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 박사의 숭고한 창업 정신지키며 글로벌로 행진하라

유한양행 홈페이지 캡처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매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없어지고 장미 꽃은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국내 제약산업계에 크고작은 행사들이 많지만, 유한양행 창업자인 故 유일한 박사가 생전에 즐겨 불렀다는 동요 '매기의 추억'을 제창할 수 있는 '유일한상 시상식'은 좀더 각별하다. 참석자들이 자신의 추억들을 추억하게 만들고, 가늠조차 어려운 유일한 박사의 커다란 족적을 따라가며 현재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주는 덕분이다. 1995년 유일한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정된 이 상은 탁월한 업적을 이룬 훌륭한 인사들을 찾아 시상하고 있는데, 수상자들이 '유일한상'을 받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한치라도 '유일한 정신'을 어길까 조심스러워한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유일한 박사가 그 만큼 큰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여기는 것이다.

1926년 헐벗고 가엾은 식민지 민족의 현실을 목도했던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 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기업 설립의 목적이 분명한 까닭에 유한은 창립부터 지금까지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해 국민의 건강과 행복 증진, 나아가 인류 보건향상에 기여한다는 명제를 제일 중요한 기업 이념으로 삼고 있다. 기업활동을 통해 이뤄지는 부의 축적은 반드시 성실한 납세로 국가에 되돌려져야 한다는 것, 기업에서 얻어진 이윤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 역시 유한 가족들이 9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기업이념이자 정신이다.

교육가이자, 사회봉사자, 독립운동가, 기업인이었던 유일한 박사가 이 사회에 남긴 것은 돈과 명성보다 크나 큰 '정신적 유산'이었다.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목회자가 자녀 세습을 일 삼고, 기업들이 경영 능력에 대한 엄밀한 검증없이 자녀들에게 기업을 넘겨주는 시대에 '유일한 정신'은 더 밝게 빛을 발한다. 유일한 박사가 1969년 혈연관계가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직으로 물려주면서 시작된 전문경영인 제도는 유한의 찬란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도달해야 할 모범이다. 현재 이정희 대표도 1978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인물이다. 그래서 유한에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문화로 자리잡았다. '국민기업'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

이 같은 기업 문화의 토대 위에서 전문경영인들은 시대적으로 맡겨진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 15년 연속 존경받는 기업 1위의 명예를 지켜나가고 있다. 국내 제약회사 가운데 매출 1위에 올려 놓았고, 2017년엔 수출로 2억 달러(대략 2000억원)를 벌어 들였다. 여기에 작년 11월과 올해 1월 잇따라 2건의 신약후보물질을 다국적제약기업에게 기술수출을 이뤄낸 가운데 15일 열린 '제13회 유일한상 시상식'은 한결 더 훈훈했다. 모범적이고 이상적 기업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R&D 부문에서 아쉬웠던 빈공간을 바이오벤처와 어울리며, 때론 중앙연구소 독자적인 힘으로 꽉 채워낸 덕분일 것이다.

참석자들로부터 수 많은 박수를 받은 단상 위 유일한 박사(흉상)는 "이제 유한양행은 국내 1위 제약회사와 국내에서 존경받는 기업을 훌쩍 뛰어 넘어 혁신적 신약개발로 인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글로벌 초일류 제약회사로 도약하자"고 속삭이는 듯했다.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미국 유학을 떠났던 9살 소년이 어엿하게 성장해 일제 강점기는 물론 가난했던 나라에 많은 도움과 희망을 주고,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현 사회에겐 비춰볼 거울이 되듯, 유한양행도 쑥쑥 자라 인류에게 그 같은 일을 하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단상 위 흉상은 시상식 조명아래서 내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