대로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 그래서 어떤 묘책을 내셨나요.

"당시 든 생각이 우리나라가 제대로 신약 연구를 하려면 산업계가 필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신약연구조합을 만들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1986년 신약연구조합이 창립하게 됩니다. 과기부가 예산을 기업에게 직접 줄 수 없었던 때라 신약조합 만들어 신약개발을 위한 예산 3억원을 획득했습니다. 이 예산으로 기업체들이 신약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했죠. 이로부터 신약개발 연구가 태동하게 됐습니다."

▷ 신물질창출국책연구사업단이 만들어 져 초대 단장을 하셨지요.

"네 맞아요. 당시 물질특허에 대한 많은 규정들이 바뀌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초대 단장을 하면서 이 사업단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G7 과제를 총괄했어요. 기업체들이 신약연구를 처음하면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어요. G7과제는 신약개발 능력을 G7국가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게 목표였고, G7 과제 중 퀴놀론계 항생제 개발 과제를 맡아 책임자를 했어요. 퀴놀론 항생제를 개발해 스미스클라인비참에 라이센스 아웃한 게 우리나라 신약으로는 최초 사례에요. 2100만 달러를 받았죠. 이 성과가 발표된 것은 1989년 3월이었는데, 연구를 더 해 1993년 수출하게 됐어요. 항생제 시장이 쇠락해 제품화까지 이르지는 못했어요."

▷ 비슷한 시기, 1989년 9월 한미약품이 제 3세대 항생제인 세프트리악손을 600만달러를 받고 로슈에 기술수출도 했는데, 여기에도 관여하셨죠?

"KIST에서 제가 이끌던 연구팀이 제3세대 세파계 항생제 제조기술을 개발해 세포탁심 합성법 등 관련기술을 한미약품에 이전했고, 한미약품은 이 기술을 이용해 세포탁심 합성법 뿐만 아니라 세프트리악손을 비롯해 세파계 항생제를 계열화 했어요. 나중에 원료약품 생산회사인 한미정밀화학이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인연으로 한미약품 부사장과 힌미정밀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죠."

※ 김완주 박사와 한미약품의 인연에 대한 기억은 조금 엇갈린다. 김 박사는 항생제 설파메톡사졸을 주요 품목으로 갖고 있던 당시 임성기 한미약품 사장이 KIST를 방문했다고 기억하는 반면 현 임성기 회장은 김완주 박사가 한미약품을 찾아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기억한다. 기억의 차이야 어찌되었든 양자가 운명적인 만남으로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한미약품의 세파 항생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을 때 김완주 박사는 임성기 사장에게 세팔로스포린 전문 원료회사를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해 한미정밀화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로 KIST의 K-TAC이 투자한 최초의 바이오텍이었다.

김완주 박사는 57세이던 1998년 바이오벤처 씨트리를 창업했다. 자신의 신약개발에 관한 꿈은 보스턴대 화학과를 나온 딸 김미정 사장이 정신적 유전자로 이어받았다며 씨트리는 결코 안주하지 않고 신약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창업 당시, 사진제공=씨트리).
김완주 박사는 57세이던 1998년 바이오벤처 씨트리를 창업했다. 자신의 신약개발에 관한 꿈은 보스턴대 화학과를 나온 딸 김미정 사장이 정신적 유전자로 이어받았다며 씨트리는 결코 안주하지 않고 신약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창업 당시, 사진제공=씨트리).

▷ 오늘 날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 에스티팜의 전신인 삼천리화학에도 기술을 이전해주셨죠.

"삼천리가 연탄공장이었는데, 당시 유성연 회장님이 정밀화학에 관심을 갖고 저를 찾아오셨어요. 성장성 있는 미래시장, 전문화, 세계시장 목표를 제시해 드렸어요. 회장님은 삼천리제약을 설립하시고, (전)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도록 조언을 드렸죠. 이게 인연이 돼 1987년 화학연구소 내 우리 연구팀은 에이즈 치료제였던 아지도티미딘(AZT) 합성에 성공해 삼천리제약에 기술 이전했어요. 이 제품 생산을 위해 삼천리화학을 세우고 AZT와 중간체를 생산해 당시 다국적 기업인 글락소웰컴에 전량 수출했어요. 특허를 이 회사가 갖고 있어 중간 제품인 사이미딘을 수출했지만 1998년 이 제품 하나로 매출 1000억원에 영업이익 250억원을 시현했어요. 기술이란 게 이런 겁니다."

▷ 한미정밀화학 대표를 끝으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셨어요. 그리고 1998년 씨트리를 창업하셨죠.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요즘은 무엇을 하시나요.

"씨트리 창업할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바이오 기업의 맹점은 연구는 하는데 매출이 없다는 거죠. 우선 수익성을 확보하자는 측면에서 옛날 바이엘 공장을 인수해 제네릭 의약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제네릭 의약품의 포트폴리오도 점점 고부가 가치 의약품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신약개발의 투자를 위해서는 제약산업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꼭 보존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선순환 구조의 신약개발 투자 기업이 되기 위한 투 트랙 전략입니다.

▷ 씨트리의 신약 개발 전략은 뭔가요.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건 우리 역량이 부족합니다. 지금은 바이오 베터 개발에 주력합니다. (바이오의약품은) 전부 주사제인데, 이를 어떻게 경구용으로 할까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남양주와 춘천 두 곳에 연구소가 있어요. 이제 나이도 들고 (제가) 다 못할 텐데, 제 딸이 신약개발에 매진할 겁니다. 보스턴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회사에 조인해 5년정도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고 신약개발의 정신적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씨트리는 절대 안주하지 않는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 회장님은 약학대학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자긍심이 높으세요. 그런데 요즘 젊은 약사들의 창업은 찾아보기 힘 듭니다.

"지금 신약개발을 주도하는 바이오벤처의 창업자들이 생명공학이나 의학 전공자들이 많아요. 솔직히 약사들은 다 소외되고 있죠. (저는) 신약개발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약사라고 보고 있습니다. 약사라는 직업이 매우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약사들이 약사의 라이센스에 국한 된 직업에서만 움직이기 보다 좀 더 과감하게 신약개발에 나서고 벤처를 창업하면서 미래가치를 창출했으면 합니다."

▷ 왜, 약사들의 창업이 힘든걸까요?

"젊은 약사들이 좀 더 도전적으로 나서야합니다. 보통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면서 약사면허증에 의존하여 안주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평생 약사 면허증을 써본적이 없어요. 약사들의 역할이 더 넓은 세계에서 펼쳐질 수 있는데, 면허증에서 안주하니까 다른 세계에 도전을 안하는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바이오벤처가 돈을 버는 시대입니다. 약국 100번한들 수천억 원을 무슨 수로 벌겠습니까. 바이오벤처를 창립해 신약개발 기술력으로 세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표들이 다 생명공학, 화학, 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에요. 도전적인 약사가 나와야되는데...약대가 약사면허증을 주지 않는 학과를 둬야한다고까지 생각할 지경입니다."

※ 김 박사는 원래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진학을 꿈꾸다 6남매를 홀로 키우다시피한 어머니의 권고로 약대에 진학하게 됐다. 성균관 약대를 택한 이유는 약학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수학 Ⅱ 시험을 보지 않고 일반 수학시험만 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뜻하던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과 타의로 진학한 약학대학 공부에 취미를 붙일 수 없었다. 그러다 독일 함부르크대 약학대학에서 평생 스승인 크로이츠캄프 교수를 만나면서 약학에 정진하게 됐다.

▷크로이츠캄프 교수가 김 회장님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 넣었을까요.

"저 역시 처음에는 안정된 직장과 신분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약대를 선택해서인지 약학이란 공부가 참 재미없었어요. 그러던 중 교수님이 '약학이란 생명의 신비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명인 학문'이라고 말씀 하셨죠. 이 한 말씀이 젊은 날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고, 제 일생을 한결같이 관통하는 철학이 되었어요."

※ 김 박사는 7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독일 쉐링제약 선임연구원으로 지내다 1977년 당시 정부의 해외과학자 유치정책에 따라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원(KIST) 응용화학 유기화학연구실 선임연구원으로 신약개발연구를 시작했다.

▷ 회장님은 한국의 폴 얀센 박사가 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분이 노구를 이끌고 실험실 한 구석에서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실험에 몰두하던 그 장면이 아직도 제 가슴에 살아 숨쉬는 듯합니다. 제 꿈은 한국의 폴 얀센이 되는 것이고, 젊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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